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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ha Jan 19. 2024

시드니에서의 구직 여정

시드니에서 살아남기 (1) 호주에서 피아노 강사 도전해보다 

나는 오늘로부터 딱 100일 전에 호주에 왔다. 

한국 청년의 대부분이 들어본 '워킹홀리데이'라는 비자를 갖고 왔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란, 20세부터 30세 사이의 청년들이 해외에서 일을 하면서 현지 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다. 이 비자는, 특히 호주의 워홀 비자는 20대 청년이라면 정말 거의 누구나 쉽게 취득할 수 있는 비자이지만 함정이 있다. 그것은 이 비자로는 한 업장에서 최대 '6개월' 까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사실 일반적인 호주의 '워홀러'들과는 사뭇 다른 목적으로 호주에 오게 되었다. 나의 목적은 바로, '인턴십 프로그램' 이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이 나라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비자이니만큼 워홀비자로 인턴생활이 가능하다. 나는 한국 산업 인력공단에서 주최한 '해외 일경험 프로그램'이라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 보조금을 받아 호주에서의 인턴십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파견된 업장은 호주에서 꽤나 유명한 랭귀지 스쿨이다. 나는 세일즈 마케팅 팀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내가 일하는 스쿨의 학생들인데, 이렇게 나는 인턴으로서 아이들이 스포츠 하는 곳을 따라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인터뷰와 캠퍼스 투어 영상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들 박물관 체험학습을 따라와 보조교사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그밖에 마케팅 관련 프로젝트도 하고, 다양한 업무를 했다. 


물론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고, 많은 어려움들과 단점도 있었지만

한국인이 한두명 밖에 없는 글로벌한 호주 회사에서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딱히 할 게 없어 오피스에서 글을 쓰고 있다 ㅎㅎ, 현재 진행 중) 

그러나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듯, 이 회사도 장단점이 분명히 있었고, 나는 이 단점이 없는 

곳으로 이직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주에서의 구직 활동이 시작되었다. 


사실, 초반에는 인턴십 3개월 이후 귀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세일즈 마케팅 사무직 쪽으로의 취업을 희망하는데, 나의 워홀 비자는 '6개월' 한 업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어 내가 원하는 규모의 회사에 이 직무로 취업을 하는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초반에는 방치된 인턴이었기에 뭔가 나도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서, 내 직무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젠가 아는 언니 회사 건물에 있는 수영장과 사우나에 갔을 때, 내 생각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혼자서 추워서 사우나에 들어갔는데, 마침 두명의 말레이시아 인이 사우나 안에 있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오 그런데 너 영어 되게 잘한다, 혹시 유아들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님 해볼 생각 있니?'라고 물어보았다. 


갑자기 피아노 선생님..? 싶었지만, 나는 피아노를 곧 잘 치고, 또 전공이 유아교육과이니만큼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영어로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도전정신이 생겼다. 그래서 바로 '면접을 보고 싶다'라고 말하며 번호를 건네 주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 

내가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던 건, 호주에서 인턴십 이후 내가 원하는 느낌의 일을 찾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내 마음에 드는 일을 다시 찾는다면, 나는 호주에서 좀 더 머물고 싶어한다는 나의 솔직한 마음을 

이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무엇인가를 하고싶다는 나의 솔직한 마음'을 무시하고 억제하지 않으려고 한다. 

해보고 싶은 것은 꼭 해본다. 지금 당장 못하는 거라면, 시간이 지나서 기회가 생겼을 때 해본다. 

그래서 호주에 남아있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너가 거기에 계속 있어서 너에게 도움되는게 뭔데?'라고 말했을 때, '꼭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만 하면서 살아야 되는건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꼭 나에게 스펙적으로, 혹은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해보고 싶은게 있다. 그래서 구직활동을 시작했고, 첫 시작은 피아노 강사 인터뷰였다. 




일단 인터뷰를 하자길래, 시드니 시티에 위치한 캠퍼스에 갔다. 이 날 굉장히 더웠던 날이라,, 

한마디로 '개고생'을 하면서 갔다. 그래도 면접이니 화장하고, 옷 잘 갖춰입고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가서, 헤드 선생님은 현재 말레이시아에 있다고 화상으로 면접을 봤고, 한 아이의 수업을 현장에서 참관하였다. 



이 회사의 경우, 주요 타겟은 유아, 초등 저학년 어린아이들이다. 내가 참관한 학생 또한 유아였다. 선생님은 굉장히 무서운 느낌의, 카리스마를 가지신 40대 아주머니였는데 

아무리 선생님이 무서워도 참 아이는,, 자기 멋대로 하더라 하하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간절했기에, 열심히 메모하고 외우고 그랬다. 



두번째 스테이지는, 모의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이 학원의 프로그램으로 내가 만4세-6세 어린이를 한 명 섭외하여 직접 모의수업을 하는 것이 두번째 단계! 

주변 친구들에게 다 물어봐도 4세-6세 어린이를 찾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지인 중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냥 랜덤하게 구해보기로 결정!

