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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Apr 01. 2020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들은 비슷하게 마무리되었다. 신데렐라를 읽어도, 백설공주를 읽어도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착하고 예쁘게 살다 보면 왕자님이 나타나고, 결혼하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거구나.


  우리 엄마는 예쁜데 왜 멋진 왕자님과 결혼하지 못했을까? 착하지 않았나? 사실 알고 보면 우리 엄마는 양의 탈을 쓴 마녀는 아닐까? 그럼 이웃집 이영이 엄마나 수정이 엄마는 늑대나 살쾡이일까. 현실 속 주인공들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처럼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왕자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런 불확실성에 미래를 걸 순 없었다. 누군가 해 주길 마냥 기다리는 건 답답했다. 겨우 글씨를 읽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단 그냥 내가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길래, 동화책 속 결말인지 알겠다. 행복하게, 오래오래가 필요충분조건이 되면, 확률은 급격하게 낮아진다. 어떻게 인생이 행복하기만 할 수 있나.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덮쳐 85만 명이 감염되어 있는 이 시대에 오래오래 사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결혼 생활은 날씨 같다. 하늘이 새파랗게 높고 맑은 날, 벚꽃이 활짝 핀 4월 1일의 봄날 같기도 하고, 새까만 구름이 해를 덮어 숨 쉴 틈 없이 비를 쏟아 붓기도 한다. 차갑게 얼어버린 빙산 같은 마음을 만나기도 하고, 삭 바람이 불어 옆에 가기 무서울 때도 있다. 정도가 차이가 있을 뿐, 끝이 보이지 않는 롤러코스터 같다.

 

  중국에서 코로나 19 때문에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이혼신청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했다지만, 호르몬의 농도가 웬만큼 진하지 않고서야 24시간 함께 있는 일은 고통이 되기도 한다. 우리 가족 역시 24시간을 함께 한 시간이 한 달이 넘자 삐그덕거렸다.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나의 생산성이 60% 정도에 그쳤다. 왜 그럴까. 귀찮게 하는 것도 아니고, 도와주려고 애쓰는데, 왜 자꾸 짜증이 날까. 사람의 감정은 상대적인 거라, 이쪽에서는 새빨간 레이저를 쏘고 있는데 저쪽에서는 핑크빛 에너지를 보낼 리 없다. 미워하는 데에 시스템 자원이 할당되니, 내 머리와 몸의 속도가 악성코드 깔린 컴퓨터처럼 느리고 답답해진다.


  왜 미울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자신과 동일시된다. 기대가 높다. 실망도 크다. 하지만, 나와 같다면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소중하고 여기고, 더 아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바라는 행동을 해 줘야지. "여보!!!!", "준서야!!!!!"하고 씩씩하게(?) 부르던 걸 "여보~?" "준서야~?"하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바꿨다. 메뉴 결정부터 식사 준비부터 설거지 담당까지, 서로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할 때 아들 역시 설거지를 돕고, 숙제를 한다. 남편도 내게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건네 오니, 갈등 상황이 많이 줄었다.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고, 친절한 마음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의 생산성은 함께 상승했다. 400번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움은 달고나 커피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 19 때문에 벌어진 자발적 격리 체제는 힘든 상황을 넘기는 것은 결국 사랑의 힘이라는, 깨달음을 남겼다.


http://modernmoth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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