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게 한 뮤지션과 추억의 시간
코로나로 발이 묶인 지 3년이 다 돼 간다. 다시 해외여행 길이 열렸다고 하니, 마음과 돈의 여유가 없어도 가능성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2017년 겨울,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도쿄를 다녀왔었다. 12월 초지만 도쿄는 가을이 깊어 가는 중이었고, 안도 다다오 특별전, 고흐 전시회 등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지막 날 츠키지 어시장 건너편의 혼간지라는 사찰을 갔는데 중요 문화재인 이 사찰의 건축양식을 둘러보다가 내부에서 화장실을 찾던 중 작은 테이블을 발견했다. 그 테이블은 엑스재팬의 기타리스트 히데를 추모하는 공간이었다. "사랑합니다"라고 쓰인 한국 팬의 메모도 적혀 있었다.
엑스재팬의 음악 중 서정적인 곡은 한국에서 번안돼 인기를 끌기도 했고, 비주얼 락의 강한 사운드는 한국 정서와도 잘 맞았고 전 세계적으로도 팬덤이 생겼다. 작사 작곡을 한 리더 요시키가 피아노와 드럼을 맡고 있어 서정적인 멜로디와 박진감 넘치는 락을 구사한다. 그의 괴팍한 성격을 엄마처럼 보듬고 챙겨주어 엑스재팬의 초기 인기에 큰 역할을 한 이가 기타리스트 히데였다.
락 음악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높은 앨범 판매고를 올린 엑스재팬은 비운의 밴드로 기억된다. 이 밴드의 두 명의 멤버가 운명을 달리했다. 처음 죽음의 소식이 전해진 것이 히데였고, 밴드를 탈퇴한 뒤 노숙자 생활까지 하다가 떠난 이가 천재 베이시스트이자 기타 실력도 뛰어난 타이지다. 두 사람의 죽음 모두 석연치 않다.
요시키와 유치원 시절부터 친구였던 보컬 토시가 밴드의 중심인데 토시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며 탈퇴를 선언했고 엑스재팬은 해체를 앞둔 고별 콘서트를 한다. 이 콘서트가 엑스재팬 팬들이 히데를 본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다. 당시 히데는 독집 앨범을 내고 활발하게 솔로 활동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헤드뱅잉을 과격하게 하는 락 밴드여서 요시키도 히데도 목 통증이 심했고 드러머 요시키는 목보호대까지 차야 했다. 히데는 공연을 마치면 기타 무게를 장시간 감당한 목 근육과 어깨를 풀어주기 위해 샤워기나 문고리에 수건을 걸고 목을 받치도록 해서 목 스트레칭을 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요시키의 증언).
히데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자살이 아니라 아마도 이 목 스트레칭을 하던 중에 사고로 목이 졸려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을 타당하게 보는 편이다. 아무튼 엑스재팬에서 인성이 좋기로 알려진 히데의 사망 소식은 일본열도의 청소년 팬들을 뒤흔들어 베르테르 효과를 일으켰다. 청소년들의 잇단 자살 소식에 엑스재팬은 팬들에게 "그건 히데가 원하는 게 아니니 제발 극단적 선택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의 기자회견까지 할 정도였다.
토시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탈출해 재결합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신곡 발표보다 초창기 노래를 콘서트에 계속 올리는 엑스재팬은 히데와 타이지의 자리에 새로운 멤버를 영입해 활동하고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히데와 타이지 시절에 만든 곡들이 가장 세련됐고, 편곡도 훌륭하다. 타이지가 엑스재팬 히트 넘버들에 기여한 음악적 공이 컸다.
페북에서 목 스트레칭 용품을 광고하는데 히데가 생각났다. 그가 공연 후 이런 식으로 목을 풀었다는 것이 연상된 것이다. 밤새워 교정하다 목이 뭉치곤 하여 함 사볼까 하다가 가격이 생각보다 높아서 제꼈는데 블프 세일을 하기에 구입했다. 요즘 기상 후와 취침 전에 목을 편하게 풀어주는 데 사용한다. 실제로 무중력 상태로 목을 좌우로 움직여 스트레칭하니 도움이 된다.
히데가 그날 밤을 평범하게 넘겼다면 지금도 밴드 활동을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처럼 팬을 아낀 스타는 드물다. 선천성 체세증이라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유형의 백혈병에 걸린 불치병 소녀 키시 마유코(貴志真由子)와의 에피소드가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마유코의 편지를 받고 히데는 1995년 도쿄 돔에서의 연말 콘서트 공연이 끝난 뒤 마유코를 찾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1996년에는 마유코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모든 일정을 캔슬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정도다. 마유코를 위해 'Misery'라는 곡도 만들었다. 마유코와의 에피소드는 어느 네티즌에 의해 만화로 그려져 크게 알려졌다. 히데 사후에 요시키가 히데를 대신해 마유코를 챙겼으며 자신의 스튜디오와 집에 초청하기도 했다. 요시키는 히데와 마유코의 인연을 시작으로 자선사업을 시작한다. 마유코는 2009년 10월 2일, 히데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하루하루 똑같은 답답한 시간에서 커튼콜하듯 커튼이 싹 내려갔다가 다시 무대에 올라가 바뀐 세상을 만나고 싶다. 그의 연주를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