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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혜 교수 Jul 26. 2022

MICE로 ESG하라 1

S에 관해(발달장애 예술인을 세상 밖으로 빛나게 했던 SAF를 회상하며)

"자폐라고 차별하지 마세요. 저는 더 받지 않고 정가로 팔겠습니다."


자폐를 가졌지만 미적 감각이 뛰어나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로부터 일침을 쏘였다. 무거운 쇠망치로 앞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느낌. ‘아, 나야말로 이렇게 차별하고 있었구나. 오히려 배려가 차별일 수 있겠구나.’ 자폐를 가진 예술가에게 상품가격을 더 높여 팔아드리겠다는 말도 안되는 배려(?)로 생긴 헤프닝이다. 뼈에 새길만한 교훈을 얻은 날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혹자는 드라마이니까 가능한 일이라며 발달장애인의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2015년 직접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자폐도 가능하다, 아니 더 뛰어날 수 있다!’    

 

2015년 5월, 발달장애를 가졌지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작가들을 모시고 세상에 그 빛남을 알리는 행사를 맡아 기획할 때였다. 대행용역이 아닌, 실제 기획행사라는 점에서 PCO(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 PM에겐 획기적인 일이었다.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이 ‘창조아카데미’라는 사업을 운영하며, MICE전문가를 기르는 과정에 1년에 4억 7천씩 3년간 지원금을 주던 마지막 차 해였다. 사업 총괄이자, CPMP(Convention Planning and Management Practicum)라는,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해보는 과정의 PM을 맡아 MICE행사를 진행하였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려운 기획이기도 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분들의 행사명은 또 어떻게 정해야할지. 각고의 노력 끝에 정한 행사명 ‘Special Artist Festival’.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는 실력의 예술가들이었고, 장애만 빼면 일반 예술가보다 더 천재적으로 뛰어난 작가들이 많았다. 교육, 스포츠와 관련된 분야에서는 발달장애에 대해‘Special’라는 수식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었기에 아이디어를 얻어 행사명을 선정했다.      

장애인 예술가들은 문화콘텐츠의 제공자로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소재나 예술적 기법을 통해 새로운 예술영역을 창조해나가고 있다. 장애인 예술가들은 디자인과 미술, 음악, 무용, 문학 등의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하나의 작품, 하나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흘리는 땀과 노력 그리고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은 더 큰 감동을 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들의 재능을 펼칠 場과 이들의 창작활동을 예술시장으로 매개해주는 지원과 마케팅이 부족한 실정임을 인지하여 본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다.

     

목표는 분명했다. MICE는 무언가의 성장을 돕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컨퍼런스, 전시, 이벤트 등의 다양한 포맷을 통해 장애인예술의 가치 대한 재평가와 신진작가의 발굴, 장애인 예술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및 활동영역의 확장 모색, 장애를 가진 예술인의 육성방안 논의, 장애인예술 가치 제고 및 대중화를 꾀했다. 또한 특별한, 유니크한 디자인/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고, 소비자들은 이미 벌써 ESG 관점에서 착한 소비, 나누는 소비의 관점으로 구매행동이 바뀌고 있던 시점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행사의 연사, 특히 소위 말하는 ‘Big Shot’을 모시는 일이었다. 교통사고로 전신 3도의 중화상을 입고 40번 넘는 수술을 겪고도 ‘지선아 사랑해’로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 이지선씨를 꼭 모시고 싶었다. 당시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고 계셨는데 정성이 통한 것일까. 흔쾌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특별강연을 맡아주신다 하셨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텐데, 참 대단하고도 고귀한 분이다.     

Special Artist Festival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는 지선아 사랑해 작가 이지선씨


양팔없는 화가 ‘수묵 크로키‘ 대가 석창우 화백을 모셔 큰 메시지와 감동을 선사하고 싶었다. 석 화백님도 흔쾌히 수락하시어 강연을 해주셨고, 지금까지도 생일 때면 종종 카톡으로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다. 뭐라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다. 뭉클하면서도 늘 죄송하고, 또 깊이 있는 애정에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온다.     

다음은 가수 강원래씨. 무모한 연사섭외 도전이었는데도 어느 한 분 대차게 거절하지 않고(가끔 일반유명 연사 중에서는 가격이 맞지 않는다며 대차게 거절하시는 분도 있다.) 수락해주셨다. 행사 전 VIP 식사가 있었는데 우리 행사가 그저 그렇고 그런 장애인들을 앞세워 돈벌이하는 행사일까봐 노파심에 언성을 높이는 헤프닝이 있긴 했지만 진정성이 담긴 말씀이라 모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차별을 당해본 사람들은 이용당하는 아픔, 괜한 기대로 인한 실망을 또 겪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말 행사를 진행하는 내내 반성, 또 반성의 시간들로 가득 찼다.     

