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몸이 회복되는 기적

by 황교진

천국대학 사랑학과


집에서 어머니를 간호하며 일상이 완전히 바뀐 어느 날이었다. 교회에서 청년회 소그룹을 같이 한 윤하와 잠시 얘기하다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오빠 어머니 편찮으신 지 얼마나 됐죠?"

"이제 4년 가까이 된 것 같아."

"거의 대학을 한 번 더 다닌 거네요."

"그렇게 됐네. 군대를 다시 다녀와도 충분한 기간이 흘렀구나."

"저라면 교회도 안 나와 버렸을 것 같아요."

"처음엔 그랬지. 중환자실 오가며 절망과 분노로 뒤범벅이 된 마음에 어느 구석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예배 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군대를 한 번 더 다녀온 것보다 대학을 한군데 더 다닌 걸로 생각하는 것이 낫겠다고. 군대는 힘들고 부자유한 강렬한 기억을 남기지만, 대학은 배우고 애쓰는 학문의 기간이니까. '천국대학'의 '사랑학과'를 새로 다닌 셈 치자. 이미 사랑학에 관한 논문의 개요가 머리에 꽉 차 있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나는 가장 듣기 싫다. 효는 특별한 사람의 행위로 인식하고 긴 병에 물러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장기 중환자로 차도가 없으면 곁에 있는 가족에겐 짐이 되는 세상이다. 간병 자살 문제도 심각해졌다. 나는 사랑이란 말이 좋다. 쿨한 사랑이 아닌 책임지는 따뜻한 사랑이 좋다. 사랑의 핵심은 책임지는 것과 오래 참음이다. 사랑의 설명은 '언제나 오래 참고'로 시작해 '모든 것을 견딘다'로 끝난다. 책임감과 인내가의 사랑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사랑의 본질인 그 두 가지를 배우는 대학에 나는 다니고 있다.


매일 밤을 새우며 간호하다 보면 각종 통증은 자연스럽게 훅 들어온 친구가 된다. 아침에 허리를 펴고 어머니 병상을 정돈하다가 크게 재채기 한 번 해도 허리 근육이 놀라 담이 걸린다. 요통뿐만 아니라 기저귀 갈 때 양손을 잘 쓰기 위해 뒷목으로 어머니 다리 무게를 감당하다 보면 목 관절은 뻐근하지 않은 날이 없다. 관절과 호흡기 모두 한계 이상의 고통을 달고 산다. 숨이 막히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하루하루에 쉴 수가 없으니, 견디기 위해 천천히 근육을 사용하여 자가 진단을 하고 체력 관리를 한다. 그래서 내가 고통을 견디기 위해 가장 즐기는 시간이 스트레칭과 글쓰기이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는 스트레칭은 몸을 치유하고 글쓰기는 마음을 치유한다. 어머니 덕분에 철저한 자기 관리의 습관을 얻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간호한 지 석 달이 지나자 월경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9개월 이상 간호할 때 어머니가 생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발병 후 만 50의 연세를 맞으면서 폐경이 되신 줄 알았다. 그런 쪽에 아는 것이 없고 의식이 돌아오는 데만 신경을 썼다. 1998월 7월에 집에 모시고 와서 병실로 꾸민 방에서 내 힘으로 간호하기 시작한 뒤로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이 될 무렵 기저귀를 가는데 갑자기 혈흔이 냉과 섞여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혈루인 줄 알았다. 성경의 복음서에 나오는 혈루증 여인이 떠올랐다. 예수님 옷에 손을 대는 순간에 나은 그 여인처럼 어머니에게 심각한 병이 찾아온 걸까. 여동생과 가정간호사님 통해 나는 어머니가 생리를 시작한 것을 알았다. 매주 한 차례 방문하시는 가장간호사님은 어머니 신체기능이 좋아져서 생긴 것이며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얘기해 주셨다. 가정에서 케어하는 환자 중에 상태는 가장 심각하지만 관리는 가장 뛰어나다며, 이런 현상은 Hopeless 환자들 가운데 처음 보는 경우라며 얼마 뒤 서울대 가정간호팀이 오셔서 취재해 가셨다. 어머니는 갑자기 쓰러지셔서 움직이지 못하고 한마디 말씀도 못하시는 중환자가 되신 후 1년 동안 월경이 없다가 다시 시작한 뒤 2004년 2월 장기 환자 입원이 가능한 재활병원에 모시고 나서까지 7년을 건강하게 매달 마술에 걸리셨다.


