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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Feb 16. 2024

카메라로 영혼을 훔치는 작가, 구본창

45년 사진 인생의 여정을 담은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 열어

구본창 스튜디오 제공 / 연세소식


구본창 작가는 현대 사진의 거장으로 대한민국 사진 위상을 높인 대표 작가다. 2023년 12월 13일부터 올해 3월 1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구본창의 항해>라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첫 작품인 〈자화상(Self-Portrait)〉(1968)부터 최근 작품까지 500여 점의 사진과 600여 점의 자료가 전시돼 구 작가의 사진 인생 45년을 펼쳐놓았다. 구 작가의 예술 항로를 따라 ‘호기심의 방’을 출발해 ‘모험의 여정, 하나의 세계, 영혼의 사원’을 거쳐 ‘열린 방’을 끝으로 다시 새로운 항해를 떠나보는 테마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구 작가를 만나 사진과 함께해 온 인생을 들어보았다.     


렌즈에 영혼을 담는 작가


자신의 회고전을 둘러 보는 구본창 작 / 사진 copyright 이준호 작가


“내가 쫓는 사물의 영혼을 붙잡는 것이 사진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이에요. 영혼을 훔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사진작가로서 작품에 영혼을 담는 것을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는 구 작가의 말대로 전시된 작품은 유독 외롭고 쓸쓸하고 자유롭고 싶어 하는 독특한 관점의 사진이 많다. 하나같이 고독한 심정을 위로하는 말을 걸어오는 듯하고, 영혼을 담으려는 열정이 보였다. 서울시립미술관 1층과 2층 전시실 전체가 구 작가의 예술혼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예술가의 인생이 담긴 작품과 자료를 모아 전시하는 일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에요. 살아 있을 때 내 작업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것은 뜻깊은 기회입니다. 앞만 보고 작업해 왔고, 다채롭게 한 작업을 모두 펼쳐놓을 수 있으니 감사하죠. 영혼이 깃든 곳은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어요. 인물과 풍경만 찍지 않았죠. 작은 소품, 사소한 물건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구 작가는 인생에서 여러 파도를 만나듯이 자신의 사진도 파도를 만나고 파도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표현한다.


 모퉁이에서 살아온 성장기


사진 copyright 이준호 작가


구 작가는 어린 시절 내성적이었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비 오는 날 도랑에 떠내려온 사금파리나 조약돌 등 작은 사물과 소리 없이 대화하며 놀았다. 모퉁이 구석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고 자기 의견은 감추고 자랐다. 수집벽(癖)도 대단해 자신이 모은 잡동사니와 묵은 메모지들도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 감정과 삶의 통찰이 담겨 있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존재에 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주목받지 못하고 버려진 존재들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어요. 소외된 자리에서 소외된 대상에 관심을 가져오다 성공했으니 행운이라 할 수 있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계속 모퉁이에 있는 이들에게 그곳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구 작가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눈앞에 보이는 행복을 좇는 인생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소심했고 사람들이 하찮게 보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사소한 것에 마음이 끌렸다. 친구들과 뛰놀고 가족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대상이 그의 벗이었다. 사진작가가 된 후 그 사소한 것들에 더욱 시선을 두었다. 스쳐 지나는 것에 주목했고 그런 처지인 사람들이 그의 사진에 위로를 받았다.


구 작가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업을 하신 부모님의 만류로 원하는 공부를 선택하지 못하고 우리 대학교에 진학해 경영학을 공부했다. 연세대 시절 평범한 모범생이었으나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동아리 화우회에 가입해 그림을 그리며 열망을 삭혔지만, 전공을 바꿀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 일탈 없이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직장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년 만에 사직서를 냈다.     

“대우실업 생활이 옥죄어 오면서 내가 행복하지 않은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스트레스였어요. 고교 시절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한 경험을 살려 학비가 들지 않는 독일 유학을 결심했죠. 1979년 당시 학생 여권을 받기가 어려워 작은 회사에 들어가 독일 주재원으로 가는 방법을 택했어요.”      


독일에서 발견한 사진작가의 길


사진 copyright 이준호 작가


독일에서 낮에는 회사 업무를 하고, 야간에 학원을 다니며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다. 당시 로고 디자인을 배웠는데 평생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곧 그만두고 국립대학인 함부르크조형미술대학에 진학했다. 같이 입학한 독일 친구가 사진을 하고 있어 사진디자인학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미술을 배우다가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에 빠져들었다. 구 작가가 직접 피사체를 택하고 결과를 빨리 확인해 보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독일 교수의 칭찬도 많이 받았다.


“독일에서 내가 가진 소심하고 섬세한 성격이 재능임을 알았어요. 남들과 다르게 눈여겨보는 관점이 독특한 결과물을 만들었죠. 독일에서 사진을 접하고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평생 뒤처진 인생으로 살았을 겁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고는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었어요.”


초기에는 거리 스냅사진을 많이 찍었다. 프랑스 작가로 사진계의 톨스토이라 칭송받는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을 닮고 싶었고 그 이상을 찍고 싶었다. 그의 작품을 따라 해보다가 갈증을 느껴 독일 현대사진의 거장 안드레 겔프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 유학생인데 내년에 귀국하기 전에 꼭 만나고 싶었다고 전했다. 소심한 구 작가였지만, 사진에서만큼은 용기를 내는 게 가능했다. 안드레 겔프케는 무작정 걸려 온 그의 전화에 친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안드레 겔프케가 ‘네 사진은 좋은데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 찍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한국적인 것, 너만의 것을 찍어라’고 조언했어요. 그 조언이 제 사진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죠. 1984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헤어진 후 종종 연락을 주고받다가 2014년 스위스 개인전에서 만났고, 2019년 제 개인전을 보러 한국에 오시기도 했어요.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에 계실 때는 저를 초대해 특강 기회를 주시기도 했습니다.”     


