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Nov 24. 2021

⟪사랑이 밥 먹여준다⟫

30년 동안 800여 명의 식사를 매일 하는 일 김하종 신부의 삶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다. 김하종 신부의 책 ⟪사랑이 밥 먹여준다⟫를 거기서 만났다. 정은숙 대표는 6년 전 김하종 신부에게 책을 쓰자고 졸랐다 거절당했고, 6년을 기다려 이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피드(https://www.instagram.com/p/CWUgDzDvWJa/?utm_source=ig_web_copy_link)를 보고 바로 주문했고 어제 책을 받았다. 


퇴근하고, 남편, 아들과 함께 삼겹살집에서 저녁 먹고 들어오니 집 앞에 알라딘 비닐봉지가 도착해 있었다. 포장만 뜯어 둘 셈이었다. 책 마감이 이제 10일 남아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요즈음이다. 은은한 핑크색 표지에 앞치마를 두르고 환하게 웃는 신부님 사진을 보며 풀색 오토만 위에 앉아 책장을 열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한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김하종 신부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본명은 빈첸조 보르도이고, '하종'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이다. 30년 동안 매일매일 노숙인 800명에게 밥을 해 주시는 사제님이다. 어떻게 사제가 되었는지, 왜 한국인지, 어쩌다가 하루 800명 분의 식사를 하게 되었는지 담담하게 적혀 있다.


사제, 미사, 복사, 미사보. 천주교의 문화는 내게도 익숙하다. 둘째가 세상을 떠나며 천주교에 귀의했고, 그 인연으로 가족들이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 동생들은 세례를 받고 고운 레이스 미사보를 쓰며 미사를 드렸지만, 나는 교리 공부를 하다 입시가 시작되며 그만둬 세례명이 없다.

사진 출처 : 알라딘

'안나의 집'에선 매일 쌀 160킬로그램, 김치 80킬로그램, 돼지고기 140킬로그램에 채소, 냉동식품으로 800명 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어림잡아 500킬로그램어치의 식재료다. 한 사람이 들어 옮길 수 있는 무게가 10킬로그램이라 가정하면 50번의 이동이 필요하다. 그걸 씻고, 자르고, 조리하고, 옮겨 담고. 그 일을 매일 한다. 매일 30명의 자원봉사자가 오신다고. 이 '밥'은 '안나의 집'을 찾는 분들께 하루 유일한 한 끼고, 곧 생명줄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으니 도시락으로 배포하는데,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식물과 함께 살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같은 집에서 똑같이 물을 주고 똑같이 바람을 쐬며 키워도 자주 보는 곳에 있는 식물들이 더 잘 자란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눈길, 어루만짐에 식물은 기세 등등 해진다.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고만고만하게 자라고, '나는 네가 싫은데.'라는 눈으로 쳐다보는 식물들은 점점 세가 약해지며 결국 생명을 잃는다. 눈빛엔 그런 힘이 있다. 우리에겐 서로가 서로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의무가 있다.


오래전 복지 재단에서 일한 적 있다. 회사의 연례행사 중 하나로 전국에 있는 소년 소녀 가장을 초청해 속초에 있는 워터파크를 찾아 2박 3일을 보내는 행사였다. 어른에게도 무거운 가장의 책임을 짊어진 아이들. 워터파크에 처음 방문해 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워터파크는 실내 수영장과 스파가 한 데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목욕탕도 처음 와 본다고 했다. 몸에 때가 불어 피부에 엉겨 붙어 있었다. 그냥 두면 그 위에 그대로 옷을 입을 것이다. 얼른 이태리 수건을 사 와 열 명 가까운 아이들의 팔, 다리, 등을 문질러 주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몸을 닦아 주니 아이들은 발그레한 얼굴로 내 옆에 와 팔짱을 끼고 말을 걸며 친해졌다. 가끔 그 아이들 얼굴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김하종 신부는 '안나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 학교도 보내고 대학도 보낸다. 그 아이들이 찾아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안나의 집' 후원을 할 때 정말 좋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힌 일들은 계속 일어난다. 김하종 신부도 어린이 암 센터를 갈 때마다 심장이 얼어버리는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 눈앞에서 엄마의 사망을 지켜봐야 했던 아홉 살짜리 남자아이와 세 살짜리 동생이 있고,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도 있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는 중학교 2학년에 되던 해 고아원을 도망쳤고,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거리의 아이가 되었다. 폐결핵에 걸린 아이는 키가 175센티미터인데 체중이 42킬로그램이었다. 신부님께 나도 엄마가 있다고, 길에서 잠들려 하는데 어떤 사람이 따뜻하게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고, 그 사람이 어머니였을 거라 말하던 그 아인 다음 생일을 맞이하지 못했다.


2021년 11월에도 여전히 하루 한 끼로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차가운 눈빛을 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안나의 집'을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 하루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어제 구워 먹은 삼겹살도 죄송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둥둥 부은 얼굴도 밉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 인세 수익 전액은 노숙인 후원금으로 사용된다.



정재경 작가

매일 쓰는 사람


매일 쓰는 사람. 작가.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정화식물 200여 개와 함께 살며 실내 공기를 관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식물이 아낌없이 주는 산소와 초록 덕분에 삶이 달라졌다.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의 이로운 점을 글로, 강연으로, 방송으로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 『우리 집은 식물원』 등이 있다. http://naver.me/G2FCw42d







작가의 이전글 매일 아침 나를 챙기는 의식, 리추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