빼어난 콩국수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릉역 근처에 있는 ‘맛자랑’이라는 곳이다. 음식점 사장과는 아무 관련 없다. 누군지도 모른다. 단지 이토록 빼어난 콩국수가 있다는 데 감탄할 뿐이다.
일단 국물이 참 마침맞게 진하다. 풋내 없는 신선한 콩의 고소함을 크리미하게 담아냈다. 간도 적당하고 균형 잡힌 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져 있다. 면이 내가 좋아하는 메밀면이다. 크림색 국물에 빠져있는 회갈색 면을 보면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같이 나오는 김치는 고춧가루가 듬성듬성 묻어있는 겉절이인데 콩국수랑 잘 어울린다.
얼마 전 친구를 데리고 그 집에 갔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친구는 음식점 안을 대충 쓱 둘러보더니 안내받은 변변찮은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여기가 콩국수 맛집이라고? 콩국수 하나랑 뭐 딴 거 하나 시켜서 나눠 먹을까?"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나는 콩국수만 먹을래. 너는 너 먹고 싶은 거 시켜." 나는 반드시 온전한 콩국수 한 그릇을 붙잡고 먹어야만 했다.
원래는 만나면 다양한 메뉴를 시켜 나눠 먹곤 했었는데 나의 반응이 의외라는 듯 친구는 "그래? 그럼 콩국수 두 개 시키지 뭐."라며 뜨뜻미지근해했다.
그런데 국물을 한 번 떠먹더니... "야 너무 맛있다. 니가 왜 콩국수 두 개 시켜야 된다고 했는지 알겠다."
"야 토마토가 이렇게 잘어울릴 일이야?"
"야 우리 할머니 콩국수도 이겼다."
"야 이건 한 숟가락도 남길 수 없는 국물이다."
"야 나 이 콩국수 맨날 먹을 수 있을 거 같애."
"넌 좋겠다. 집이 여기서 가깝잖아."
"김치도 맛있다."
친구가 너무 호들갑을 떨며 극찬을 퍼붓는 바람에 나는 숨이 넘어가서 오히려 콩국수맛을 잘 못 느낄 지경이었다. 나도 친구처럼 맛있으면 맛있다고 열 번 말하는 스타일인데 앞으로는 맛있어도 한두 번만 얘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보통 음식점 인테리어가 근사하거나, 또는 유구한 역사가 있는 허름한 노포 스타일이거나 하면 ‘오, 왠지 맛있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치 영화 본편을 보기 전 흥미진진한 예고편을 본 것처럼. 그런데 이 집은 "인테리어? 그런 게 있어?"라고 말하는 듯 근사하지도 낡은 멋스러움이 있지도 않다. 아무 특색이 없는 일자형 형광등 아래 식탁과 의자가 있을 뿐인 말 그대로 그냥 식당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빼어난 콩국수의 기원을 찾고 싶다. 이건 어디서 연유한 빼어남인가. 황무지에 꽃이 핀 것처럼, 혼자 어디서 툭 튀어나온 듯 단독으로 특출난 이 탁월함의 정체는 뭘까?
누가 사장님 인터뷰 좀... 이라고 쓰려고 했다. 아니, 그럴 게 아니라 내가 인터뷰를 하면 되잖아? 가게 홍보도 되니 사장님한테도 좋고.
"맛의 비결이 뭔가요?"
"엄선된 국산콩을 쓰고 좋은 소금을 썼죠. 토마토는 육질이 단단하면서도 달고 진한..."
가게 내부를 배경으로 한 사장 아저씨의 인터뷰 사진이 나오고...
흠, 좀 식상한 것 같은데? 당연히 좋은 재료를 썼겠지. 그냥 내가 많이 먹어보고 맛의 비결을 심도 있게 탐구해보는 걸로 하자.
이 집 콩국수 맛있다. 내가 먹어본 콩국수 중에 제일 맛있다. 올 여름 미션은 이 집 콩국수 스무 그릇 먹기다.
추신. 이 글은 망했다. 검색해보니 35년 된 콩국수 맛집이고 사장님은 이미 여러 방송에 출연한 유명인이었다. 이 집은 다른 첨가물은 일체 넣지 않고 백태 중에서도 크기가 큰 왕태만 백프로 사용해 콩국수를 만든단다. 물을 많이 섞지 않으며 콩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한약재를 사용하는 것도 비법이었다. 나는 여태 나만 아는 맛집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