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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Jan 28. 2022

척추가 망가지니 일상이 무너졌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왼쪽 발은 찬 물에 담가진듯 시렵고 발바닥은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저릿저릿하다. 왼쪽 엉치는 살짝 시큰 거리고 오른쪽 날개뼈 주변이 콕콕 쑤신다. 조금 전 부동산을 다녀오느라 신었던 양말도 족쇄를 찬듯 불편해 바로 벗어던졌다.


카페 주방에서 일을 하다보니 요령껏 허리에 좋은 자세를 취하려고 해도 무거운 걸 들어 나르거나 허리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해야만 할 때가 많다. 특히 바닥에 있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릴 땐 정말 깊은 한숨이 나온다. 허리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겠지만 그런 동작을 할 때는 무릎을 완전히 굽히고 다리 힘으로 움직여야지 허리 힘으로 움직이면 큰일 난다. 물론 건강한 사람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들어올릴 것이다. 요즘들어 부러운 게 딱 그거다.



사소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사람들.



카페에 몇 시간씩 앉아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것. 바닥에 놓인 무거운 물건을 조금의 기합만으로 번쩍 들어올리는 것. 강도 높은 운동이나 스릴 있는 스포츠를 즐기는 것. 미용실에 가서 한 시간 이상 앉아 머리를 치장하는 것. 굽이 있는 예쁜 신발을 신는 것. 좌식 식당에서 편안하게 앉아 밥을 먹는 것. 한 시간 이상 앉아 이동해야 하는 거리로 마음껏 여행을 떠나는 것. 이런 것들이 내겐 어느새 힘들거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2022년에 난 서른세 살이 되었고 10년 전인 스물세 살에 퇴행성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냐면 마트에서 공산품 진열과 여러가지 업무를 하고 있었다. 일손이 부족하면 계산대에도 들어가고 박스를 나르거나 청소하는 건 기본이었다. 무거운 음료 같은 것들은 카트에 실어 옮겼지만 그걸 카트에 싣는 과정은 꽤나 힘들었다. 그 마트에서 2년 3개월을 일했고 일하는 중간에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허리통증이 심해 아침에 이부자리에서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고 30분 이상 조심스럽게 스트레칭을 한 뒤에 겨우 일어났다. 하지만 또 오후가 되면 멀쩡해져서 병원에 가는 일을 계속 미루게 되었는데 어느날은 오후가 되어도 여전히 허리가 찢어질 것만 같고 걸음을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근처에 있는 신경외과에 방문해서 난생처음 MRI라는 것도 찍게 되었다. 의사는 바로 내일 시술을 해야한다고 권했지만 가족 중에 허리 시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어 덜컥 겁이 났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그 다음날 바로 목동에 있는 한 한방 병원에 데리고 가 입원을 시켰다. 그곳에서 시술 대신 침 치료와 물리치료 약물치료를 받으며 한 달 정도 쉬었다. 허리 통증이 많이 줄었고 일상 생활에 무리가 없어져 나는 다시 마트에 일을 나갔으며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10년만에 허리는 내게 또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제발 날 좀 쉬게 내버려두라는듯 했다. 2021년 10월 말. 카페 마감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별안간 오른쪽 골반이 아파 걷기가 힘들었다. 다음날이면 괜찮겠지 싶었지만 3일 4일 통증은 계속 되었고 서서 양말을 신는 동작 마저도 되질 않았다. 왼쪽은 멀쩡한데 오른쪽만 그랬다. 잘만 되던 양반다리도 오른쪽 골반이 아파서 할 수 없었다. 처음엔 고관절 문제인 줄 알고 정형외과를 찾아갔지만 엑스레이상으로는 이상 무. 약물과 물리치료를 권유 받았다. 3일 뒤 나는 통증의학과를 찾았다. 그곳에선 고관절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허리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떠올랐다. 내가 23살에 퇴행성 디스크 판정을 받은 사람이었지, 라는 게. 10년 동안 허리가 멀쩡했던 것은 아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바늘로 허리를 찌르는듯 아팠고 자다가 허리 통증에 깬 적도 많았다. 오래 앉아있으면 왼쪽 엉치가 시큰시큰 거렸다. 하지만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24시간 이어지는 통증도 아니어서 그냥 쭉 달고 살아왔다. 아무튼 그 골반 통증을 시작으로 세 달이 흐른 지금까지도 난 통증의학과와 신경외과를 다니며 물리치료, 도수치료, 약물치료를 하고 있다. 통증의학과에서 신경 주사도 두 번이나 맞았지만 한 달 정도 효과가 있었고 그 뒤론 다시 통증이 돌아왔다.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일자목. 내 척추는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목 뼈는 또 어릴 때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너무 작단다. 평생 자세를 곧게 하려고 애쓰며 살지는 않았다. 청소년기엔 특히 다른 아이들처럼 불량한 자세로 앉고 서고 누웠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과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주변인에겐 없는 이런 통증들이 왜 나만 이렇게 짓누를까. 약한 뼈를 물려준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관리는 내가 못한 거니까. 처음 디스크 판정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라도 척추 위생에 신경을 쓰며 살았더라면 지금쯤 병원을 들락거리지 않았겠지. 디스크 환자이면서도 지금 당장 걸을 수 있으니까, 일 하는데 문제 없으니까 내 몸을 너무 방치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최근엔 허벅지 피부 안쪽에서 전기가 흐르는듯한 느낌이 든다. 찌릿한 게 아니라 스멀스멀 간지러운 느낌. 무릎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프다. 어제 신경외과에 가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말초신경 관련 된 검사도 받아보길 권하던데 그 검사를 해볼까요?" 라고 했더니 의사가 "환자분 증상은 말초신경과는 연관이 없어 보이니 일단 약물과 물리치료를 병행하시고 그래도 통증이 지속 되면 MRI를 다시 찍어보죠. 10년 전에 찍고 안 찍으셨으니..."라고 했다. 나도 내 척추 상태가 정말 궁금하다. 그러나 지난 달에 방문한 큰 병원에서도 MRI는 선뜻 권하지 않으셨다. 일단은 약물과 물리치료... 어딜가나 듣는 얘기다. 의사 말대로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아도 통증이 사라지질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다른 병원을 계속 찾아다니게된다. 통증 없던 예전의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걸까. 하긴, 몸에 아무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지인 중 한 명은 디스크 통증은 운동으로 이기는 거라며 자꾸만 체육관에 다니라고 한다. 운동 왜 하기 싫겠어. 나라고 운동이 하기 싫어서 안 할까? 누구보다 운동해서 건강해지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하지만 어떤 운동을 해도 강도를 최소한으로 하고 횟수를 적게 해봐도 허리 통증이 따라온다. 나가서 한 시간 걷는 것도 이제 골반 통증때문에 쉽지 않다. 수영장에 가서 아쿠아로빅이라도 해볼까 싶은데 코로나 시대가 또 도와주질 않는다. 너무나 당연하고 소소한 일상들에서 멀어지는 게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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