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꿈이 작가와 편집자로
본래 내 꿈은 멋진 러브 하우스를 짓는 건축가였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가지고 있던 제일 큰 소망은 밤과 낮이 바뀐 채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생활을 정상적으로 돌려 드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20년 넘게 숙녀복 도매상을 해오셨다. 밤 10시면 일어나 가게에 나가셔서 다음 날 오후가 돼서야 귀가하신 후 여러 가지 집안일을 정돈하시고 해가 다 떨어질 시간에 주무셨다. 우리 모자는 서로 마주 앉아 일상의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체가 내겐 은혜로운 설교였고 사랑의 교과서였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잊을 수 없는 그날이 찾아온 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다. 당시 간헐적으로 찾아오던 두통을 약으로만 버티시던 어머님이 일하시던 중에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의식을 잃으셨다. 대학원 특차 입학해둔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과 충격을 견디며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간절히 소원했다. “하나님, 이대로 어머니를 부르시지 마시고 꼭 살려 주소서.” 하는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3개월, 일반병실에서 5개월여를 생명의 숨을 놓지 않고 계셨다.
IMF로 어수선했던 1997년 11월에 의식을 잃으신 어머니는 겨울과 봄을 넘기고 이듬해 초여름 무렵, 의료진으로부터 가망 없는 퇴원을 명 받고 집으로 모시고 와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왜?’라는 질문의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하나님, 왜 사랑하는 어머니의 뇌출혈이 진행되도록 내버려두셨나요? 왜 회복불능의 식물인간 상태로 그냥 두시나요?” 이런 질문은 마음을 우울하게 할 뿐이고,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을 찾는 데 전혀 유익하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을 ‘어떻게?’로 바꾸었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어머니의 생명을 제가 어떻게 편하게 간호해 드릴 수 있을까요? 의학적 전문 지식이 없는 제가 어떻게 이 고통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기도 제목을 바꾼 후 바로 기적의 응답을 받았다.
하루 24시간을 어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매 시간별 섬세한 계획표를 짜서 그대로 실행했는데 병원에서 치료받으셨을 때보다 혈색과 체온, 혈압 등이 훨씬 좋아지셨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했던 어머님의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드라마틱하게 어머님의 의식이 돌아오는 초자연적인 기적보다 더욱 어려운 기적을 경험했다. 그것은 상황은 바뀌지 않고 더 괴로운 일들이 많아져도 내 마음이 바뀌는 기적이다.
17년째 식물인간 상태의 어머님을 위해 애쓰면서, 힘든 광야에서 길을 잃지 않고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눈에 띄지 않아 기적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상황은 그대로인데 관점이 바뀌는 것은 초자연적인 회복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어머님의 의식을 회복시켜 주셔서 예전처럼 같이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는 일상을 허락하진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를 집에서 간호해 드리며 하루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하고 매일 아침 목욕시켜 드리고 250킬로칼로리 이상의 열량을 계산하여 영양죽을 만들어 드리고 수시로 목에 쌓인 가래를 석션해 내는 등의 일로 여유 없이 살았지만 한순간도 좌절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내 손길에 편안히 숨 쉬시는 어머님 얼굴을 뵈면 모든 피로와 절망이 사라지는 은혜 속에 강해졌다.
내겐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하루하루의 기록을 글로 남기는 것이 유일한 삶의 활력소였다.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며 써온 7년여의 신앙고백은 2004년 여름 《어머니는 소풍 중》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방송 출연과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화려한 조명에 이끌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삶의 진정성을 헤치는 일임을 묵상하며 인간적인 방송 출연을 거의 거절했다. 매체 파워가 큰 방송들을 포기한 후 저자 인세 수입으로는 어머니 병원비에 턱없이 모자라는 일에 부딪혔다.
그때 하나님은 다른 길을 예비해 두셨다. 7년 넘게 바쁜 백수로 지내며 어머니 간호를 소재로 신앙에세이만 써온 내게 큰 기업체 홍보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머니를 간호하던 중에 스스로 해온 글쓰기 훈련을 바탕으로 기독 도서 기획 편집자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기적은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나는 결혼은 절대 못하리라 생각했고 거의 포기하고 지냈다. 결혼을 하기에는 현실적인 걸림돌이 너무 컸기에 평생 싱글로 살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걸림돌이 불가능하리라 여긴 결혼의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어머니 간호를 돕고 싶다며 다가온 지금의 아내는, 내가 어머니를 간호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 영혼을 다루시는 사랑을 느꼈다고 했다.
결국 어머니는 의식 없는 식물인간의 모습이시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저자로 만들어 주셨고, 적성에 맞는 직장에 취직하게끔 훈련시켜 주셨으며, 본질적인 가치를 아는 귀한 아내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리고 아내의 큰 눈을 닮은 건강한 두 아들도 허락해 주셨다. 나는 보이는 건물을 아름답게 짓고자 하는 건축가의 꿈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지어 드리는 영혼의 건축가로 인생의 궤도를 수정했다. 이 모든 일은 의식 없이 누워계시지만,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신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사람들이 불시착했다고 판단한 삭막한 광야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새로운 목표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끌려왔음을 깨닫는다. 그 길에는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가 있었기에 결코 적막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가져온, 어머님의 밤과 낮을 정상적으로 돌려드리고자 했던 소원은 200퍼센트 이상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지금 매일매일 밤처럼 편안하게 주무시며 마치 잠시 소풍 중이신 듯한 얼굴로 하루하루 쉬고 계시기 때문이다. 심신이 고단할 때면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기적, 마음의 기적을 떠올린다. 그리고 힘주어 기도한다.
“우리 모자를 아주 어려운 기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201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