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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Jul 29. 2021

글이 흉기가 되는 세상

가짜를 걸러내는 자정능력이 필요할 때

자극적인 제목에 포획돼 기사를 읽다 보면, 한숨과 우울이 밀려올 때가 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인신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댓글의 말폭탄이 난무하면 슬픔의 밀도는 한층 농밀해진다. 그걸 보는 나도 한심하지만, 소중한 시간(?)을 내면서 언어도단을 자처하는 그들의 무지한 행태에 분노가 치밀 때가 많다. 논리와 이성은 접어두고 온갖 날것의 감정에 휘둘린 채 글에서 비릿한 냄새가 묻어난다. 통탄스럽다.


예컨대, 요즘 2020년 도쿄올림픽이 핫하다. 5년간 인고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며, 그간 흘린 피땀을 쏟아내는 현장은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 감염병이란 특수한 환경 속에서도, 메달을 위한 선수들의 분투는 고스란히 그 열기가 안방까지 전해진다. 10년 전 중국에서 귀화한 탁구 선수 전지희, 재일동포 3세로 이번에 유도에서 값진 동메달을 거머쥔 안창림 선수 등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그 울림과 감동은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우리나라 태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향한 저주와 비하식의 글은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하다.          




직장인의 해우소로 불리는 '블라인드'가 인기몰이다. 아무래도 익명에 가려 뒷담화를 나눌 최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온갖 유언비어가 폭주하는 곳이 또한 블라인드다.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글을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혹자는 직장에서 이런 사이버 공간마저 없다면 숨 막혀 살지 못한다거나, 정보 점유권이 경영진과 일부 기득권자에게만 있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블라인드를 통해 유입되는 정보의 유용성을 당연시한다.


물론 순기능적 측면에서 동의한다. 하지만 필터링되지 못한 회사 내부 정보가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고, 그 여론이 무기가 되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질 것인가. 이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가령 회사의 정책이나 제도의 모순을 공론화하기보다는, 개인의 인성에 맞춰진 마타도어식의 글들이 활개를 친다. 댓글은 꼬리를 물고 의혹을 증폭시키고, 또 그 증폭된 의문은 상당한 부작용을 잉태한다. 이런 역기능이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나는 어느 날 블라인드 앱을 지웠다.  




빅테크의 발달과 온라인의 전성시대가 도래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가짜뉴스가 횡행한다. 사실이 아닌 내용이 그럴싸하게 포장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급기야 가짜는 진실로 둔갑한다. 수치를 교묘히 조작하고 권위 있는 인물의 말을 절묘하게 짜깁기하면서 가짜를 진짜처럼 포장한다. 이는 정치에서도, 회사에서도, 급기야 학교에서도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빈번하게 써먹는 수법이다. 물론 대항마인 명예훼손이 있지만, 사실상 자료를 토대로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신빙성 있는 가짜가 이미 여론을 선점했다면, 아무리 진짜가 나오더라도 백해무익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란 도그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문에서 오보를 냈더라도, '바로잡기'를 통해 독자에게 해명성 기사를 게재하지만 그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다. 이런 가짜뉴스는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란 탈을 쓰고 폭주한다.




요컨대, 글은 양면성을 지니고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쏟아낸다. 인신공격성 댓글과 가짜뉴스처럼 네거티스섬으로 수렴되기도 하지만, 글 하나로 여러 사람의 마음에 희망과 신념과 사랑의 기둥을 세우는 경우도 많다. 좋은 뉴스에 명주바람처럼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하고, 시 한 구절에 넋 놓고 오래도록 잔상을 키우기도 한다. 고전에서 길어 올리는 울림의 글은 가슴에 박제되어 지난한 시기를 극복하는 강건한 영양제가 되고, 아내의 톡에서 묻어나는 사랑의 감정은 딱딱한 회사생활의 부드러운 윤활유가 된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마음에 군불을 때우는 글들은 그만큼 소중한 값어치를 지닌다.      


결국 우리는 묻지  일성의 '공격 앞으로' 글이나 팩트와 무관한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자정 능력' 필요하다. 글에 관한  타인의 무감을 지적하고, 팩트체크를 통한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중요하다. 그리고 같은 재료임에도 보는 것만 보는 정보 편식은 멀리해야 한다. 물론 미디어란 프레임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근본적 한계는 있지만, 극과 극의 논조에서 기생되는 논리의 엉성함을 발견하면 자신만의 혜안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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