생리하시기 직전에는 항상 컨디션이 안 좋아지신다. 열도 높게 올라가고 뭔가 답답해하는 것이 내 직감에 느껴졌다. 우리 모자는 한몸이나 다름없어서 어머니의 모든 상태는 내 몸으로 전달된다. 의식이 없는 중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내게 이 센서가 생긴 것은 큰 축복이다. 막상 생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어머니 몸은 안정이 되고, 3일 정도 지나 마칠 무렵엔 얼굴빛이 아주 고와지신다. 내가 연구하고 개발해 낸 죽을 드신 뒤부터다. 생리 양도 많아 밤 시간엔 기저귀와 패드를 넉넉하게 깔아서 시트에 새지 않도록 조심한다.


난 남자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런데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게 되는 부분이 있다. 새벽에 몇 번씩 기저귀를 갈 때 맡는 냄새는 평소와 전혀 다르다. 생리 혈과 소변이 섞여 풍기는 심한 악취를 맡게 된다. 그걸 며칠씩 그것도 잠깐 눈 붙이다 벌떡 일어나는 새벽에 맡을 때 나는 사랑을 묵상한다. 얼굴을 어머니에게 가까이 대고 기저귀를 뽀송뽀송한 새 것으로 갈고 베이비 분을 바르고 싱그러운 아기 피부로 바꾸는 시간에 나는 코를 막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내겐 결코 고약한 냄새가 아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분의 몸이 아프면 내 마음이 더 아프다.

사랑하니까 그분의 몸에 냄새가 나면 내 마음엔 향기로 다가온다.

그분은 향기롭게 되고 난 거룩한 땀냄새로 얼룩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아프면 더 곁에 머물러 함께하는 시간이 축복이다.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며

아픈 사람을 두고 떠나기도 하고

아픈 부모를 서로 떠넘기기도 한다.

형제가 한두 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형제 많은 집이 서로 떠넘기고 싸우다가 소란스럽게 하여

혐오감을 주기도 하더라.


매달 어머니 월경이 끝나면

중환자 휠체어에 안전벨트를 채워 태워드려서

침대 시트를 깨끗한 걸로 싹 갈고 나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조심해서 번쩍 어머니 몸을 들기 위해 길러놓은 팔뚝의 힘이

제 몫을 다하는 날이다.

담이 걸린 등이 좀 불편하지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컨디션에 상관없이 늘 해오던 일을 하는 데 숙련이 되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컨디션(?)과 상관없이 늘 동일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깨끗한 마음의 새 옷으로 갈아 입혀주시고

큰 위험에서 번쩍 들어올려 주신다.

그분이 땀을 흘리신 양을 다 합쳐서 보여주신다면

노아의 홍수가 다시 날지도 모른다.

내가 고통을 겪는 동안 더 평안하도록 향기롭게 바꾸시는 분이다.

마음 아픈 가운데 옆에서 머무르시며 돌보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24시간 간호 타임테이블


두 달에 한 번 어머니를 머리를 깎아드린다. 나는 의사, 간호사, 영양사 외에 이렇게 가위손도 된다. 어머니 머리 깎아드리는 날은 아침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힘을 많이 쓸 각오를 해야 한다. 그 전날 밤부터 꼭 기도를 드린다. 머리 깎는 동안 가래가 쌓여 호흡이 막히지 않도록, 내 팔과 허리힘이 딸리지 않도록.


머리 깎기나 목욕, 모두 침대 위에서 이뤄진다. 우선 식염수를 묻힌 솜을 핀셋으로 잡고 입안 청소를 한다. 가그린을 묻힌 거즈를 핀셋에 감아 혀를 닦아낸 후 물을 반 컵 정도 입에 넣어 드린다. 적은 양의 물이지만 못 삼키는 환자에게 입에 물을 넣어드리면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요플레 등으로 삼키는 연습을 충분히 한 다음 표정을 봐가며 시도해야 한다. 석션을 하며 T튜브 부분의 Y거즈 드레싱을 마친다. 깨끗한 정수기 물을 받아 가제수건을 적셔 얼굴을 닦아드린다. 눈 주위와 귀 뒷부분과 목 주변을 깨끗하게.

침대 높이를 낮춰 머리 감을 준비를 한다. 수건 두 개를 둘둘 말아 어깨 밑에 받쳐서 머리와 침대 사이 공간을 확보한다. 방수포를 어깨 아래에 대고 세숫대야에 담아 놓은 물로 머리를 적신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머리를 잡아 주는 동안 의료용 가위로 귀 주위부터 깎아나간다. 잡아 주는 사람이 더 힘들기 때문에 빨리 양쪽 귀 윗부분의 머리카락을 정돈한 후, 내가 어머니 머리를 잡고 아주머니에게 가위를 넘겨 머리 위와 뒷부분의 머리카락을 고르게 잘 커트하도록 유도한다.

