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도해 보자 해보니깐 되더라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오랫동안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게 익숙해졌지만 사적으로는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런 성격이다 보니 무언가 제안하는 일에 소극적일 때가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젊은 혈기로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를 통해 일이 성사되었던 사례가 여럿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는 일단 제안해 보자. 안되더라도 문을 두드려보자. 해보니깐 되더라 하는 가치관이 머릿속에 자리 잡혔다.
학창 시절 집안 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해 일찍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막상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보니 쉽지 않았다. 나름 공부는 조금 한다는 고등학교를 나와 그냥 공장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 학과 공부를 더 해서 보다 나은 직장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한 친구와 우리도 대학에 가서 캠퍼스 낭만을 느껴보자고 다짐한 뒤 수능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가정형편 상 입시학원에 등록할 돈은 내가 마련해야 했다.
마침 친구가 12톤 트럭 물류 하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 시작해서 12시면 끝이 나고 급여도 시간대비 괜찮았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학원에서 공부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내 상황에서 학원비와 용돈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아르바이트였다. 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 내가 대학을 가기 위한 첫 번째 준비 조건이었다. 혼자서 독학으로 수능시험을 준비하기에는 내 실력이 너무 부족했기에 학원 등록비를 꼭 마련해야 했다. 시간과 급여가 너무 잘 맞았고 제일 친한 친구가 일하는 곳이라 같이 일하며 공부하고 싶었다.
문제는 일할 자리가 없는 것이었다. 영업소 하역 아르바이트는 두 명만 할 수 있는데 추가 인원은 더 이상 뽑지 않았다. 다른 한 명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형이었다. 친구는 이 형을 만나 나의 어려운 상황을 얘기하고 내가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얘기하자는 의견을 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일해야 하니 나가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어떻게 했을까 싶다. 하지만 그때는 그만큼 절박했기에 무리한 요구라도 적극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과연 우리 부탁을 들어줄까? 본인도 아르바이트가 필요할 텐데 친한 동생도 아닌 사람에게 자기 일자리를 줄 수 있을까?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 형을 만나 진지하게 이 일이 필요한 이유와 사정을 얘기했다. 어려운 부탁이다 보니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에둘러서 형이 그만 두면 안 되겠는지를 얘기했다. 처음에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지 동문서답에 답답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의 의도를 알아듣고 친구의 어려운 상황이니 본인이 이 일을 넘겨주겠다고 얘기했다. 정말 감사하다며 인사하고 나는 일을 넘겨받아 할 수 있었다. 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오전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학원에서 공부하여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 선택했던 유통전공이 지금 회사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다닐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등록금은 내가 벌어서 충당해야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으면 됐지만 그만큼 성적이 안 나왔다. 공부 벌레도 아니었기에 장학금은 나보다 더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학비를 위해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학교 수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든 과목이 있었기에 주말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절실했다. 모든 책값과 학비, 용돈 등 내가 벌어서 충당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마침 학교 근처에 경륜장이 생기면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보안요원 아르바이트를 모집했다. 자격요건은 무술 자격증이나 체육학과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흔한 태권도 자격증 하나 없었다. 하지만 경륜장 특성상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3일만 일하면 되었고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월급이 많았다. 이유는 경륜이라는 도박성 스포츠라는 이미지를 덮고 막대한 세금을 걷어 들이지만 지역 대학생들에게 되돌려 준다는 명목이었다. 어쨌든 학업을 하며 학비를 벌 수 있는 나에게 가장 적합한 아르바이트였다.
지원 조건은 무술 유단자 자격증이었으나 자격증이 없는 나는 이번에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자격증은 없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할 수 있다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만약 내가 지원 조건에 맞지 않아 안될 것이라고 포기했다면 경륜 아르바이트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원 자격이 되지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제안하여 도전해 본 것이다. 무술 자격증이 없어도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하여 경륜장 관리자에게 인정받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에게 맞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를 벌 수 있었다.
경륜장 보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륜이라는 스포츠와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알게 되었다. 건전하게 즐기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스포츠지만 무리한 돈을 걸면 도박이 되었다. 그 속에서 선수들이 욕망에 사로잡혀 불법을 일으키고 내부직원이 정보를 활용해 돈을 버는 등 안 좋은 부분도 알게 되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욕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경험도 얻게 되었다. 이 모든 기회가 지원조건에 부족했지만 적극적으로 제안하여 얻어낸 결과였다. 그 이후 내 가치관은 안되더라도 시도해 보자. 해보니깐 되더라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다양한 도전들을 했다. 사내 리포터, 사내 강사, 온라인 어필리에이트 활동, 유통취업 코칭, 유튜브 크리에이터, 브런치 작가 도전 등 안된 것들도 있지만 잘되었던 것들도 많다. 끈기 있게 꾸준하게 하는 실행력이 부족해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인생에 있어 많은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나에 역량으로 쌓여 더 넓은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현재의 조건이 여의치 않아 안될 거야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안될 거라고 미리 예단하지 말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도전과 시도 속에 성공할 확률은 높아진다. 목표는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판단하여 세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뤄야 할 목표가 있다면 현재 상황은 잠시 접어두자. 목표는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시도했을 때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여우와 포도의 이야기처럼 지금 상황에서 가질 수 없는 목표를 쉬고 맛없는 포도로 생각하지 말자. 어려운 목표라 생각하지 말고 제안하고 시도하면 쉽게 이뤄지는 일들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