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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Aug 24. 2021

제주에서 만난 안개

(1) 인생의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10년 차 회사원인 나는 오랜만에 제주를 찾았다. 이직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기본 베이스는 희극인 것 같다는 느낌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태풍 오마이스가 제주를 향해 북상하고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제주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다는 안개 때문인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난 푸념 섞인 한숨으로 그렇게 제주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이라 할 것도 없었다. 여러 번 왔었던 제주고, 이번 여행은 이직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 대기업에서 10년 차가 된 30대 후반의 직장인이다. 보수적이며 하루하루를 전투와 같이 살아온 시간이 10년이 되었다니, 가끔은 믿기지 않는다.


허나, 거울을 보면 바로 아! 10년이 지났구나 싶다.


10년 전을 생각하면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뽑아만 주신다면 무임금으로라도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시절. 지금보다 나쁠 수는 없겠지만 그 당시에도 취업이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삼삼오오 취업스터디를 만들며 면접 시뮬레이션까지 돌리던 그 시절. 그때는 모든 것이 간절했다.


그리고 10년 차에 접어드니,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기분이다. 무능한 리더십과 답이 없는 조직문화,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알 수 없는 방향성들. 진절머리가 제대로 난 것만 같다.


호아킨 소로야

무념무상으로 렌터카를 운전해 가는데, 어느 시점부터 바로 앞 차량 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안개가 몰려들었다. 상냥한 운전자들은 하나둘씩 비상등을 켰고, 나도 동참하며 조심스레 차를 몰아갔다.


순간, 이 풍경이 지금의 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향해 10년을 일했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나는 무엇을 찾기 위해 이직을 고민하는 것일까. 새로운 도전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떠한 전환점을 찾게 될까. 아니면 후회만을 남기게 될 것 인가. 그러한 동질감에 나는 묘하게도 안개가 푸근하게 느껴졌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는 고민과 걱정이 많던 아들에게 늘 마음을 푸근히 먹으라 말씀해주셨다. 당시에는 흘려들었던 그 말씀을 가슴에 되새기며 숙소로 이동했다.


https://youtu.be/gMSFd4N9GQM

이 곡을 듣고 순간 열정이 솟은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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