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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푸근 Feb 06. 2017

설날, 나의 공방전

(2) 자라나는 꿈나무에게




나와 서현이는 20분 정도를 걸어가 한적한 스벅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쇼케이스를 바라보는 서현이의 표정을 보고 나서였다.

"삼촌, 라즈베리가 없어."

"응?"

나는 쇼케이스를 바라봤다. 안에는 평소 서현이가 좋아하던 알록달록한 라즈베리 마카롱이 없었다. 그리고 쑥을 갈아 만든 듯한 녹색 마카롱만 있었다. 서현이는 세상을 다 살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삼촌의 역량을 보여줘야 했다.

"기다려봐."

나는 어렴풋이 이곳에서 15분 거리에 또 다른 별다방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기 혹시 라즈베리 마카롱이 있나요?"

다 늙은 노인은 그렇게 라즈베리 마카롱이 있냐며 전화를 했다. 휴대폰에서 들리는 상냥한 직원은 확인을 해본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무심코 바라본 서현이는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고객님, 두 개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제발 두 개 다 팔지 마세요."

전화를 끊고 나와 서현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없어서 못 판다는 대만 카스테라를 먹으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늙은이 하나와 미래의 꿈나무는 바보처럼 실실거리며 거리를 뛰어갔다. 문득 올해의 설날은 나름 시작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별다방에 도착하여 우리는 라즈베리 마카롱을 사재기하고 자리를 잡았다. 서현이는 평소와 다르게 평정심을 잃은 듯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이 먹는 것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흐뭇하게 서현이를 바라봤다. 그때, 친구 족제비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 카톡을 읽지를 않아."

족제비는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나는 대략의 사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 협력사 직원에게 첫눈에 반했다. 족제비의 장기는 지나친 음주와 쉽게 빠지는 사랑이었는데, 요즘도 그 장기는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연락에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카톡을 읽지도 않고 있었다. 나는 귀찮은 위로를 시작했다.

"어디 출장 갔을 수도 있지."

"이 사람 국내 근무자야."

"어디가 아픈가 보지 그럼."

"평생 심하게 아픈 적이 없다고 했어."

"그럼 핸드폰이 분실되었나 보지."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어."

"A.C."

끝말잇기를 하는 듯한 족제비의 말에 나는 더 이상 대화가 하기 싫어졌다. 나도 외로운 마당에 이런 의미 없는 투정을 들어할 이유는 내 나이 30살부터 이미 증발한 상황이었다. 나는 혼자서 마카롱을 연신 먹고 있는 서현이를 돌봐야 한다며 대충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 사랑은 어려운 것이지. 나는 순간 울적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서현이를 보며 말했다.

"서현아, 네가 나중에 정말 멋지고 지적이고 현대 여성의 아이콘이 되더라도, 맘에 안 드는 남자가 고백을 하면 나름 친절하게 거절을 해. 그런 남자들이 더 마음이 약한 법이야."

서현은 마카롱을 먹다가 이건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뭐라고 해요?"

"음.. 그냥 나의 철학과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해."

"그게 무슨 뜻인데요?"

"그냥 싫다는 거지 뭐. 크크크."

나는 나도 모르게 실소를 해버렸다. 서현이도 이 궤변이 웃기는지 피식 웃어버렸다. 서현이는 언제쯤 사랑에 대해 알게 될까? 그때쯤 나는 얼마나 더 늙어버릴까? 나는 서현이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창 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모두가 행복한 구정의 오후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잠깐의 여유를 즐기던 나는 불현듯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주인공은 서현이의 엄마이자 나의 친척 누나인 성격 급한 여인이었다.

"야, 어디야?"

"스타벅스 왔어."

"너 또 서현이 마카롱 먹이지? 자꾸 그런 거 먹이면 안 된다니까."

"아, 누나도 어렸을 때 연신 아폴로며, 논두렁 밭두렁이며 다 먹었잖아."

나는 평소 나를 공격적으로 대하는 환장의 친척에게 거칠게 대응했다. 친척 누나는 마치 개가 짖는다는 듯 다른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서현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긴 거 같으니까 그거나 한번 물어봐."

"뭐?! 어떤 자식이야?"

나는 반사적으로 몹시 흥분상태가 되었다. 아직 9살이었다. 좋아하는 애라니.. 혹시 아톰이나 피카츄는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이미 만화에는 관심이 없는 모던한 여성이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알겠어."

전화를 끊고 바라본 서현이는 만족스러운 포만감에 즐거운 듯 잡지를 보고 있었다. 나는 셜록이 될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다음에 계속)



https://youtu.be/vKVy6 APP3 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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