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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Mar 27. 2017

한 밤의 연애 심사

공통점이라는 함정에 대하여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위해 연애 출국장 앞에 섰던 나는 꽤나 오랜 시간 코스비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그가 보기에 나의 새로운 사랑이란 아직은 불안해 보이는 듯했다. 코스비 아저씨는 연신 내 과거 기록들을 살펴보다가 질문을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두 번째 대화로 기억한다.

"정말 엉망진창이라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누군가 무간지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난 당신의 연애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평소 잘하던 '뭐 어쩌라고' 표정을 지었고, 코스비 아저씨는 체념한 듯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 헤어진 그 분과는 어떻게 만남을 시작하게 된 겁니까?"

주로 어떻게 헤어졌나는 질문에 익숙했던 나는 이러한 질문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특검에서 심문을 받듯 이실직고를 시작했다.

"우리는 소개팅으로 만났었죠. 처음엔 어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저씨는 모르실 겁니다. 그러다가 저는 A라는 사람과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우린 둘 다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영화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인데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저희는 좀 더 특별한 영화광이었습니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보다는 소소한 극장에서 해주는 마니아들을 위한 영화를 더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 나와 맞는 사람을 찾았다는 환희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비포선셋>에 나왔던 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프라미스드 랜드>에 나왔던 맷 데이먼의 옷차림에 대해 조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는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물 흐르듯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가 특별하다 생각했습니다."

코스비 아저씨는 갑자기 혼자 웃긴 듯 큭큭 거리며 말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여자였다면 청혼이라고 했을 기세였군요."

나는 '뭐 어쩌라고'의 표정에서 두 자리 숫자를 추가했다. 코스비 아저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다음엔 어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가 저와 다른 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저희는 종종 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사소한 것에 화가 났고 서로 상처를 주었죠.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초반과 다르게 왜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는지.."

코스비 아저씨는 머그를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시작했다.

"저는 사랑에 대해 정답이나 방법론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의 미천한 견해를 이야기해볼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은 그녀를 온전히 그녀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광인 서로의 비슷한 점으로 너무 많은 환상을 가지고 시작했을 겁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척척 죽이 맞듯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근데 사랑이란 게 그렇게 쉬운 거라면 저 고대의 인류부터 그렇게 사랑으로 고뇌하고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코스비 아저씨는 또다시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킥킥대다 말을 이어갔다.

"외로운 우리는 이성에 대해 기대와 환상을 갖습니다.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감당해줄 사람이라는 그 무엇의 환상이 있죠. 영화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면 공통점 하나는 누구든 찾아낼 수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도 하나쯤은 서로 맞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양념게장보다는 간장게장을 좋다던지. 문제는 그 작은 공통점 하나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온전히 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나의 환상 속 그 녀석은 늘 우리 머릿속에는 완벽한 존재지만, 가슴속에 전달되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큰 기대를 버려야 해요. 그리고 온전한 상대의 모습을 알아가려 하고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버릴 겁니다. 대충 이해해버린 상대는, 곡해해버린 그 녀석의 환상들은 모래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았다. 구구절절 한 단어씩 내 가슴에 꽂혀 아른거리는 상처들이 내 머릿속을 감돌았다.




'Natural Spring', Shepherd Fairley



코스비 아저씨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무릎을 치며 말했다.

"제가 저의 추억 하나를 공개하죠. 젊은 시절 언젠가 있었던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도 소개팅이 있었나요? 집안의 정혼자와 결혼하던 시절이라 생각이 드는데요."

코스비 아저씨는 소울이 담긴 썩은 미소를 전달하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재수생이었습니다. 한 번만 더 시험을 보면 하늘의 대학들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야심 차게 재수학원에 들어갔지요. 알다시피 그곳은 인생의 굴곡을 경험하기 시작한 영혼들의 쉼터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그녀를 '버터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는 항상 그 과자를 좋아했거든요."

나는 복수심에 억지로 큭큭대며 대답했다.

"돼지바를 안 좋아하신 게 천만다행입니다."

"그런 개그를 하니까 여기서 저랑 이렇게 대화나 하는 겁니다. 아무튼 저는 같은 환경의 그녀에게 많은 동질감과 이상스러운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대화는 처음부터 너무 자연스러웠죠. 재수생의 서러움이 언젠가 폭발했고, 풀리지 않는 수리영역에 분개했습니다. 저는 수능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잊어버린 채 몇 날을 고민하여 그녀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흥미진진한 코스비 아저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코스비 아저씨는 그런 내가 귀여운 듯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한데, 그녀의 대답은 'No'였습니다. 본인과 같은 환경에 처한 저와 만나는 것은 안정감이 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나는 심사대를 내려치며 분노를 표현했다.

"아니, 그럼 누굴 만나야 합니까? 안정감이라뇨? 경호원을 만나야 하나요? 아니면 수능 만점자? 버터링은 도대체 무엇을 원한 건가요? 파티쉐라도 만나라고 하셨어야죠."

코스비 아저씨는 다시 킥킥 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그때 알게 되었죠. 이 사람이 어떤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이 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말이죠. 그저 현재의 공통된 상황에 만남을 갖게 되었고, 그것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게 된 것입니다. 버터링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려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현실의 벽에 흔들리는 내 마음을 기댈 공간만 찾았던 것이죠. 어떻습니까?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요? 우리는 의외로 중요한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나는 두 눈을 감은채 혼잣말을 시작했다.

"누군가를 그 모습을 그대로 알아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썰렁한 심사대에는 나와 코스비 아저씨만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거대한 유리창에는 하나씩 비행을 시작하는 비행기들의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불빛이 낯설다고 생각했다.




https://youtu.be/i1A0G1d8K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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