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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Dec 18. 2024

지금은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이야

우연히 만난 선생님이 계신다. 제주도 100평 땅에 식물을 심으러 가신다고 했다. 함께 가겠느냐 여쭈셨다. 마음은 이미 "재밌겠다! 가자!"라고 외쳤다. 어떤 일을 선택할 때는 기준이 있다. 내 경우의 그 기준은 안 해 본 일, 가슴이 뛰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항공권을 예약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달라졌다. 예전엔 글을 써야 해서 다른 일들을 못 한다고 했는데."라고 몇 년 전의 내 모습을 기억에서 꺼내 주었다. 


가장 커다란 다른 점은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다른 일을 모두 후순위에 배치해왔다. 무슨 일이든 익숙해질 때까진 연습이 필요하다. 모루 위에 놓인 금속을 두드리듯, 도마 위에 양파를 일정하게 썰 듯 글쓰기도 사실은 시간과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몸에 배야 하는 일이다. 재능이 있어도, 혹은 없어도 어쨌든 계속하면 이전의 나보다는 나아진다. 


시간과 근육의 움직임을 쌓으며 ‘나’라는 존재는 성장하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정의는 계속 달라지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기억해 주는 나의 모습과 ‘재밌겠다’하며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내 모습 사이엔 간극이 있다. 


'그래서 못 해'라는 생각이 들 때 생각을 뒤집어 본다. '그런데 왜 못 해?'. '그런데 왜 못 해?'라고 질문하던 마음에 기운이 빠지면 '내가 그걸 어떻게 해. 못 해.'가 힘이 세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는 걸 배우는 시간이야'라고 생각을 돌려본다. 


시간이 없어서 못 해. 시간이 없어도 하는 걸 배우는 시간이야. 

200자 원고지 10장을 쓰려면 최소 1시간은 필요해. 지금은 20분 안에 쓰는 걸 배우는 시간이야. 

심장이 빨리 뛰네. 스트레스 속에서 하는 걸 배우는 시간이야. 


왜 그렇게까지 써야 할까. 인간에게는 표현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 모두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다. 어떤 예술이 좋으냐, 좋지 않으냐는 자로 잴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린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움직이느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느냐. 


이 표현이 다른 이들에게 도착해 감응을 일으키는 것, 그 감정에 연결되어 치유, 회복을 느끼는 것이 예술의 순기능이다. 어떤 예술이 좋으냐, 좋지 않냐는 자로 잴 수 없지만 우린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더 많은 마음이 움직여 파도를 이룰 때, 좋은 예술이다. 


일상의 파도 속에서 자기표현의 욕구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은 피아노 조율과 같다. 일상과 예술의 균형을 잡기 위해 현의 장력을 조정하고, 튜닝 핀을 돌리며 하나하나 잡아나간다. 조승연 작가는 마케팅의 구루 세스 고딘과의 인터뷰에서 유튜브가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세스 고딘에게 조언을 구하자 세스 고딘은 매일 예술을 하려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어떤 날은 마음에 드는 결과물일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예술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러나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예술은 예술이니 그냥 계속해 나가라고 말했다. 


내일은 제주도에 간다. 지금까지 100평 땅에 식물을 심어본 경험은 없다.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가야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자고 싶은 마음과 쓸 이야기가 없다고 느끼는 압박, 이야기가 채워지지 않는 가운데 20분 안에 쓰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경험과 배움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있다.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 필요한 이유는 우연때문이다. 츠타야의 회장 마쓰다 무네아키는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과 일하는 것이라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느냐는 질문엔 모른다고, 오로지 우연이라고 말했다. 


‘우연’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때로는 계획보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야 하는 이유다. 제주도의 땅에서 식물을 심으며 자연과 교감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 글쓰기를 이어가며, 나라는 존재는 또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나만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들이 다시 삶의 일부가 되어간다.


포기할까 망설여지는 순간에는 되뇌어 보자. 지금은 OOO을 배우는 시간이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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