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 만드는 것이 목표
2023년 12월 7일 방송된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세계적인 뇌과학자로 스탠퍼드 대학교 종신교수가 된 이진형 교수가 출연해 큰 관심을 끌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로 유학해 석·박사과정이 끝나가는 시점에 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때부터 뇌질환과 관련된 문제를 풀기로 다짐하고 학문의 방향을 뇌과학으로 바꿨다. 의학 지식을 독학으로 섭렵하고 15년에 걸친 연구로 뇌의 문제를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해 냈다. 이진형 교수에겐 '한인 여성 최초 스탠퍼드 의대·공대 종신 교수,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 뇌과학 분야 석학'이라는 찬사가 꼬리표로 따라다닌다.
2024년 3월 14일 코엑스에서 열린 ‘메디컬코리아 2024’에서 체계적으로 뇌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조연설을 했고, 이어서 뇌전증과 치매, 파킨슨병의 원인을 밝혀내 치료법을 만들고 있으며 개개인이 집에서도 뇌 건강을 관리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신경학·생명공학과 과목을 가르치며 실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에 엘비스(LVIS)를 실리콘밸리에 창업했다. LVIS는 ‘뇌 속 회로를 생생히 시각화한다(Live Visualization of Brain Circuits)’는 뜻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고 한국 법인으로 서울과 대구에 사무실이 있다. 2026년 나스닥 상장을 목표하고 있다. 2017년 한국 여성 최초로 스탠퍼드 대학 종신 교수가 됐고, 2019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상인 ‘NIH 파이어니어상’을 수상했다.
갑자기 찾아오는 데다 병원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뇌질환이 이 교수의 오랜 연구와 인내의 산물로 치료되는 세상이 열릴까? 마침 국내 강연 일정으로 귀국한 이 교수를 서초동 엘비스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Q. 요즘 근황은 어떤가요?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에 강연 요청이 있어 들어왔는데 내일 아침에 출국해요. 강연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Software Policy & Research Institute)가 주최한 ‘2024 SPRi 봄 컨퍼런스’에 초청돼, 뇌질환을 해결할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설명하며 뇌 건강의 미래에 관한 내용을 전했습니다.
Q. 회사 이름이 엘비스(LVIS)인데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는지?
사실 저는 엘비스가 누군지 몰랐어요. Live Visualization(뇌 회로를 생생하게 시각화)의 약자여서 정했는데, 가수 엘비스와 같은 발음이어서 기억하기 편한 유익이 있죠. 인터뷰할 때 엘비스를 제대로 잘 발음하면 점수가 올라갑니다.(^^)
Q. 2013년에 창업한 LVIS는 어떤 회사인가요?
뇌질환은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위험한 병이죠. 근본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진단을 못한다는 거예요. 오랜 시간 경과를 지켜보고 문제를 확인한 후에야 치매 등의 진단명이 나오는 수준이에요. 저는 전기공학자라서 이해가 안 됐어요. 도대체 왜 반신불수 상태로 두는가. 엔지니어는 목적을 정의하고 그 목적에 맞춰서 문제를 해결하거든요.
그런데 뇌질환 치료의 목적은 무엇이죠? 어떻게 하면 치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이건 과학이 아니라 상식이에요. 내가 치매에 걸렸는데 치매를 치유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뇌 기능을 정상화’한다는 거예요. 뇌 기능을 정상화하려면 뭘 해야 할까요? 비정상임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야 해요. 즉, 기능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하죠. 기능을 모르니까 정상화할 수 없듯이, 뇌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뇌 기능을 재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에요. 측정할 수 없으니까 정상으로 회복시킬 수 없죠. 어떤 사람이 치매면 치매의 정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하고,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알아야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어요.
이것이 제가 생각한 문제점이었어요. 뇌질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뇌의 기능을 측정할 수가 없구나, 그래서 뇌 기능을 측정할 수 있어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싶어 뇌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물리적 객체나 시스템을 디지털로 정밀하게 복제한 가상 모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지털 트윈을 만드는 데 15년이 걸렸고 그 기술을 적용한 회사가 LVIS입니다.
뉴로매치(NeuroMatch)는 신경 정보를 통해 환자에게 치료법을 매칭해 준다는 뜻으로, 두뇌 회로를 분석해 뇌질환 치료를 돕는 AI 기반 플랫폼이에요. 각 개인의 뇌 상태를 파악해서 진단하고 치료 방법을 찾는 플랫폼이죠.