경영학 전공과 사진가의 삶


사진 copyright 이준호 작가


구 작가에게 우리 대학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언론에 홍보 강점으로 작용했다. 독일에서 6년을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가 1985년이다. 당시 사진가로 데뷔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전시회를 열어 알려지기 시작하자 기자들이 궁금해했다. 왜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이 독일 유학까지 다녀와 사진작가가 됐냐는 것이다. 명문대학 경영학 출신의 사진가는 없었다. 사진학과 또한 몇 군데 없던 시절로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과로 알려져 있었다. 기자들에게 구 작가는 우리 대학을 나온 독일 유학파라는 것이 흥미로운 소재였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회고전 준비를 위해 12월 초부터 미술관에서 살다시피 했죠. 나는 경영학을 공부했기에 예술 자체만 생각하지 않아요. 대우실업 경험도 적용해서 통섭적인 사고로 전시회를 준비하고 판단하죠. 예술만 생각하는 사람과 달리 경영학적으로 투자한 만큼 벌어야 한다는 기본 생각으로 전시회를 준비해요. 에너지를 쏟은 만큼 효과가 있어야 하니까요.”     


한국의 정체성을 고민


사진 copyright 이준호 작가


구 작가는 여러 권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쓴 책도 있다. 특히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담은 《Korea; In the 1980‘s》와 《DMZ 구본창 사진집》이 눈에 띈다.
 “1980년대 아시아에서 온 학생이라면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인지 물어요. 코리아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독일에 살 때 박물관 구경을 많이 다녔는데 일본관, 중국관은 규모가 큰데 한국관은 골방에서 적은 유물이 전시돼 있었어요. 한국의 정체성을 고민했죠. 그때 우리 문화재를 훔쳐 간 나라들의 발달된 문화를 처음 접했어요. 특히 밀라노에서 일본 문화를 새롭게 봤죠. 우리는 이순신 갑옷은커녕 구한말 갑옷도 볼 수 없는데 사무라이 갑옷들은 화려하게 원본이 전시돼 있었어요. 우리 문화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해 한국 문화로 보여줄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구 작가는 귀국 후 초기에 한국의 다채로운 색과 멋을 찍었다. 출사하러 갈 때는 항상 카메라 두 대를 메고 다녔다. 양쪽 어깨에 각각 칼라와 흑백용 니콘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흑백은 침울한 세상을, 칼라는 키치한 색감의 작품을 찍었다. 한국전쟁 60주년인 2010년 국방부 의뢰로 자유 주제 작품을 맡았는데 구 작가는 군인이나 풍경이 아닌 유품을 찍었다. 전쟁기념관의 유품을 보고 영혼을 찾아내고 싶어 그 소유자의 흔적을 쫓았다. 국방부 협조로 전시관에 있는전쟁 유품들을 꺼내서 찍은 DMZ 작품이 담요, 수통, 반합, 안경 등이다. 
 

한국의 상징을 고려청자에서 백자로 바꾸다


사진 copyright 이준호 작가


구 작가가 찍은 많은 작품 중 대표적으로 아끼는 것을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궁금하다. 모든 작품에 최선과 열정이 담겨 있어 하나를 꼽기 어렵지만 1995년 아버지를 찍은 <숨>을 들었다. 아버지의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숨>으로 자신의 사진이 명상적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백자 시리즈는 구 작가의 사진 인생에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조선시대의 아름다움을 알린 대표작으로 백자 이전의 관광 사진은 화려한 고려청자였지만 구 작가의 작품으로 백자 이미지가 올라갔다. 지금은 한국 문화재의 대표 상징으로 백자를 꼽는다. 청와대도 조선백자로 도자기를 바꾸었다. 구 작가는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조선백자를 찾아 현지 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찍었다. 안타깝게도 열강에 흩어져 역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도자기가 조선백자다. 고려청자에 비해 조선의 수수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뭔가 부족한 듯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구 작가는 그 매력을 담았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백자를 찍다가 모든 민족의 부귀영화 상징인 황금에 카메라를 맞추었다. 황금은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도 결국 소유자는 사라지고 유물만 남는다. 구 작가는 황금에 간직된 시간을 찍고자 했다. 그로 인해 신라의 금관 유물이 업그레이드됐다. 전시된 유물과 달리 구 작가의 사진 속 황금은 좀더 화려하고 감동적이다. 구 작가는 유물에 담긴 영혼을 찍었기에 우리 유물이 해외에서 더욱 대접받는 일까지 일어났다.


사소한 것에 관심이 많아서 빛나는 것보다 빛이 없는 것을 좋아한 그는 떨어진 돌, 사금파리, 작은 식물, 유물 등에 말을 건넸고, 사진으로 마음이 갇힌 사람에게 위로를 전했다. 김영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구본창은 사물을 프레임에 가두고 사물의 고백을 듣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구본창의 사물 사진을 보는 사람은 사물의 고백을 함께 듣는 사람이 된다”고 썼다. 


구 작가의 앞으로의 소망이 독특하다. 그는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작품이든 삶에서 모은 것들이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지길 원해요. 내 삶의 흔적을 깨끗이 치우고 떠나고 싶습니다. 마치 여행을 마치면 숙소를 정리하고 돌아가듯이 지구에서 체크아웃할 때 깨끗이 소진하고 가고 싶어요.”


_글 황교진 / 연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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