스페셜 아티스트로서 연설을 하고 있는 가수 강원래씨


또 하나의 스페셜 세션을 마련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씨와 그녀를 아름답게, 세상의 빛으로 잘 키워주신 어머니 우갑선 여사를 동시에 모시고 토크쇼를 진행한 것. 희아씨는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자신 있게 본인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어머니와 함께 무대를 꽉 채워주었다.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와 어머니 우갑선 여사


전체 행사는 컨퍼런스, 전시회, CSV 아이디어 옥션, 필름토크, Fun-Market, Artist Atelier등으로 진행되었다. CSV 아이디어 옥션은 장애와 관련된 사회적 기업 및 단체와 기업 간의 자연스러운 네트워킹 장을 마련하고자 진행되는 아이디어 옥션 이벤트였다. 실제 옥션처럼 구현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하고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행사 내 특별공연에는 지적 발달장애를 가졌지만 첼로로 무한 감동을 주는 밀알첼로앙상블 날개단원 차지우 첼리스트도 모셨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만드는 도시텃밭놀이터 동구밭, 발달장애인 도시 프로젝트를 수행한 스위치랩, 자폐인의 재능재활을 추구하며 자폐인이 디자인한 소품을 제작하는 오티스타 등의 기업을 섭외하여 이들에게 투자할만한 대기업, 기관, 협회를 초청하였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했고, 세금으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스페셜 아티스트 페스티벌 기업세션, 경영전략의 혁신적 돌파구 축사장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와 아이템이라도 흥행하지 않으면 MICE 행사는 실패라 생각한다. 하지만 또 단순 흥행을 위해 관련되지 않은 사람이나 기관과의 협업은 감동을 자아내지 못한다. 이 결을 맞추기 위해 찾고, 또 찾고, 섭외하고 또 섭외하였다. 필름토크도 발달장애와 관련된 영화를 상영하고(영화 1편 상영에 그렇게 큰 돈이 드는지 몰랐다. 영화관은 매우 저렴한 것이다. 1편을 1번 상영하는데 500만원 가까이 들었다. 저작권이란), 이에 대해 토론해줄 관련 있는 유명 배우와 작가를 초청하였다.      

장애인영화제 홍보대사 고경표씨, 황석희 번역가와의 필름토크


말이 너무 길었다. 자폐를 가진 천재적인 작가에게 혼난 사연을 얘기하려 시작했는데 행사 전체를 훑게 됐다. ESG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자, 실천 덕목이다. MICE에 ESG를 접목하려 카이스트 ESG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허나 지금은 ‘MICE로 ESG하자.’라는 생각으로 180도 바뀌었다. 국가가, 기업이, 공기관에서 ESG 정책을 수립하여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 실천과 노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 단순히 기사로, 카드뉴스로 보여주는 것은 임팩트도 적고, 그린워싱할 수 있으며,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닿기가 매우 어렵다.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직접 보여주고, 오감으로 느끼고 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MICE의 힘이자, MICE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만족도 등의 조사를 통해 행사의 성과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우선 포럼을 통해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함께’ 그리고 ‘동등하다’로 바뀌었다는 점, 예술적 능력이 일반인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점이 사회적 임팩트가 큰 포인트였다. 전시회를 통해 발달장애 작가들이 디자인하고 만든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판매를 통해 수익을 물론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던 점도 성과였다. 기업CSV 옥션을 통해 실제로 대기업이 사회적기업에 투자 의사를 밝히고 향후 미팅을 진행하는 등의 성과도 큰 의미가 있었다. 필자 또한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오히려 장애인을 더 차별하고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향후 이 행사가 지속된다면 더 비즈니스화 하여 장애 예술가들에게 정당한 수익을 창출하게 하고, 개인들의 엔젤투자나 대기업의 CSV 투자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기획을 대학생들의 손으로 직접, 5개월 동안 학업과 병행하며, 기획에서 운영까지 모두 다 해냈다는 것이다. 총괄 PM으로서 함께 방향을 잡고 전략을 짜긴 했지만 총 4개 위원회로 구성하여 각 위원회에 멘토가 붙은 정도였을 뿐 학생들의 손에서 탄생한 행사라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전체 예산은 1억 조금 넘게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어떤 기관에서 학생들과 이런 행사를 기획해보라 하면 몸은 좀 고되겠지만 MICE의 진가를 알릴 수 있는, MICE로 ESG를 실천하는 선에서 가능하리라 본다. 밤낮없이 주말까지 반납하며 애쓴 행사였지만 참 좋은 일도 있었다. 행사 마치자마자 그토록 오래 기다린 아기천사가 찾아왔다는 것.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살 팔자인가보다.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는 못했던 듯 하여 이 생에서는 국가에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MICE로 ESG를 실천할 수 있는 더 많은 아이디어와 뉴비즈니스를 연구하고 있다. ESG가 환경쪽으로만 많이 치우쳐지긴 했으나 S와 G 영역으로도 풀어낼 것이 많다. 특히 ESG는 통합전문가가 있을 수 없다. 각 영역에서, 또 그 영역의 세분 영역에서의 전문가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를 엮어 ESG를 세상에 알리고, 비즈니스화하며, 브랜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MICE라는 플랫폼일 것이다.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한 2015 S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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