Q. 2024년 3월 14일 2024 메디컬코리아 기조연설 후 “10년 내 5대 뇌질환(뇌전증, 자폐, 불면, 파킨슨, 치매)를 정복할 수 있다”는 기사가 많이 떴는데 확실한 장담인지 궁금합니다.
그 기사들이 나간 것은 오해가 좀 있어요. 당시 인터뷰 끝나고 기자회견이었거든요. 모 기자님이 “뇌질환 치료는 한 5년이나 10년 안에 다 해결돼요?” 하고 질문했어요. “저는 그럴 수도 있죠”라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으로 말했는데 기사 제목엔 “완전 정복”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다만 전혀 불가능한 장벽을 극복하겠다고 얘기한 건 아니에요. 정복과 해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죠. 기본적으로 뇌 기능의 상태를 파악하고 측정할 수 있게 됐으니, 이전보다 문제 해결이 용이해 솔루션 마련의 기틀이 잡힌 거란 의미였어요. 5대 뇌질환의 해법 마련에 많은 힌트를 얻은 상태니, 생각보다 빨리 해결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확실히 커졌다는 의미죠.
Q. 우리나라 뇌과학자는 창업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치매 디지털 치료기기가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요. 신경과 의사와 연구자들이 창업한 사례가 많은데 교수님은 뇌를 연구하다가 엘비스를 창업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연구하다가 창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고요. 애초에 치료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기초 연구를 하다가 어느 단계에서 논문을 썼고 연구 결과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이 창업이었어요. 필연적으로 창업한 셈이죠.
Q. 혼자 공부해서 문제 푸는 것보다 경영은 훨씬 어렵다는 말을 하신 적 있더군요. "공부보다는 회사 경영이 훨씬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문제 하나를 찾아서 그걸 풀면 되는 공부에 비해, 못해도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경영은 종합예술이다"라고요.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훨씬 어렵다는 말은 아니었어요. 교수와 연구는 내가 아주 잘하는 게 있으면 되는 거고, 사업은 못하는 게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었어요. 공부는 한 분야의 깊은 통찰을 요구하고 경영은 종합예술 같은 분야죠.
Q. 교수님은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도전해 모든 난관을 뛰어넘은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말 힘들고 괴로운 어려움은 어떤 게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회사를 창업한 뒤 비전 공유나 팀원 관리도 어렵지만,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거였어요. 모두가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에서 우버를 만들자고 하면 이해가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전화와 문자 기능만 있던 폰을 쓰는 시대에 스마트폰을 만들자고 하면 이해가 어렵죠.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과정은 이와 같아요.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나아졌죠. 저는 30년짜리 계획이 있었어요. 제가 생각한 전체 그림에서 디테일은 좀 달라졌지만, 한 번도 피보팅(Pivoting)하지 않고 달려왔어요.
Q. 소셜벤처에서는 그러한 변함없는 목표를 소셜미션이라고 하죠. LVIS의 소셜미션은 무엇인가요?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뇌질환을 찾고 치료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Q. 스탠퍼드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이 신경학, 신경외과학, 생명공학이더군요. 독학으로 의학을 공부하고 이런 학문을 가르친다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저는 6개 기관에 속해 있어요. 제가 연구하는 분야를 개척해서 진행하다 보니 정확하게 특정한 기관에 속할 수 없었어요. 기존에 존재하는 기관과 결이 딱 맞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보스가 6명인 조직에서 일하고 있어 굉장히 힘들어요. 신경과와 신경외과는 둘 다 뇌질환에서 중요한 과로 연결돼 있어서 저처럼 의사가 아닌 연구자도 교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제가 진행하는 뇌질환 치료 분야가 신경과와 신경외과의 중요한 연구들이고요. 바이오 분야와도 관계가 있어서 제 연구실은 통섭적인 학문으로 연결돼 있어요.
Q. 40대에 보통 사람들이 거두지 못하는 성공의 경지에 이르렀는데요. 그 과정에 전기공학자에서 독학으로 의학을 섭렵했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서울대학교 전기공학 출신이 특출난 개인 수련을 거쳐 종신교수에 선 건데, 한국의 교육 욕심 많은 부모들은 몹시 궁금해할 거예요.
