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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Jan 06. 2019

30대 중반의 사랑이란

(1) 표류하는 의식의 흐름

어디를 갈 때면 늘 음악을 들으며 다양한 잡생각을 하는 나에게 오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대의 사랑은 근거 없이 시작되었고,

20대의 사랑은 사랑을 알고 있다는 오만으로 가득 차 있고,

30대의 사랑은 방향성을 잃은 채로 표류하며 흘러간다.


그랬다. 중학교 시절 다녔던 국어학원에서 나는 버터링 쿠키를 냠냠 먹는 소녀를 좋아했다. 상당수 어린이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주변 친구들에게 공감을 요구하며 그녀를 '버터링 쿠키녀'로 만들어버렸다. 왜 좋았는지 모르겠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그래.. 이뻤던 것 같다.


20대는 대학생활 중 겪은 몇 번의 연애로 개똥철학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이런 성격은 나랑 맞지 않으며, 나는 고양이상보다 강아지상이 좋다는 동물농장식 사랑학 개론을 펼치며 씁쓸 달콤한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30대로 넘어왔다. 이제 중반이라는 시점도 넘긴 나이, 자칫하다가는 궁상을 떤다는 맹비난을 받기 쉬운 까닥 에 나는 사랑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때면 입을 다물곤 한다. 그만큼 사랑에 대해 더욱더 미궁 속으로 빠져, 당최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지금의 심정인지도 모르겠다.




30대의 사랑에는 '어쩌면 결혼'이라는 암묵적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변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들, 주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보는 내 주변의 환경이 낯설게 느껴진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사람 좋은 미소로 살아왔을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결혼이라는 문제에서는 하나하나 복잡성을 더해간다.


그러다 보면 사람을 사람만으로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나처럼 감성적 기능이 활발한 사람들은 20대에 그렸던 다양한 로맨틱한 삶과 이러한 현실적 갈등에 크게 동요한다. 더 이상 유럽 열차를 타며 비포 선라이즈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 있을 로또 같은 가능성을 염두하며 또 새해를 넘긴다.


이모가 6명인 나는 시끄러운 명절과 함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모두 각기 성격이 다른 이 여성분들은 내게 자라오면서 수많은, 일치하지 않는, 지극히 주관적인 조언을 쏟아냈다. 특히 30대에 접어든 이후 그 조언은 비판을 넘어 인신모독으로 이어졌으며, 한때 김구라가 했다는 라디오 방송보다 심한 자극성을 띄기도 했다. 그분들의 대화 흐름은 늘 그렇다.


무엇이 문제인가 → 무엇을 원하나 → 니가 문제구나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이 소중한 여인들의 조언과 대화들이 생각나 씁쓸한 웃음이 지어진다. 다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씀이지만 때로는 이민보다 더 강한, 행성을 옮기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히곤 한다.


그리고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민이 더 깊어질수록 나 스스로 사랑과 결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재수를 할 때 같은 반에 있었던 오수를 하던 형이 생각났다. 재수를 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5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그 사람. 더 이상 갈고닦아야 할 각오가 남았는지 삭발까지 하셨던 그 형님. 우리는 언제 헌병들이 들이닥쳐 형님을 잡아갈지 모른다고 농담을 하곤 했지만, 그에게 수능은 정말 곱씹을수록 어려운 존재였던 것 같다. 나도 그처럼 이제 사랑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미술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가장 좋아했던 화가는 에드워드 호퍼이다. 가장 맘에 들었던 그리고 인상 깊었던 그림을 시카고에서 직접 보면서 나는 문득 가운데 홀로 앉은 사람이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근히 굽어 있는 저 등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는 시카고에서 멍하니 이 그림을 한동안 응시했던 기억이 난다.




음악은 이러한 상념을 지워주는데 도움을 준다. 혹시나 나와 같은 여러 생각에 머릿속에 복잡한 분들을 위해 생각이 난 음악을 남겨본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ㅎ


https://youtu.be/wdSBA5Dc6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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