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재 Sep 05. 2023

'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어느 배구 선수 이야기

'수학 석사 학위' 반야 부키리치의 한국 도전


한국 여자 프로 배구 V-리그에서는 매년 각 팀에서 활약할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드래프트를 실시한다. 2023-24 시즌을 위한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가 진행되어 각 팀이 선택한 선수들이 팀에 합류하고 있다. 신문의 스포츠면을 스치다가 눈에 띄는 한 선수를 발견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스포츠면 기사 중 일부 화면 갈무리 (나중을 위해서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기로 한다.)


체육 특기생


'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배구 선수라니? 이력이 독특했다. 한 때 대학에서 운동 종목별 특기생들을 뽑아서 체대가 아닌 일반 대학의 학과에도 체육 특기생들을 임의로 배정을 한 시절이 있었다. 나름대로 대학에 인기 종목의 특기생으로 들어가려면, 초중고를 졸업했지만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해당 종목 훈련만 죽으라고 열심히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출석부 비고란에 '특'이라는 표시가 있었고, 한 번도 수업에 나타나지 않아도 기본 점수는 부여하도록 되어 있었다. 재학 기간 내내 얼굴을 몇 번 보이지 않고 졸업을 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대가 낳은 불편한 진실을 목도한 나는, 지금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전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들이 명문대학의 유망학과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투어 형식의 경기에 참여하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대학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들의 대학교 학부 과정은 '명예 학사' 수준으로 평가절하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석사는 다르다


하지만, 석사는 다르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면 유명세가 석사 과정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 학부 과정과는 달리 전적으로 선수 개인이 선택하고 감당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부까지는 어떻게 대학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석사 과정에서부터는 보호막이 사라지고 오롯이 개인이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석사부터는 해당 선수의 목표와 의지를 분명하게 읽어 낼 수가 있다.


'수학 석사' 라니?


수학을 싫어해서 문과를 선택한 문과 출신에게는 수학을 전공한다는 친구가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수학과 학부 과정의 교재만 슬쩍 훔쳐보아도 숫자와 기호로 나열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필자: "야, 이걸 어떻게 이해하냐?"

친구: "기호와 서술 규칙만 이해하면 그냥 읽히는 거야."


다시 말해서, 수학 전공을 한다는 것은, 정해 놓은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고, 정해 놓은 서술의 방식을 이해하고 동일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의 학부 과정 내내 훈련을 받는 셈이다. 그래서, 친구는 수학 전공 서적에 적힌 난해한 문자와 수식이 이해되고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수학 전공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을 한다는 것'은, 어느 날 수학 전공으로 석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전공보다 더 전공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필요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 배구 선수가 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면, 학부 때도 수학을 전공하였거나, 다른 전공이어도 프로 배구 선수가 되고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과정 중에서도 수학에 대한 관심과 취미로 수학에 대한 소양을 쌓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난해하고 정적인 수학을 좋아하는 명쾌하고 동적인 배구 선수라니.


반야 부키리치


세르비아 국적의 반야 부키리치(Vanja Bukilić) 선수가 링크드인(LinkedIn)에서 밝힌 자신의 학력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이미지 출처: 링크드인(LinkedIn) Vanja Bulkilic 개인 소개 페이지 일부 화면 갈무리


토목 공학과 구조 공학


해당 선수가 밝힌 학력 정보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2018년도에서 2022년까지(4년) '토목 공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에서 2022년 5월부터 2023년 5월까지 1년간 '구조 공학'으로 석사 학위 과정을 공부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대학원 과정에는 학교마다 다양한 이수과정이 있기 때문에 1년 만에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는지, 아니면, 보통 2년의 석사과정 중에 재학 중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시간을 들여 확인해 보아야 할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위 영문 페이지의 한국어 번역 화면 일부 갈무리


토목 공학과 구조 공학을 전공하였다는 것만으로 여자 프로 배구 선수로서는 흔하지 않은 독특한 이력이기는 하였다.


'수학 석사'는 어디에서?


해당 선수에 대해서 다양한 정보 검색을 시도하였으나 위에서 밝힌 학력 정보 외에 '수학 석사 학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본문에서 답을 찾다


'수학 석사 학위'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로 돌아가서 다시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찾았다! 수학 석사.


이미지 출처: 신문 기사 화면 일부 갈무리


'수학 석사 학위'를 찾으셨는가? 찾지 못하셨다면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펴보시라.

이미지 출처: 신문 기사 화면 일부 갈무리


학부에서 '도시 공학'을 전공하였다는 것도 본인이 밝힌 '토목 공학'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구조 공학 석사'가 '수학 석사 학위'가 되는 과정은 황당함을 넘어서는 코믹함이 있었다. 덕분에 모처럼 크게 웃었다. (본문을 대충 읽고 지나치게 멋진 제목을 뽑은 탓이 아닐까 싶다.)


'수학 석사 학위' 답게


하지만, 웃음의 끝은 씁쓸했다.


혹시나, 

'수학 석사 학위를 가진 배구 선수'에 꽂힌 언론과 매체들이,

"수학 석사 학위를 가진 독특한 이력답게 반야 부키리치 선수가 예리한 계산 능력으로 자로 잰듯한 공격을 한국 코트에 꽂아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와 같은 기사를 양산해 내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혹시나,

시간이 없거나, 관심이 없어서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우리가 믿고 소비하는 많은 정보들이 이런 수준은 아닐까

조금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algarve/299


매거진의 이전글 천재 지 변: 천재를 위한 변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