엄밀히 말하면 의학을 독학으로 했다기보다는 제가 뇌질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독학했다는 말이 맞습니다. 분명히 어려운 길이었고 흔한 일은 아닙니다. 제가 선택한 길마다 환영받으면서 이루어 온 게 아니고 높은 위험성을 감내하면서 남들이 하지 말라는 실험을 혼자 십수 년 도전해 결과를 이뤘어요. 실패할 거란 생각은 안 했어요.
Q. 그런데 사실 좋은 결과로 나올 거라는 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지, 가설을 세울 때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잖아요?
저는 문제를 잘 정의하고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밑그림이 무엇인지, 될지 안 될지 알 수 있었어요. 안 될 거로 생각하고 부딪친 적은 없어요. 남들이 보기에 하이리스크여도 제가 보기에 하이리스크인 일을 벌인 적은 없어요. 자신이 하는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일에 도전한 사람이잖아요. 제가 설정한 목표를 놓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떠오르는 상상력이 이제껏 저를 이끌어 준 원동력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서로 떨어져 상관없어 보이는 지점을 연결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푸는 상상력이 있었어요.
Q. 우리가 결과에 당도한 후 과거를 유추해서 이유와 의미를 해석하긴 쉬워도, 내가 세운 가설이 의미 있는 결론으로 도출될 거라는 확신은 입증하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생각해요. 연구자의 멘탈이 강하고 가설이 촘촘하고 해결 방법이 잘 받쳐 줘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고요. 어떤 섭리와 행운이 따라야 할 것 같은데 교수님은 될 거라는 긍정적 예측이 신비로울 만큼 강해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역경’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역경이라기보다는 주변의 방해 혹은 몰이해에 관한 설득의 과정이 어려웠죠.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고요. 내가 혼자서 확신한다고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내가 이거 연구할게요, 하면 누군가 연구비를 줘야 하고, 내가 이거 개발할게요, 하면 개발 비용 투자를 받아야 하죠. 또 팀원을 들여놓아도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나의 비전과 상대방의 비전이 조율되지 않으면 힘들어요. 저는 그런 역경에 있어서 비전을 실제화하기까지 내가 어떻게 하면 될지 명확한 그림을 그려뒀어요. 물론 여러 섭리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분명한 건 풀고 싶은 문제를 오래 생각하면 답이 보였어요.
제 인생에 그런 일이 굉장히 많았어요. 이거 절대 못 풀겠는데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간단한 아이디어로 풀린 때도 있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방법을 발견해 낸 일도 있어요. 서울역까지 약속 시간 내에 대중교통으로 못 갈 때 전동퀵보드를 타면 갈 수 있겠다 싶은 거죠. 생각하다 보면 해결책이 떠올라요. 서울역 가는 방법을 제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려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믿음과 확신의 영역이 아니라 계획이 서 있기 때문에 계단에서 넘어지고 퀵보드 타고 가다가 돌발 변수에 부딪혀도 안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Q. 교수님 말씀은 마치 인간게놈지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만들어 놓고 연구하는 유전체 학자처럼 들려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진 상식과 지식, 문제 해결 방식과는 다른 모습이 지금의 교수님 인생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상상력이 창의적으로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상력을 많이 사용하며 살아온 편이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문제를 풀 때 상상력을 발휘해 푸는 걸 좋아했죠. 좋아하고 또 많이 하다 보니 잘하게 됐어요.
Q. 한국 사회에서 초등학교까지는 Maker로서 상상력이 상승하지만, 중고등학교 들어가면 입시 위주 교육에 함몰해 User로만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한국 공교육이 상상력을 저해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습니다.
동의하는 면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면도 있어요. 아는 게 없으면 상상할 수가 없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상상력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는 거예요. 블록이 세 개 있으면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 그런 능력이기 때문에 블록의 존재를 모르면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 때문에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없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죠. 여러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한국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미국에서 연구할 때 모두 상상력의 바탕이 되는 지식으로 작용했어요. 아무리 상상력이 좋아도 존재하지 않는 조각을 갖다 붙이면 답이 안 나옵니다.
