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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Feb 25. 2022

재미있고 이상한 세상

매일 매일 글을 쓰는 사람들

을 쓰기 시작하며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책을 읽을 때마다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해바라기 꽃씨 채취하듯 한 단어 한 단어 뽑아 단어장에 기록한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의 김수자 인터뷰 중에선 '도저하다'라는 단어를 발견했고, ⟪나, 건축가 안도다다오⟫ 속에선 '트릿하다'라는 표현을 찾았다. ⟪두 번째 산⟫에선 '잉걸불', 바바라셔의 ⟪긍정 에너지⟫에선 '에움길'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모국어를 반 백 년 가까이 사용해도 모르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언어의 한계가 사고의 한계를 규정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가 생각나 가슴이 뜨끔하다.


'소네'라는 필명으로 발행하는 손혜정의 '출근길 읽기 쓰기(http://t2m.kr/G7ut4 )'에서 '사숙'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도 단어장에 기록하며 뜨끔했다. 소네는 유유 출판사의 ⟪우리말 어감사전⟫ 책에서 이 단어를 발견했다. '사숙'이란 '스승으로 섬길 이를 현실적으로 만날 수 없거나 만나기 어려워 그의 작품이나 책, 행적 등을 통해 사상이나 지향하는 바를 본받는 일을 가리킨다.'라고 ⟪우리말 어감사전⟫을 인용했다.


처음 만난 단어였다. 새로운 우리말을 알게 된 덕분에 그동안 내가 해 왔던 것이 '사숙'이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스스로 사숙하는 대상은 50년 동안 조수 없이 홀로 만화를 연재하며 매일 햄 치즈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던 스누피의 아버지 찰스 슐츠나 많은 시와 희곡과 대본을 쓰고 강연도 하며 너무 열심히 일해 허리가 삐끗하고 무릎 관절이 부풀어 올라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마야 안젤루, 마흔에 등단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우유니 사막처럼 넓은 글을 쏟아낸 박완서, 절제의 삶을 살았던 법정 스님 같은 분들이다. 그분들의 발톱 끝 흰 줄만큼이라도 닮고 싶다.

소네는 '사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나를 언급했다. 부끄럽지만 어제 또 그런 이를 만났다. 문예 창작과를 졸업했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함께 리추얼을 시작하며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너무 좋다고 했다. '일간 윤청춘 https://blog.naver.com/culture_girl '으로 매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나도 물개 손뼉 칠 만큼 좋았다.


글은 양치할 듯, 밥을 먹듯 매일매일 쓰는 것이다.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은 써야 살 수 있다. 쓰고 싶은 사람들은 쓰는 행위가 곧 자기에게 물을 주는 것과 똑같다. 그 글을 아무도 읽지 않는다 해도 글을 써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매일매일 쓰는 글이 진짜 좋은 글이다. 쓰는 행위가 자체에 즐거움을 느껴야 매일매일 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글은 좋은 에너지를 품고 있다. 놀이할 때의 에너지를 떠 올려 보라. 자기를 위해 매일 노는 사람은 눈에 별이 떠 있다.


그렇다 해도 매일매일 써 보면 안다. 매일매일 쓰기 위해선 일상과 관계, 체력과 정신력, 마음, 취침 시간, 기상 시간, 먹을거리, 입을 거리 모두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교정장치로 이 전체의 배치를 앞으로 뒤로 이동하듯 내 일상의 스케줄, 관계의 재정립, 에너지의 재 분배, 순간순간 집중력과 토크를 높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시작에 사숙의 대상이 있고, 과정에 리추얼이 있다. 결과적으로 매일매일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절제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상한 상태가 된다.


나를 떠올리며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유아교육을 전공해 선생님이 될 기회가 있었으나 포기했다.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엔 인격이나 성품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스승이라면 언제나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이 부담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좋은 선생님이란 큰 나무 같은 게 아닐까. 바람이 불면 덜 불게 가지로 막아주고, 비가 쏟아지면 무성한 잎으로 막아 조금씩 떨어지게 해 주고. 한 권 한 권 쌓이는 노트를 만날 때마다 뿌리가 튼튼해지는 느낌이 든다.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해 나간다는 것. 그 재미있고 이상한 세상에 진입한 모든 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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