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끓이기는 묘하게 즐거운 경험이다. 집에서 가장 큰 냄비를 꺼내어, 손질한 재료를 때려 넣고, 국자를 휘휘 저으며, 긴 시간 약불에 보글보글 졸인다. 이건 마치 가가멜 또는 기타 마녀라도 되는 기분이다.
이전의 나는 생토마토는 좋아하면서도 토마토소스는 즐기지 않았다. 파스타를 주문하자면 올리브 오일 베이스를 선호하고, 토마토 베이스는 가장 후순위였다. 토마토소스를 다소 텁텁하며, 좋지 않은 달큰한 맛으로 기억했던 것 같다. 비슷한 이유로 생토마토 주스는 좋아하면서 가공된 토마토 주스는 아예 마시지도 못한다.
하지만 막상 손수 끓여보니 소스나 육수 종류 중에서 토마토소스에 가장 자주 손이 가더라. 직접 만든 토마토소스에선 내가 기피하던 묘한 텁텁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재료가 달라서 일 수도 있고, 내가 만들었으니 맛있어야 한다는 자기 최면일지도 모르겠다. 뭐 아무튼 조리는 꽤 간단한데, 활용 범위가 넓어서 좋다.
만들어둔 토마토소스는 파스타에 가장 많이 활용하지만, 라구 소스 같은 또 다른 소스에도 사용하며, 그 외 연습 삼아 해보는 여러 이탈리아 음식 준비에도 사용했다. 종종 만드는 빠에야도 토마토소스 넣으니 좋더라. 혹은 닭도리탕, 김치찌개에 넣어도 맛이 깊어지는 것 같고. 기타 근본 없는 무언가의 조리 시 쏠쏠하게 사용을 했다. 내가 끓여둔 소스 중에서 아내가 꺼내 쓰는 유일한 소스이기도 하다.
여러 레시피를 참고하여 조금씩 변형하며 몇 번 만들어 보았는데, 가장 최근에 나의 랜선 선생님 '김밀란'님의 강좌를 따라 소스를 만들어 보곤 만세를 외쳐버렸다. 유료 강좌라서 구체적으로 적기는 죄스러우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3 종류 - 완숙 토마토, 방울토마토, 토마토 통조림을 모두 넣어 끓여서 각각의 장점을 뽑아내는 것에 있는 듯하다. 각 토마토의 장점이 한겹씩 더해져서 맛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마치 비법서를 발견한 무협지 주인공 같다. '토마토를 섞거라' 가르침 한 마디에, 내 스킬이 한 갑자 늘어난 기분.
김밀란님의 클래스 : https://class101.net/products/RUO08sqBEkoQRHEXVYq1
토마토를 섞는 이야기는 '파스타의 기하학' 책에도 나온다. 저자는 토마토소스를 3종류로 구분하는데, '가볍고 신선한 토마토소스'에는 완숙 토마토를 사용하고, '진한 토마토소스'에는 홀 토마토 캔을 사용한다. '중간 정도의 진한 맛'은 완숙 토마토와 홀 토마토 캔을 섞어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시판 토마토소스와 가장 비슷하며 저자 취향에 가장 멀다는 부연 설명도 있고. 그런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조리법도 다르고 취향도 각기 다르니, 그럴 수 있겠다 정도로 넘어갔다.
아무튼 너무 신나는 맛이라 인스타그램에 올려 자랑을 하니, 사진을 본 친구가 '이렇게 토마토가 비싼 시기에 참 대단하다'는 칭찬을 하더라. 가격에 대한 감도 없이 마음껏 때려 넣었네. 역시 흉내를 내봐야 주부가 되려면 멀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