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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Oct 26. 2023

이태원 참사를 다룬
크러쉬(CRUSH)를 보았다

크러쉬(Crush)



크러쉬(CRUSH)는 파라마운트 플러스(Paramount+)에서 만든 다큐 시리즈이다. 2022년 10월 29일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록이다. 1부 '골목길'과 2부 '군중'으로 구성된 2부작이다. 1부에서는 그날 그 작고 좁은 '골목길'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생존자의 증언과 영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고, 2부에서는 그날 밤에 예상된 '군중'에 대한 통제가 왜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파라마운트 플러스, 홍보 페이지 화면 일부 갈무리


보는 내내


보는 내내 그 골목길에 끼어 서 있는 듯이 가슴이 답답했다.

보는 내내 그 골목길에 서서 갈비뼈가 으깨지는 듯이 고통스러웠다.


보고 나서


보고 나서 나는 울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이유도 모른 채

어이없이

허무하게

같이 죽어 간

서로 모르는

158명의 비명이 들려서 울었다.


우연히 나도 그곳에 있었더라면

어쩔 수 없이

이유도 없이

무기력하게 죽어 갔을 것이다 싶어서

무서워서 울었다.


나는 울었다


보고 나서 나는 울었다.


부끄러워서 울었다.

아직 우리나라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싶어서.


분쟁지역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도 아니고

거역할 수 없는 엄청난 자연재해도 아니고

어디에나 있는 흔한 골목길에서

158(159)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다.


그것도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선진 국가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흔하디 흔한

상점 앞 식당 앞 주점 앞

골목길에서.


느리고 천천히 서서히


보고 나서 나는 울었다.


억울해서 울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의 손길을

오ㆍ랫ㆍ동ㆍ안

애타게 기다리며

길ㆍ고ㆍ도

긴 시간 동안

어느 평범한 골목길에 서서

느ㆍ리ㆍ고

천ㆍ천ㆍ히

서ㆍ서ㆍ히

죽어가야 했다는 사실이.


보고 나서 나는 울었다.


화가 나서 울었다.

반질거리는 구두를 신고

구김 없이 잘 다려진 옷을 입고

짓눌린 신발 더미와 구겨진 옷가지들을

남의 일처럼

내려다보며

거들먹거리며

폼나게

사고 수습을 지휘하는 기름 낀 면상들을 보면서

겨우 감상문이나 쓰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울었다.


미안하다


오늘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럽고 많이 미안하다.


대비는 한심하기 그지없고

대응은 허둥지둥 어찌할 줄 모르고

게다가

진실마저 가리고 감추는

뻔뻔하고 정직하지 않은 나라처럼 보여서.


사과한다


K-팝이니 K-드라마니 하면서

더 이상

잘난척하며

자랑할 수 없을 것 같다.


잘난척하는 우리의 자랑을 믿고

한국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믿고

그곳에 있었던 친구들에게 

사과한다.


하나의 결론


"누구도 그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질문


"희생자 가족들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 조사를 위해서 여전히 싸우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번에는 그 골목길에 없었지만

혹시나 모를 나와 당신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




#크러쉬, #crush, #Paramount, #파라마운트, #이태원,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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