Q. 교육 인터뷰는 아니니까 외할머니에 관한 질문을 할게요. 스탠퍼드 대학교 박사과정 중에 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받으신 뒤 하루아침에 반신불수의 몸이 되셨고, 뇌를 고칠 방법이 없는 현실을 보고 뇌질환 연구를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공학자에서 뇌과학자로 진로를 트실 만큼 외할머니와의 관계가 아주 각별해 보입니다. 외할머니의 고통 때문에 진로를 바꾼다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얼마나 애틋한 관계였으면 그랬을까요.
저는 맏손녀에요. 외할머니께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불효하게 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외할머니는 제게 특별한 분이셨어요. 학교 선생님인 어머니를 대신해 저를 키워 주셨고, 손으로 찢은 김치를 주시고, 입에 넣어 식힌 음식을 먹여 주시며 제게 무한한 사랑을 베푼 분이었죠. 외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너는 커서 꼭 성공한 사람이 되라고. 미국에서 기숙사 생활할 때 외국인 학생한테 섭섭한 감정이 생기면 엄마가 아닌 외할머니께 전화해서 털어놓았어요. 저와 굉장히 깊은 정서적 유대감이 있었죠. 외할머니는 미국에 있는 제게 손 편지를 써 보내는 분이었어요. 유학 갈 때도 할머니가 장조림을 잔뜩 챙겨 주실 만큼 각별했죠. 뇌졸중으로 의식 불명에 들어갔다가 깨어나시자마자 외할머니의 치료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어요.
Q. 뇌질환 환자 가족에게 심각한 문제는 누가 돌보느냐의 문제인데요. 외할머니는 그 후 어떻게 돌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가족 중에 그런 환자가 있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가족 전체가 희생해야 하는 현실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뇌질환의 비극은 환자 본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고 가정이 파탄 나고 나아가 국가가 파탄 날 우려가 있어요. 다행히 할머니에게 네 명의 자녀가 있어서 경제적 문제와 돌봄 부담을 나눠서 했어요. 굉장히 사이좋은 외가였음에도 쉽지는 않았어요.
Q. 전기공학 분야에 계속 있었어도 교수 직함으로 창업을 병행했을까요? 연구를 뇌과학으로 바꾼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전기공학으로 UCLA 교수에 이미 채용됐어요. 그때 갑자기 연구 방향을 틀어 하이리스크로 간 건데 전기공학은 열심히 해왔지만, 뇌질환 연구만큼 열정적인 동기부여가 되진 않았어요. 외할머니 일을 겪고 목표가 분명해지니까 새로운 열정이 살아났죠. 뇌혈관이 터져 뇌가 고장 난 상황, 정말 해결 방법이 전혀 없을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뇌질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제가 꼭 풀고 싶은 문제가 생기면 커리어가 뒤틀리고 인정받지 못하는 광야의 길이어도 따지지 않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당시는 뇌과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정한 방법론이나 기존 학계의 가설에 대한 편견이 없었죠. 한마디로 무식하니 용감했고, 어느 순간 ‘뇌질환과의 전쟁’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었어요.
Q. 교수님은 자극 추구형의 기질이면서 위험을 회피하지 않는 성격이네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정면 돌파하는 타입이니까요. 20년 동안 미국 생활을 하면서 여러 장애 요인이 있었을 것 같아요. 허들의 대부분을 뛰어넘었지만, 그래도 특별히 이건 정말 어려웠다 하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제가 정면 돌파형이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고 불평하지 않는 스타일이거든요. 목표를 세우고 이걸 해야지 하면, 해내는 데만 집중하지 나를 실패하게 하는 리스크에 괘념치 않아요. 그럴 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몰입하는 편이죠. 다만 미국에서 아시안 여성으로서 독창적인 연구를 해나가는 데 말로는 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어요. 한인 과학자를 지지해 주는 네트워크가 있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혼자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죠. 한인들이 힘을 모아 지지하고, 한인 과학자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그런 토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교수님 어록 중에 “나보다 똑똑한 사람 100만 명 있어도 상관없다. 세상에는 우리가 풀어야 할 100만 개보다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한 말이 있어요. 상당히 멋있게 들렸어요.