이때 가래가 끓으면 큰일이다. 잘 견디시도록 조심조심 신속하게 자른다. 머리카락 범벅이 된 세숫대야의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떠 와서 머리를 헹군다. 여러 번 물을 새로 떠와서 헹군 후, 샴푸 칠을 하고 페트병에 미리 담아 놓은 물을 샤워기 삼아 머리 위에 부어 깨끗하게 헹군다. 눈과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조심 수건으로 닦아 드리며 귀와 목 뒤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머리카락들을 떼어 낸다.


목에 쌓인 가래를 석션하고 감기 들지 않도록 빨리 드라이로 머리를 깨끗하게 말린다. 면봉으로 귀의 물기를 제거하고 코 속도 청소한다. 스킨을 얼굴에 발라드리고 웃옷을 벗기고 등에 수건을 깔아 가며 목욕을 시킨다.

한쪽씩 등을 들어 닦고 그 다음 다리, 엉덩이 모두 비누칠하며 깨끗이 씻긴 후 바로바로 수건으로 닦는다. 발까지 완전하게 씻긴 뒤 등 아래 시트를 한쪽으로 밀어 넣어 빼낸다. 성인용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와 상의를 입힌다.

이렇게 머리 깎기와 목욕이 끝났다. 울트라 가위손 아들의 손을 빌려 짧게 커트하신 우리 엄마. 멋지다, 활달한 커리어 우먼처럼 보인다.


일주일에 두어 번 휠체어를 태워 드려 편안하게 앉아 있도록 해드리는 데 머리를 깎은 날은 휠체어 태우는 일이 필수다. 휠체어를 옆에 갖다 놓고 나는 어머니 허리춤의 환자복을 잡고 보조해 주는 아주머니는 어머니 무릎 아래에 손을 넣어 함께 동시에 들어 휠체어에 부드럽게 앉힌다. 이때 끓는 가래를 빨리 석션하고 등에 옷이 엉키지 않게 잡아당겨 펴준 뒤 허리와 발목 안전벨트를 고정한다. 안전베개로 머리 위치를 잘 정한 후 휠체어를 밀고 거실로 나온다.

어머니는 휠체어에서 아주 편안해하신다. 누워만 계시다가 앉혀드리면 또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되시는 거다. 집 바깥은 공원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도 거슬리는 데다 공기도 나쁘기 때문에 거실과 부엌만 왔다 갔다 하지만, 그래도 방안 공기와 거실 공기는 완전히 다르다.

앉아 계시면 깊이 쌓여 있던 속가래도 배출되고 주사기로 넣어드리는 죽도 튜브를 타고 잘 내려간다. 준비해 둔 두유와 주스를 레빈튜브에 꽂은 주사기에 넣어드린 뒤 주무시는 틈을 타 손톱을 깎아드린다.

거실의 휠체어에서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우리 모자가 기거하는 안방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대청소를 한다. 침대 시트도 속까지 홀라당 갈아 놓는다. 에어매트 상태도 점검하고 가습기도 청소한다. 이런 날은 아주 바쁘기 때문에 보통 아무 약속도 하지 않고 컨디션 조절에 집중한다. 그래야 또 밤에 잠 안 자고 간호할 수 있다.

어머니가 잠에서 깨시면 다시 나는 허리춤을 잡고 도우미 아주머니는 무릎 아래 손을 넣어 맞잡아 동시에 들어 침대에 눕혀드린다. 어머니 몸을 부드럽게 잘 안고 침대 위에 내가 먼저 올라가 조심스레 먼저 누워야 충격이 덜하다. 바지를 벗겨 기저귀를 빼내고 평면기저귀를 잘 깔고 깨끗한 이불로 덮어드린다.

이렇게 머리도 깨끗하게 다듬고 깨끗하게 청소한 방에서 깨끗한 시트 위에 어머니를 다시 눕혀드리고 나면, 몸은 천근만근 피곤하지만 마음은 무척 가볍고 개운하다.

내 영혼의 얼룩을 삶아 빨고 내 모습을 깨끗하게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할까?

예전의 나는 팔굽혀펴기 50개가 한계였다. 지금 200개 이상 해내는 울트라 교진이 된 것은 모두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얻게 된 축복이다. 그래서 여름엔 쫄티의 제왕이 되곤 한다. 이제 내 몸은 하나님이 디자인해 주신 새 몸이다! 스트레칭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닦은 이 울트라 체력으로, 환난 중의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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