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란 내면의 소리들
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
책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다채로운 인풋(Input)을 통해 인생의 ‘꺼리'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꺼리'들을 이리저리 연결하고 가공해 하나의 '글'로 정제해내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 몇 달 전 읽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이 그랬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 부지불식간 밑줄 좌악 그어주시고, 그 문장의 담론을 더듬으며 한 동안 사색에 빠졌다. 작가는 '여행'에서 강렬한 생(生)의 전율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속삭임을 들었던 적은 언제였는지 상념에 잠겼다. 기분 좋은 사유였고, 진흙 속 진주를 캔 글감이었다.
첫째는 여행의 순간이다. 다만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배제한 '혼자만의 여행'. 약 10년 전 일생을 통틀어 딱 한 번 솔로 여행을 다녀왔다. 어떤 결심인지 모르지만 당시 내 마음은 바닥이었고, 헐거워진 마음을 단단하게 조일 치유가 필요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땅끝마을로 향했다. 심연의 바닥처럼 그곳엔 왠지 비슷한 처지의 '객'들이 밀물처럼 밀려들 것 같았다. 땅끝마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6명의 '객'들. 우리는 첫날 축구(한일 전)를 보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새벽까지 술자리가 이어졌고, 타인의 낯선 향취도 시간에 묻혀 점점 옅어졌다. 꺼내기 힘든 심중의 말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나왔다. 혼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치유로 가득한 시공간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것. 그 순간이 온전이 나만의 것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지금 다들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6명의 '객'들을 응원하고 싶다. ‘객’들의 인생은 개별적이지만, 그 순간만은 합일되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둘째는 가족과 공존하는 순간이다. 여행이 치유의 SOS에서 비롯됐다면, 가족과의 공존은 삶의 완벽함을 더한다. 아내와 결혼하고, 2년 후 아이가 태어나면서 기존의 삶은 철저히 탈거됐다. 지인과의 술자리, 사회인 야구, 탄산음료 홀릭 등 줄이거나 접어야 하는 개취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가족'이란 공동체의 수장이 되다 보니 더하고 빼는 생활의 이치는 자연스럽게 달라붙기 마련. 더구나 초기엔 자라온 환경의 이질감에 아내와 적잖은 다툼이 있었지만, 균열의 공간에 이해와 공감을 덧대다 보니 지금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너끈히 이어가는 중이다. 내 폰의 모든 사진이 6살 아들로 도배되고, 퇴근 때 득달같이 달려와 '레고'부터 외치는 그 모습 또한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멀리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란 프레임의 이중성을, 적어도 가정에는 접목하고 싶지 않다. 바로 내 삶이 나만의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이기에.
셋째는 글 쓰는 순간이다. 자주 강림하지 않지만 무아지경에 빠질 때가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스스로 사유를 확장해 글을 완성해가는 희열이 반갑다. 텍스트로 도배되는 스크린, 고요한 정적의 순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해지며, 여러 겹의 페르소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와 오롯이 만나는 민낯의 순간이다. 그런 영감과 필력의 찰나를 사랑한다. 무엇보다 내면의 목소리가 휘발되거나 묻히지 않고, 글로 박제된다. 글 쓰는 이유 중 하나다.
넷째는 책 읽는 순간이다. 손에 든 책이 재밌으면 혼자 낄낄거린다. 책 속에 교묘히 감춰진 유레카를 발견했을 때 무음의 괴성을 지른다. 책은 그 자체로 주옥같은 선물이 된다. 지식의 확장도, 지혜의 속삭임도, 통찰의 깨달음도, 언어의 유희도, 책은 어느 하나에 시선을 두지 않고 아낌없이 퍼준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찾아오는 충만함은 덤으로 받는 보너스. 습관적으로 들추는 책에서 내 삶의 온전함을 느낀다. 그 포근함이 좋고 그 평온함에 행복하다. 책 없이 사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생각의 사슬이 꼬일 때로 꼬이는 요즘, 그나마 활자로 매듭을 푸는 중이다.
마지막은 좋아하는 지인과 술 한잔 기울이는 순간이다. 코로나19로 이런 호사가 당분간 무용지물이 됐지만, 그 만남을 복기하면 늘 유쾌, 상쾌, 통쾌한 시간이 지배했다. 대화의 맥락을 놓치며 엇박자가 나도 박장대소가 터지고, 함께했던 추억을 더듬을 땐 서로의 볼이 발그레해지며 어쭙잖은 감상에 젖는다. 인생은 남루해도, 친구들 추임새 한 번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내 삶이 나만의 것이란 흔치 않은 순간 중 하나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 변죽만 울리다 종 치는 인생이 아니라, 적어도 그런 찰나를 많이 지니고 다닐수록 '인생 부록'이 더 빵빵해진다. 내 삶이 무엇인지 들추고 싶어도 들출 것이 없는 만큼 비루한 생도 없을 것이다.
이런 축적의 시간을 모으는 것이, 결국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언젠가 죽음을 목도하는 순간, 이런 내면의 순간을 마음껏 향유하고 즐겼다면 뒷목 잡고 열변 토하는 '후회' 역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