기차역에서 4세로 추정되는 아이를 발견하여, 그 엄마한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아이는 몇살인가요?"


엄마가 굉장히 경계하며 나에게 왜 물어보냐고, 넌 누구냐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물어보면 안되었다... 나는 사실 참 즉흥적인 성격이라 때로는 별 생각을 안하고 말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허허 

아무튼, 나의 상황에 대해 말을 했고, 어머님은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아이 아빠와 상의해보겠다고 하셨다. 

어머님한테 혹시 몰라, 학원 웹사이트와 심지어 내 링크드인까지 공유했다 


아무튼, 주말에 그런 일이 있었고, 월요일날 회사에 출근을 했더니 갑자기 생각나는 한 분 

생각해보니 나의 동료 중 6세 딸이 있는 분이 있던 것이었다 !!!!

프랑스 일본인 혼혈의 아주 예쁘게 생긴 아이다. 아무튼, 그 분께 여쭤봤더니 흔쾌히 알겠다고 하셔서 아이 섭외에 성공했다. 


사실 그 이후로, 피아노 업체 선생님과 아이 스케줄, 나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고,, 굉장히 번거로웠다. 

하지만 마침내 모의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의 수업 한 피아노 학원의 라운지 

내가 처음에 면접 때문에 간 시드니 시티의 캠퍼스보다, Rhouse Hill (노스 시드니 쪽) 에 위치한 캠퍼스는 훨씬 크고 깨끗하고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후기는, 내가 피아노 모의면접 보고 난 후 집 와서 바로 쓴 내 블로그 글을 빌려본다. 




 


"모의수업 데모 영상 보고 스크립트 짜서 외우고 나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 같다.그걸 이쪽 선생님도 알아봐주셔서 감사했다. 영상만 보고 한 수업 치고 not bad였다고 말해주셨으니,,,ㅋㅋㅋ

그러나, 이 학원은 선생님이 각자 학생들 트라이얼을 하고, 학부모의 컨펌을 받고, 학생을 전담하게 되는 등 선생님의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내가 그 정도로 학부모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티칭 스킬을 갖고 있지 않으니 상당한 인풋(연습)이 필요하고, 이 일은 단순 알바의 개념이 아니라 

정말 커리어적으로 발전하면서, 일반 선생님 매니저 등등 진급하며 확장성 있게 가져가야 하는 일인데 (그만큼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 

내가 워홀비자를 갖고 있기에 애초에 일을 오래 할 수 없을 뿐더러, 초반에 처음 온 선생님들은 학생을 많이 받을 수 없으니 보통 전담하는 학생이 적고, 일이 많이 없을 수 있는데 나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의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이라(워홀러) 나의 니즈에 맞지 않는 일일 거라고 하셨다 

특히 이 학원은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어린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어떻게 치는지 알려주는 학원이니만큼 어린 아이들의 언어를 잘 캐치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애기가 웅얼거리는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더라ㅜㅜ 보통 아이가 있는 엄마들은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는데, 나는 아이가 있는 엄마가 아니니 그 부분에도 한계가 있다, 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돈 벌이가 될 정도로 하려면 정말 그 애기 집에 매일 놀러가서 애기랑 매일 놀면서 애기가 어떤 말을 하는지 바로바로 캐치할 정도의 역량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나도 사실 수업 시연을 하면서, 애기가 내가 시뮬레이션 한대로 따라오지 않으니 너무 당황스럽고, 진이 빠져서 내가 과연 이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싶었다...이분이 '이 일을 할 수 있겠어여?'라고 물어봤을 때도 '사실 잘 모르겠다' 라는 대답이 나왔다. 

대신에, 부스에서 이 학원 커리큘럼을 홍보하고 유료 트라이얼 수업을 학부모들한테 세일즈하는 업무를 제안해주셔서 하게 되었다 (급전개) 1월달에 회사 출근 안하는 날에 나가게 될 예정이다.  난 항상 세일즈쪽 업무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제대로된 세일즈를 해본 적이 없기에 오히려 잘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내 첫번째 구직 활동이 끝났다. 

지금은 원하는 일을 구했으니, 미화가 되었지만 사실은 저 당시 꽤나 착잡했던 감정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열심히 했는데 그만큼 결과가 안나왔으니 ㅎㅎ

하지만 그 착잡한 감정을 저렇게 스스로 위로를 하며 달랬다. 그리고 저 일을 하게 되었으면 내가 지금 회사 공고를 찾아보지도 못했을거니! 사실은 저게 안된게 정말 잘된 일이기는 하다. 


역시 글을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 감정이 정리가 된다. 내가 내 감정을 컨트롤 하는 방법 중 하나. 나에게 특히나 잘맞는 방법! 


아무튼 앞으로도 수많은 면접을 보고, 수많은 지원을 하고 또 실패의 고배를 맛 볼 텐데 이 경험을 기억하면서 미래의 내가 실패에 좌절하고 슬퍼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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