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다양할 필요가 있나요?

by 선향

키가 작은 정사각형 남자와 키가 큰 마름모형 남자가 같이 서있는 영상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이 세상에 이렇게까지 다양성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요?"


키뿐만 아니다. 인종, 피부색, 종교, 국적, 문화, 생김새, 성적 취향 등등 이 세상에 이토록 다채로운 다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다름은 불편함을 주고 우열의 비교와 두려움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동굴 속에 살았던 때부터 내려온 생존 본능이라고 한다. 이 세상의 온갖 분쟁과 전쟁은 결국 내가 아닌 이들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스무 살 무렵 스웨덴에서 일 년간 어학연수를 할 때 다양한 피부색,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조화롭게 섞여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인종별로 갈라진 식탁으로 경험했다. 중동, 아프리카, 남미, 동유럽에서 온 다양한 나이와 배경의 난민과 이민자들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십대부터 칠십대까지의 스웨덴인 들과 함께 섞여 이것저것 배우는 '대중고등학교 (우리나라의 평생교육원과 비슷하다)'에서 어학연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다양한 대륙과 국적의 많은 정부와 사람들과 함께 일해 왔다. 그래서 다양성이라는 말에 얼마만큼의 의심과, 노력과, 외로움과, 두려움과 때로는 피까지 배어있는지 실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이렇게까지 다양성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굳이 답하라고 한다면 "그래요, 이렇게 온갖 종류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세상이어서 더 새롭고, 재미있고, 의미 있고, 도전적이고, 겁나지만 다이내믹하잖아요?"라고 응답할 것이다.


주역이 말하는 '천지만물의 창조라는 대업에 동참', 바샤가 얘기하는 '창조의 다차원적 크리스탈의 다양한 측면'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성이다. 그런데, 이런 다양성의 일부분으로 나타난 천지만물의 조각 하나, 다차원적 크리스탈의 다양한 측면 중 하나로 지금 현실에 존재하는 '나'의 정체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키가 작은 그 남자의 심정으로 가보자. 누군가는 댓글로 가해자는 없으나 피해자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이 그 남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왠지 모를 열패감에 잠길 수 있다. '세상이 뭐 이따위야? 우리 부모님은 왜 이런 유전자를 물려줘서 날 쓸데없이 고생하게 하지?' 때로는 그 열패감이 너무 커서 그 남자는 자기의 인생에 남이라는 변수가 생기는 것을 차단해버리고 고립을 선택할 수도 있다.

남자에게 또 다른 방향 설정을 해주는 두 가지 선택지도 있다. '키 따위 뭐가 중요해? 이 세상은 키가 아니라 내가 가진 다른 재능, 허우대가 아닌 다른 것들로 승부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거야.'하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자기 계발' 마인드로 인생에서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현실에 실현시키는 그림이다. '현실'이라는 것이 '바로 지금'의 생각과 감정과 의도가 만들어내는 다음 장의 그림, 시뮬레이션과 같다고 믿는 많은 이들이 이 방향을 따라가고 있다.


또 다른 선택지는 '자기위로'이다. '키 따위 뭐가 중요해? 이 세상은 모두 각자가 생겨난 꼴대로 자리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법이야. 내가 나 답게 살아가면 그게 최고야. 내가 이 세상에 뭘 더 바라겠어? 이 세상에 와서 그저 따스한 햇빛을 쬐고 따스한 곳에서 잠자고 따스한 음식을 먹고 즐겁게 살다 가면 그만 아니겠어? 인연이 올테면 오고 갈 테면 가라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이 선택도 '바로 지금'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과 의도가 만들어내는 현실을 창조해낸다.


누구가는 또 충고한다. 키와 생김새와 태어나고 자라난 온갖 배경과 기억 등 모든 다양한 정체성을 벗어버리고 그저 지켜보고 있다는 의식만 남은 자리를 한번 알아차려 보라고 한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온갖 판단과 분별이 끊긴 그 자리에 들어가서 에고를 벗어던져 보라 한다. 그럼 무엇이 남는가? 조용하다고 하는 그 자리, 거기에 탈출구가 있다고 하니 궁금증을 가져볼 만하다. 이렇게까지 다양한 세상을 만든 그 불변한다는 그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천개의 손


살고자 하면

온 천지가 너를 살린다.

들에 핀 백합화

하느님의 은혜로 자라듯이

천수관음의 자비 구할 때

네게 닿는 모든 손이,

네 두 손이 관음의 손이 된다.

그리하여

관음은 천개의 손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