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하다

아플 수조차 없는 중년에 든 고립감

by 황교진

2019년 폭서기에 나는 너무 더워서 외근을 제하고는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김정운 교수의 신간이 대출 가능으로 떴기에(<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이 책은 도서관에 2쇄가 들어와 있고, 대출 대기를 해야 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자료실 서가를 찾았다. 그런데 김정운 교수 책 바로 옆에 마음을 끄는 제목의 작은 책이 있어서 먼저 읽어 보았다.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라는 제목에 '아픔을 마주하고 헤쳐가는 태도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 김정원은 여러 언론사를 거쳐 MBC 기자로 일하다가 작년에 '우울증 환자' 진단을 받았다. 이 책은 그의 첫 에세이다. 살아가면서 두세 권의 책은 쓸 작정이었는데 그 첫 책이 자신의 우울증 고백서가 될 줄 몰랐다는 저자의 소개가 가슴을 울렸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후에 에세이 신간에 우울증 고백서가 여러 권 나와 있다. 이제 우울증은 숨겨야 하는 비밀스러운 병이 아니라 책으로 고백하고 나누는 '좋은 일기'가 되었다. <죽고 싶지만...>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출간 1년이 되기도 전에 2권이 나왔다. 우울증을 조심스러워하던 우리 사회가 이제 경쟁하듯 고백서가 나오니, 우울 사회의 민낯이 스스럼없어지고 있다고 봐도 될까.


저자는 언론사에서 일하며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스스로 정신과에 찾아가 진단을 받기로 한다. 007 작전처럼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피해 가며 쑥 들어가 받은 정신과 진료에서 중간 단계의 초기 우울증을 진단받는다. 10명이 앓으면 1명만 정신과를 찾는다는 우울증을 인정하고 극복해 가는 그의 기록에 깊이 공감했다. 180쪽의 적은 분량이기도 하여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편집자가 어느 정도 교정했을 터이나 기자인 저자의 글은 깔끔하고 명료했다. 저자의 이메일 주소도 기록해 두었다. 그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았다. 이 책을 읽다가 내 상태도 우울증 중간단계의 어디쯤이지 않을까 싶다. 1년 넘게 가슴이 답답하고 삶의 에너지가 바닥나 있다. 20년 동안 의식 없는 어머니 간호하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감당하느라 삶의 에너지를 모두 다 쓴 것 같다. 열정과 기대, 호기심마저 없다. 그 어느 것에도 기쁨이 없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나를 규칙에 얽매이려는 사감 선생님 앞에 서는 긴장감이 든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괴로워서 일어나자마자 무조건 가방 들고 헬스장부터 가서 근력을 키우는 것으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다.


크리스천이면서 왜 기도하고 예배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마음을 닫고 싶다. 그렇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가끔 돌연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심하게 곤두박질친 상태에서 견디고 감당하라는 명령을 스스로 던져 오다가 어디선가 줄이 끊어졌다. 추락하는 사람에게 율법적 정답을 말하지 말고 쿠션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쿠션을 볼 수가 없다.


김정원 님은 딸이 있고 말이 잘 통하는 아내가 있다. 그가 정신과에서 '다음 예약을 잡지 않아도 되는' 데 이르기까지 가족이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가족의 끈마저 힘이 되지 않고 있어 중증이란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심각해서 오픈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우울감을 깊이 느끼는 나 자신의 속 깊은 심정을 제대로 고백한 적이 없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이 생각이 나를 더 깊은 수렁에 집어넣고 있다. 다들 그런 거라고 말하는 순간 내 마음의 병은 더 진행된다. 나는 이상한 부류가 되고 혼자 유별난 약점을 지닌 동물처럼 취급되어 마음을 닫고 만다. 살아갈 의욕은 저하되고 고립감이 드는 순간, 나는 가장인데, 책임을 질 가족이 있는데, 하는 자책감이 발동해 더 우울하게 만든다. 이 악순환을 이겨내기 위한 자아 존중감을 상실한 지 오래됐다. 언젠가 병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운동으로 해결하며 좋아지길 바라고 있다.


며칠째 아무 글도 못 쓰다가 이 서론 격의 글을 쓴 게 자가 치유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오랜 병간호를 견딘 치유의 글쓰기가 지금도 내게 유효하길 기대한다. 이 기대감마저 사라진다면 너무 절망적이다. 한국 사회의 중년으로 우울하지 않게 사는 비결이 있을까. 제정신으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중년 우울>이란 제목으로 나를 회복하는 글 여행을 시작한다. 아플 수조차 없는 중년의 어느 날인 오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