한국 사회의 학생들이 하나의 트랙에서 경쟁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저는 모두가 선호하는 의학을 선택하지 않고 공학자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세상에 똑똑한 사람 많고 그로 인한 비교와 좌절감으로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도 많은데, 생각해 보면 치매 문제도 그렇고,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가 미지의 영역에 많이 있어요. 내가 똑똑한 사람들과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보다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들과 경쟁해 어떻게 이길 것이냐 하는 사고를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똑똑한 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어떻게 내가 사회에 기여할지 생각하면 무궁무진한 길이 보여요. 그런 마인드셋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의학 분야에서 이방인 취급을 겪기도 했잖아요. 전기공학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은 미친 짓이라고 했고요. 그런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뇌신경 연결망 연구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논문을 완성했고 2010년 네이처에 논문을 싣기도 했습니다. 그때 심경이 궁금해요.
여러 단계의 역경이 있었어요. 처음에 뇌를 연구하는 일을 하기로 하고 제가 가설을 세워 문제를 풀 수 있겠다고 여긴 뒤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너 그러다가 경력이 완전히 끝난다고 지적받았어요. 그때 이겨낸 과정은, ‘어디 두고 보자 내가 해내고 말 거야’ 하는 게 아니고 그런 피드백을 받았지만 정말 안 될까? 고심했고, 선택과 책임의 주체는 저 자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타인의 말에 따라 선택한 다음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고, 선택한 후 결과를 만들어 보자는 결심이 섰죠. 교수님 말씀보다 내 생각을 믿어 봤습니다.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어요. 처음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아이디어를 제출했을 때 지원을 해줬어요. 그 지원이 없었다면 연구할 방법이 없었죠. 이방인 학생에게 기회를 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100명 중 10명이 해보라고 해도 100번 실패하면 그 10명이 제로로 줄어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만하라고 할 때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꼭 될 것 같은 거예요. 120번을 도전하니 결과가 나왔어요. 저는 제가 그렇게 특별히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는 일을 잘하는 거지 세상에는 저보다 똑똑한 사람이 엄청 많아요. 그 많은 사람이 각자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있고, 저는 제가 만든 문제를 풀고 있는 거예요.
Q. 지금 올림픽 결승전 100m 트랙에서 10명이 뛰는 게 아니라 교수님은 자신의 트랙을 정해 달리고 있는 거군요.
맞아요. 제 트랙에서 혼자 달리니까 제가 늘 1등이에요. 단, 기존의 여러 명이 달리는 트랙에서는 옆의 사람보다 한 발만 빠르면 되지만, 제가 만든 트랙에서는 인정받기까지 아주 열심히 고독한 싸움을 치러야죠. 지금까지 오는 데 많은 장애물을 넘었는데 매일 매일이 장애물 넘기와 같은 연구를 15년째 하고 있어요. 처음에 전기공학자에서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실험을 해서 뇌신경과학자로 넘어왔고, 뇌 연구를 하는데 쟤는 어디서 굴러온 듣보잡이야 하는 장애물에 부딪혔죠. 그때부터는 혼자 설정한 트랙에서 정말 많이 뛰어야만 넌 좀 뛰는구나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많은 어려움을 버텨냈죠. 신경과학 기술을 의학에 적용하려고 하면 의학계의 부정적인 판단에 부딪히고, 또 거기를 넘고 사업을 하려고 하니 또 다른 장애물이 가로막아 하루도 편하게 지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많은 장애물을 넘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제일 기뻐요. 제가 뇌질환환자를 도울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는 시점에 점점 가까이 왔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목표로 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오늘이 가장 기분 좋고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해요.
Q. 매일 매일이 힘들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성경 말씀과 같은 이야기네요. 교수님은 자신을 누구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나요?
당신은 직업이 뭐냐? 교수냐, 창업가냐? 할 때 저는 ‘문제 해결사’라고 말해요. 문제를 풀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은 풀 수 있는 문제를 만드는 거죠. 사회에 도움이 되면서 풀 수 있는 문제를 설정하고 그 문제를 풀어내는 게 제 직업이에요. 실생활에서 꼭 해결이 필요한 문제, 풀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는 난이도의 차이가 있어도 저는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지난 15년의 연구로 뇌질환의 측정 기술을 개발했는데 향후 10년은 뇌질환 치료와 완치로 향하고 있나요?
LVIS의 모든 목표는 뇌질환을 치료하는 데 있습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정확한 문제 파악이 없으면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제 문제 파악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치료도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입니다.
Q. 현재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나온 정맥주사 형태의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은 엄청난 개발 비용과 기간이 걸렸어도, 부작용이 있고 약의 효능도 높지 않습니다. LVIS의 뇌질환 치료 솔루션은 무엇인가요?
