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View 리뷰 18화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카네기 인간 관계론

데일 카네기

by E Han

카페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카네기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 약 80여 년 전의 미국 중부 시골 미주리주 출신이지만 아직 까지도 그의 명성은 남아서 다른 변혁가와 마찬 가지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또한 다른 배움의 장을 열어 준 장본인 이기도 하다.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누구인가 성공하고 싶은가, -자신의 분야에서 혹은 또 다른 새로운 신사업에서 , 학계에서 예술 분야에서 그리고 비즈니스 영역에 걸쳐서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공통적인 분모가 있다. 바로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디를 가던 우리는 직무를 수행하거나 무엇을 팔거나 사려 해도 사람들의 손을 거쳐 야만 하고 , 가격을 조금이라도 흥정하려면 담당 권한이 있는 자와 협상하여야 한다.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찌 보면 ,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또한 우선은 감정적이다. 머릿속 사고와 바다 들이는 감성은 다를 수 있다.


사름은 과연 칭찬을 먹고 사는가 ,, 그러하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성과에 관계있던 약간은 멀어지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동양 고전에 역지 사지가 있다. -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행동한다라는 말이다. 마찬 가지로 데일 카네기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준 처사를 중요히 하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창피 함을 당하면 그 자리를 면하고 싶어 지며 동시에 나에게 창피함과 모욕을 안겨 주었던 자들을 지금 까지도 기억하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이 그러한 대접을 받으려거던 상대방을 그러하게 대접하라 -- 로마 시대 이전 이후로도 내려운 황금률이라고도 하고 골든 Rule 이라고도 한다. (황금률(黃金律)은 수많은 종교와 도덕, 철학에서 볼 수 있는 원칙의 하나로, '다른 사람이 해 주었으면 하는 행위를 하라'는 윤리 원칙이다._) 기독교의 산상 수훈에서도 이러한 글귀가 나타 난다.


하지만 , 불균형 , 불완전한 인간은 , 항상 평상심만으로 매사를 처리할 수는 없는 법, 어디서나 갈등과 견해 차이는 발생한다. 집안에서든 친구 사이와 , 부부지간 혹은 자기 자신 과의 내부에서도....


똘레랑스 -- 불어에서 유래되지만 ( 관용의 이념은 인간 개개인을 이성적인 주체로 파악하고, 이견이나 쟁점이 있을 때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서 어떤 개개인이 종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보다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삼는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 중지를 모은다는 정도의 막연한 생각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도 연원을 찾을 수 있지만, 이런 생각들이 보다 정치하게 다듬어져서 하나의 체계적인 사회조직원리로 발전한 것은 주로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일이다. 영국에서는 존 밀턴, 존 로크, 존 스튜어트 밀 등이 대표적인 관용론 자이고, 프랑스에서는 볼테르를 들 수 있다. ) 논쟁이 평행선을 가더라도 상대방은 존중하여 그 상태데로 유지한다라는 사유가 더 강하다.


우리는 어떠한가, 한쪽이 이기지 않으면 지는 게임을 한다. 승자독식 게임처럼 내가 올바르다면 상대방이 오류가 있거나 틀린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경우가 너무나 많다.... 협상의 여지가 있으나 우리들의 맘이 좁아 받아들이기 어렵다.... 갈등과 싸 룸은 여기에서부터 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다를까, 100여 년 전이나 그 이전 남북 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서 링컨 대통형도 그의 참모진들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직설적인 표현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만 부치지 못한 편지로 서랍장에 모아둔 친필이 남아 전혀 져 , 나름 숙고하고 , 배려하여 다른 완곡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었나 싶다.


현대 사회의 갈등은 이해 부족과 견해 차이 편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 또한 친구들과 작은 공동체 , 나아가 큰 공동체에서 서로의 신뢰가 깨어지는 부분도 이성적인 판단에서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 작은 태도 하나, 접근하는 방식의 무례함,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못한 행동으로 큰 화를 자초하거나 다된 사업을 위럼에 빠뜨리기도 한다.


