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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Aug 12. 2021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

내 몸을 유일하게 관찰하는 기회

40대까지는 그저 맡겨진 일에 죽어라 매달려야 했지만, 50대부터는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때 뜻하는 바를 이루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마음 근육 관리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도 달리기는 특효약이 아닐 수 없다.

<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 中에서


'(헉-헉) 내가 지금 왜 사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4시 30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발끈을 질끈 묶고 집을 나섰다.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아파트 옆 생태 공원을 따라 원형으로 늘어선 트랙에 발을 실었다. 15분이 지날 즈음 허벅지에서 묵직한 신호가 느껴졌다. '오늘따라 왜 이리 힘들지. 어제 말복이라고 차려준 백숙을 많이 먹었던 탓일까'. 잠시 인적 없는 틈을 타 마스크를 내렸다. 폐부 속으로 공기를 맘껏 집어넣으며, 다시 두 발로 땅을 힘껏 굴렀다. 


컨디션 때문인지 몇 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아파트 도착. 호흡을 가다듬고 아파트 외곽 산책로를 걸었다. 스트라바(Strava) 운동 앱을 실행하며 얼마나 뛰었는지 체크했다. 토털 5.2km. 땀이 상위 셔츠를 흥건하게 적셨다. 아내와 아아가 깰까 봐 까치발로 작은방에 살금살금 들어간 후 근육 운동을 했다. 스쾃 120개와 푸시업 70개. 그리고 나지막이 소리 낮춰 외쳤다. 오늘 운동 끝!  




작년 8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전까지 간간히 근육 운동만 했는데,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다 싶어 달리기를 선택했다. 전부터 달리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달리기와 영영 담쌓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한 몫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6살 아이의 뜀박질을 당해내기 위한 아빠의 생존 본능이기도 했다. 달리는 시간은 '아침형 인간'이 되고자 새벽으로 정했다. 그 시간은 요즘 같은 팬데믹 시대에 요령껏 마스크를 썼다 벗을 수 있는 특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결심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작년 8월 건강검진에서 제법 큰 용종이 발견됐다. 당시 추가 조직검사까지 운운하며 식겁을 했었다. 다행히 대형병원에서 잘 제거했지만 아마 그때부터였다. 40대 중반에 보내는 내 몸의 이상 시그널을 감지한 것이. 일단 밀가루를 잠시 끊고 달리기를 하면서 3개월 만에 8kg 가까이 감량을 했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달리는 거리를 늘렸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달리기를 루틴으로 만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온라인 모임 '하루 5분 운동' 덕분이다. 매일매일 운동량을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인증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암묵적인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중독성이 강하다. 재미와 거리가 먼 달리기가 뭐가 그리 좋으냐는 의문(?)도 있지만, 나는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아직 중독까진 아니지만, 일상의 루틴이 되고 있다.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체력을 만들었다는 자긍심이 일단 기쁘다. 특히 새벽을 달리기로 시작하니 하루가 꽉 차게 느껴진다. 미세먼지가 아주 나쁘거나 비 오는 날은 건너뛰는데, 이런 날도 뭔가 아쉽고 허전한 기분이 든다. 물론 쉴 수 있다는 자기 합리화로 그날은 약간의 게으름을 청하는 편이다. 또 내 몸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유일하게 관찰하는 기회다. 달리기가 편하기도 하고 편치 않을 날이 있는데, 그 기복이 신체가 보내는 징후라고 생각한다. 후자일 경우 몸을 등한시 한 나에게 '소중하게 대하라!'는 엄포가 귓전을 때린다.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의 예찬론자라고 한다. 글쓰기와 관련이 깊다는 방증이다. 달리기는 꾸준함을 요하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중심인 운동이다. 글쓰기도 체력이 있어야 생각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지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글쓰기는 용두사미로 끝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엉덩이로 글을 쓴다는 말이 나올까.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달리기가 엉덩이의 빵빵한 에너지를 채우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셈이다. 


더불어 신체의 반란이 반갑다. 처음 6개월 남짓 뱃속에 돌멩이를 안고 뛰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의 변화가 보였고 그걸 지켜보는 것이 신기했다. 마치 가득 들어찼던 돌멩이가 조금씩 가루가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꽉 끼었던 옷들은 폼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살이 빠지면서 자신감도 한층 올라갔다. 물론 중간중간 고비는 찾아왔지만, 뚝심으로 버티며 슬럼프를 이겨냈다. 불청객처럼 찾아오던 두통이 가셨다. 아무렇게 먹는 '마구잡이식' 식습관도 개선됐다. 


무엇보다 일상의 시작이 상쾌하다. 달리기는 하루를 디자인하는 마중물이 된다. 생기가 돌다 보니 마음의 안정감이 생긴다. 하루 10분 명상과 함께 감정의 진폭을 제어하는 '평정심'을 갖추는 무기가 된다. 개인의 영역을 넘어 가정과 회사에도 이런 순한 감정과 마음이 가득 들어찬다. 결국 달리기는 불만과 화 그리고 스트레스를 '현저하게' 낮추는 방어기제가 된다.  

         



하나씩 열거하다 보니 좋은 점이 끝이 없다. 하지만 재미는 없다. 무료하고 고통스럽다. 인간은 유희의 동물이라는 데, 그 대척점에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눈감고 딱 6개월만 해보면 알 것이다. 생각보다 재밌다는 것을. 매력적이면서 홀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상의 변화가 멋지게 자신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반전의 묘미가 설레고 반갑다. 왜 사람들이 마라톤에 열광하고 미치는지 어렴풋이 알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절대' 욕심 내지 않는 것. 나의 신체 밸런스에 맞춰 달리기를 해야지 그 이상을 탐하면 득이 아닌 독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점만 유념한다면 달리기는 그 어떤 운동보다 장점이 많다. 매일매일 새벽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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