LVIS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치료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에요. 우린 모두 핸드폰을 들고 다니잖아요. 이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보급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기술이 있기에 가능하죠. 약품 개발하는 방식으로 기기를 개발했으면 우리에게 핸드폰은 없어요. 엔지니어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디자인하면 치료 이슈는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Q. 진단이 쉽게 가능해졌다고 해도 바로 치료제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란 생각도 듭니다.
자동차가 고장 나서 앞으로 안 가는 상태를 예를 들어 볼게요. 앞으로 안 굴러가는 질환이 있다고만 하면 못 고쳐요. 그런데 그 자동차의 엔진오일이 떨어져서 안 간다면 오일 문제를 해결하면 되죠. 혹은 엔진이 작동하지 않으면 엔진을 갈면 되고, 바퀴가 터졌다면 바퀴를 갈면 정비가 돼요. 계속 앞으로 안 가는 질환이라고만 하면 못 고칩니다.
Q. 그 비유는 한 번 손상된 뇌세포를 재건하진 못하지만, 공상과학처럼 인간의 뇌를 배양해서 이식하는 플롯으로 이해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에 갇혀 있어서 문제가 굳어지는데 틀린 말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많이 손상된 뇌를 고치기는 어렵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손상된 뇌만 못 고치는 게 아니라 조금 손상된 뇌도 못 고쳐요. 비유하자면 차가 완전히 불에 타버리면 못 고치지만, 상당수의 차는 그런 상태가 아니면서 수리를 필요로 해요. 엘비스의 첫 번째 제품은 임상이 끝나 식약처 인증을 받았습니다. 서울의 4개 병원과 대구의 6개 병원에서 실증했고 공급 과정에 있어요. 후속 제품들도 계속 출시 준비 중이고요.
Q. 교수님은 보편적인 성공보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역할에 마음을 둔 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외할머니는 못 도와드렸지만, 수많은 할머니 같은 환자를 도울 수 있는 길로 가겠다고 결심하셨고요.
저는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이들이 의사가 되려 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많은 사람이 경쟁에 이겨서 편안한 삶을 사는 목표를 가지는 것을 본인이 그렇게 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주변에서 얘기했을 수도 있겠죠.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져요. 저는 어렸을 때 제 인생의 끝을 생각해 봤어요. 내 삶의 종착역에서 그저 편안히 잘 먹고 잘사는 것으로 만족할까. 아마 대부분 사람이 그렇지 않을 거예요. 제게 삶의 행복 조건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학생들이 있어요. 제가 전한 행복의 조건은, 제가 이렇게 말하면 학생들이 격동하는데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행복은 내가 남에게 사랑을 주는 데서 와요. 그 때문에 내 삶의 끝에서 행복은 내가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는가와 관련 있죠.
청소년들이 생각하기 쉽지 않은 주제지만, 내가 서울의대와 서울법대를 가면 행복할까? 인생의 끝을 그려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저는 뇌질환과 자폐 등 한 번 걸리면 불행하게 살게 되는 질환의 관리가 가능하고 치료까지 이어지는 데 삶의 목표를 두고 있어요. 그런 세상을 꿈꾸다가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잘 살았구나 고백하는 것이 꿈이에요.
Q 치매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초고령사회로 가고 있어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노화 방지'와 '뇌질환 해결' 중에 뭐가 중요하냐고요. '노화' 하면 사람들이 피부 노화를 떠올려요. 피부가 쭈글쭈글해져서 죽는 사람은 없지만, 뇌질환으로는 죽음에 이르죠. 우리가 많은 질환을 극복하고자 하는데, 노화의 핵심은 ‘뇌 노화’잖아요. 뇌 노화인 치매가 일으키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들이 오래 살면서 뇌가 건강하게 살 수 있어야 해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Q. 디멘시아뉴스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치매로 인한 고통 해결에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고 비즈니스로도 중요하기 때문에 양쪽이 난무하는 것 같아요. 환자로서는 희망 고문이다, 어렵고 해결 안 되는 거다, 라며 비관적 견해가 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치료될 것 같지 않은데 너무 쉽게 되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치매 문제는 반드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디멘시아뉴스가 현실적인 눈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정확한 소식을 전해주셨으면 해요. 저는 머잖아 현실적인 해결책이 마련되리라 확신합니다.
2024년 5월 2일
_글 황교진 / 디멘시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