동양 고전에도 세치 혀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한번 내어 논 말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법이다.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살면서 그동안 상처를 받았던 날도 많았겠지만 반면 내가 타인에게 무심코 던진 말들이 상처를 준 적도 이었다는 것을 , 쉽게 내어놓은 말은 쉬이 잊혀지지만 ,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처와 갈등을 던져 받은 사람들은 그 일로 어쩌면 상당히 더 긴 시간을 번민하며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항상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는 있는 법, 데일 카네기의 사람을 움직이고 성공에 이르게 하는 기본 방정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 이상을 상대를 배려하는 것, 내가 받는 급여 이상으로 10배 20배 이상 회사를 위해 일을 해보자 오히려 회사가 당황스럽게 ,, 그리고 교수나 연구원이라면 , 24시간 불 밝혀 교정을 하얗게 새워 좋은 논문과 커리큘럼을 만들어 보자 , 기업가라면 , 직원들이 미안스러울 정도로 로비를 닦고 청소하며 , 근로 의욕을 북돋워 주면 어떨까.. 가게 주인이 먼저 솔선수범 아침 일찍 나가서 비를 들고 청소를 하면 직원들은 보고만 있을까?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예절을 보이자 , 횡단보도도 제대로 건너고 ,, 아이들에게 경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교육에 도움이 된다. 친절은 친절을 부르고 , 작은 성공과 행운을 그냥 주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되돌아와 수 십배 결실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의외로 사람들과의 관계, 이중에서도 약 한 연결이지만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면 반드시 그자는 새로운 은혜와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네 삶과 인생이 그렇게 짜여 있다는 것이 놀랍다면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 새로운 날들과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면 현제 바로 생각의 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사물을 보는 프레임은 나도 보지만 상대방도 같이 본다라는 것이고 편향적으로 주관적으로 보여 지기에 , 타인의 입장에서 보이기가 어려울 뿐이다. 하지만 쉽다면 누구나가 성공이라는 울타리에 금방이라도 성취하겠지만 , 끈기 있게 기다리고 , 준비하는 자에게만 그 결과가 보일 뿐이다 , 이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는 점에는 저자가 80여 년 전의 사람이라는 것과는 하등 관련이 없을 수 있다... 인간 세계는 직렬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 병렬식 연결 고리를 가지는 관계로 ,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직관을 쌓아 올렸다고는 하나 , 이는 무조건 개별성이다.... 그러한 전제는 앞으로도 그러핧 것이기에 늘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말이다...


Value Up Tip. 관용의 역설 -위키피디아


관용의 역설[편집]


관용의 역설이란 불관용을 관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함축되는 역설이다. 불관용을 관용하면 곧 불관용이 생기고, 불관용을 관용하지 않아도 곧 불관용이 생기므로, 어차피 모든 이견을 관용할 수는 없다는 반문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의견을 관용한다"에서 "모두"를 유의미한 맥락 너머까지 잡 아늘인 데서 발생하는 일종의 언어적 착시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관용은 기본적으로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를 부인하는 사상도 표현의 자유는 누려야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압살 하려는 정권에 대한 관용까지가 관용의 이념에 포함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저항하는 것은 전혀 모순이 아니고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체주의를 설파하는 이론은 관용의 대상이고, 선거를 통해서 전체주의 정권을 잡으려는 시도도 관용의 대상이 되지만, 그런 정권이 무력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들면 당연히 관용의 이름으로 저항하는 것이 전혀 역설이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논리적인 역설 이외에, 현실정치의 역설로는 히틀러의 경우가 자주 거론된다. 관용을 기반으로 삼아서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이 히틀러의 발호를 허용한 결과 나치스파시즘이 정권을 잡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역설이다. 히틀러에 비해 정도는 훨씬 덜하지만, 2차 대전기에는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전체주의 성향이 나타나서 예컨대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가둔 예가 있다. 가까이는 2001년 9·11 테러를 기화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랍계를 비롯한 외국인들에 대해 불관 용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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