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해야 하는데 에너지가 없다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과 쉼에 대한 갈망

by 황교진

중년 우울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고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의 검은 개가 내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어 꼼짝 못 하게 만든다. TV를 켜고 예능, 드라마를 보다가 잠을 자다가 채워지지 않는 의욕과 이런 식으로 반복되는 시간에 스스로가 역겨워 집을 나서 자전거를 탔다.


안양천을 달리며 기막힌 하늘 풍광에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달리다 멈추고 찍고 또 달리다 멈추고 찍었다.
이렇게 해지는 하늘 찍으며 자전거 타니 위로가 됐다. 훗날 그래도 남은 것은 그때 한 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집에서 8년을 어머니 간호할 때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못 쉬었어도 매일 혼자서 2평 남짓한 어머니 병상 옆 공간에서 운동을 했다. 몸은 날로 좋아졌고 정신도 맑았고 신앙은 순수했다. 순진했다는 생각도 든다.


난 2017년 가을에 20년을 꼭 채운 어머니 간호를 마쳤다. 긴 고난의 터널을 졸업한 기분이었지만,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성찰을 한 것은 1년 반이 지난 요즘이다. 대학 4학년 졸업시험을 치던 때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되신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여 청춘의 시간을 병간호로 보냈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내 인생을 매어놓고 산다는 건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들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의대생이 아닌 공대생 출신으로 식물 상태의 중환자를 잘 간호해 낸 것에 기쁨이 있었고 생기가 있었다. 집 밖에 나갈 시간이 없었고, 나가더라도 간호에 필요한 물품을 사 오거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잠깐 영화 보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내 청춘은 24시간 엄마의 호흡, 손과 발, 욕창은 절대 틈타지 않는 피부, 의식은 없지만 건강한 바이탈 수치에 집중한 채 보냈다. 그 이야기로 책을 냈고, 집에서 간호해 오던 어머니를 병원에 옮겨 계속 이어서 간호하면서 직장을 얻어 일을 했다. 글을 쓰고, 책을 편집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일을 하면서도 내 우선 관심은 어머니 상태에 있었다. 매달 수입은 모두 병원비로 지출했다.


그런 내게 다가온 아내를 만나 결혼해 두 아들을 두기까지 내가 견디고 책임져야 할 일상의 볼륨은 슈퍼파워를 요구했고, 견뎌냈다. 아니, 견딜 수밖에 없었다. 늘 통장은 마이너스였고, 어머니 상태는 미세하게 안 좋아져 갔고, 두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갔다. 나는 가장이면서 병간호하는 아들로 살며 나 자신의 위치는 '늘 참고 견디는 곳'에만 두었다. 괴롭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만히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병원비도 걱정해야 하지만, 가방에 간호용품을 담아서 병실에 달려가 병원에서 하지 않는 간호를 보충해 드리는 데 정신력과 체력을 써야 했다.


1997년 김영삼 정권 말기에 와상환자가 된 어머니는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뀐 20년을 꼭 채운 2017년 가을에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다. 이제 좁은 병상이 아닌 천국에 계신다는 믿음은 내 마음의 짐을 모두 해소시켜 준 감사이면서 이제 나의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시작점을 선물해 주었다. 긴 병간호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기업을 창업했고, 예비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하지만 장기간 수입 없이 옳고 이타적인 일만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난 내가 시작한 일이 비즈니스가 아니라 봉사의 영역이라 결론짓고 다시 생업 전선에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마음이 아팠다. 청소년기부터 어머니 인생을 좀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이 소원이던 내 삶에서 더 이상 어머니 간호와 병원비 부담의 큰 짐이 덜어졌지만, 잘 갖춘 항구가 아닌 망망대해에 홀로 놓여 있는 기분이 자주 엄습했다. 그때 내게 도쿄 여행을 선물해 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이 비행기부터 숙소와 여행지, 입장료와 음식까지 모두 책임져 주셨다. 어머니 병원 주변, 집과 직장에만 매여 있던 내 병간호 인생에서 편찮으신 어머님도, 아내와 아이들도 없는 공간에 처음 가보았다. 해외여행이 흔해져 TV만 틀면 <배틀트립>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나는 마흔여덟 살에 여권을 만들어서 떠났다.


이런 신세계가 있다니!!!


한국을 떠난 여행지에서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유로웠고 신비로웠다. 꿈같은 3일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뒤 나는 언제 또 꿈같은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간절해졌다. 가장으로서 경제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하루하루에 집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간절함이 충돌한다. 쉬고 싶고, 몸에 에너지가 없다.


뜨거운 8월 초, 휴가다 바캉스다 하지만 나는 매일 우울과 싸우고 있다. 쓸데없이 안 좋은 기억은 예민할 대로 예민하여 10년 전 회사에서 당한 억울한 일이 떠오르고, 9년 전에 겪은 어떤 모욕감을 그냥 참아준 것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화가 나기도 한다. 상상 속에서 그때 나를 들이받은 직원을 소환해 마구 심판하고 헐뜯으며 지금 뭐 하고 있나 다시 스스로를 정죄한다. 나는 여전히 순진해서 용서도 어렵나 보다.


아들이 만성 편도선 수술 후 오늘 2차 진료를 받았다. 한 주가 지나 잘 아물고 있다는 진료받으며 절대 죽 외엔 먹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집에 오자마자 몰래 핫도그를 절반이나 먹어 심하게 혼냈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하는 생각보다는 너무 말을 안 듣는다는 욱하는 심정만 들었다.

진료비를 보험사에 청구하는 간단한 인터넷 작업에도 힘이 쭉 빠진다. 이런 쉬운 일도 부담이 될 만큼 에너지가 소진됐다. 쉬어야 한다고 자가처방을 내렸다. 엉덩이가 아프도록 모니터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정신 좀 차리자고 해 떨어지기 전에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하늘 사진을 찍는 것이 좋은 자가 처방이 됐다. 집에 들어가면 찬물로 샤워하고 일을 좀 해야겠다. 의욕이 좀 채워질까.




이전 01화나는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