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부동산, 주식에 흔들리는 내면 보고서
#1.
"OOO는 비트코인으로 대박 났다더라." 아내가 옆집 언니와 점심을 먹은 후 대뜸 하는 이야기. 그리고선, "우리도 비트코인 할까?" 라며 은근히 부추긴다. 언니가 밥도 사고, 커피도 주문하면서, 옷도 주더란다. 아무리 친해도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대꾸하니, 아내는 새초롬해져서 입 언저리가 씰룩거린다. 곱씹다보니 아내의 배 아픈 말꼬리가 느껴진다. 그것도 단단하고 묵직하게. 그렇다고 8천만 원 가까이 널뛰는 비트코인(물론 지금은 4천만 원 대로 반토막이 난 상태지만...)에 투자하기엔 내 심장이 너무 작다. "에잇, 그거 도박하고 같아. 담이 약한 사람은 절대 못해. 폐인된다니까." 급하게 갈무리를 했음에도 말의 잔상에서 느껴지는 지질함은 무엇일까. 세상이 미쳐 돌아도 유분수지 여기도 코인, 저기도 코인이다. 시간과 능력을 투입해 얻는 정직한 근로소득보다, 듣도 보도 못한 투자에서 잉태하는 돈의 가치가 더 큰 것일까.
#2.
아내와 친하게 지낸 지인 중 한 분이 안산으로 이사를 갔다. 남편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옮겼다는 데, 웃돈을 주고 산 아파트가 1년 사이 2억이 뛰었다고 한다. 억 소리 나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다. "와, 정말? 브랜드 아파트라 그런가? 역세권이야?" 나와는 관련이 없는데도 궁금증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천정부지로 뛰는 부동산 가격. 다소 무리하더라도 전세보다 아파트를 매입한 사람들이 승자다. 이건 용기와 결단의 득템일까. 부동산 불패 신화가 결국 거품 낀 허상으로 끝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꺼지지 않는 활화산임은 분명하다. 솔직히 1년에 몇 억씩 껑충 뛰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3.
작년 코로나19로 연초 주식시장이 폭락장으로 돌아섰지만, 어느새 수직 상승하면서 많은 사람이 주식시장으로 모여 들었다. 나 역시 그중에 한 사람.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낮은 금리에 쥐꼬리만 한 예적금으론 부족해 주식을 시작했다. 물론 담대한(?) 모험과는 투자 성향상 거리가 멀어 우량주 위주로 소액만 넣었다.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과 통화했는데 이 녀석들은 와이프 몰래 주식을 한단다. 그것도 소위 레버리지로 일컫는 빚을 내서 천만 원 단위로 말이다. 그중에 한 명은 8천만 원 가까이 수익을 거뒀다는데 연일 웃음이 떠나지 않는단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내 주식이 어찌나 볼품 없어 보이고 처량한지 모르겠다.
#4.
친하게 지낸 부하 직원이 지난해 카카오게임즈로 이직했다. 옮기자마자 코스닥에 상장돼 자사주를 받았다는데, 주가가 천정부지로 뛰면서 만면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부럽다. 요즘 많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성과급 대신 자사주를 지급하면서 로열티와 인센티브를 동시에 부여한다고 한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몸담고 있다면 바람직해 보인다. 그에 반해 우리 회사는 상장폐지의 기로에 서 있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미 모조리 팔고 나왔다. 로열티 갖기 생각처럼 쉽지 않다.
"It's not my business." 지금껏 돈에 관한 한 쿨한 척 아내에게 말했지만, 이런 여러 일들을 겪다보니 속앓이 하는 나를 발견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고 여겼는데, '아니올시다'이다. 여전히 배앓이에 가슴이 휑해진다. 남모를 시기심은 아닌데, 묘하게도 타인의 부의 쟁취에 부러움의 뇌파가 급상승한다. 필경 인간의 뇌는 '질투 모드'가 본능적으로 작동한다는 자기 합리화를 주지시키면서, 과감한 결단과 쟁취의 장으로 뛰어들지 못한 소심함을 탓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두기를 응원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바로 냉철한 이성 모드다. 아무 정보도, 지식도 없는 데 그저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며, 사사건건 간섭하며 뜯어말린다. 일백 번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돈(투자)을 넣어라고 들이대는 감정을 박대할 수만은 없다. 그건 아니라고 박박 우기다가도 나팔 귀가 되어 타인의 투자 성공에 눈길이 간다. 소액의 주식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있지만, 주위의 대박 소식에 널뛰는 감정은 어쩔 수 없나보다.
타인의 횡재(?)를 부러워하는 졸렬한 모습인지 모르겠다. 사실 들어갈 돈은 많고, 회사는 위기의 정점에 서 있고, 딱히 전문 자격증도 없는 가운데, 그 '졸렬함'은 생의 위기에서 필연적으로 발로된 것이 아닌지. 그럼에도 이런 자극들이 계기가 되어 금융 공부를 시작했고, '투자'에 대한 신기원을 찾아 무턱대고 두드리고 있다. 돈을 멀리하려했던 무지를 일깨우고, 파이어족으로 거듭나는 일천한 걸음을 내딛었다. 견물생심보다 언감생심의 겸손모드로, 조금씩 부(富)의 확장을 소망할 것이다.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더이상 배앓이는 그만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