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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Jul 01. 2021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인정 욕구에관한 소회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장인어른 제사 차 부산 처갓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새벽 4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탓에 7시 무렵 목적지의 2/3 이상을 내달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숨 고르기를 한 후, 다시 차에 오르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팀장이었다. 연차인 줄 알면서도 이른 아침부터 전화한 이유는 너무나도 뻔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팀장 성향상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마지못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낮고 묵직한 음성으로) 네 팀장님..."

"김 차장, 어디야?"

"네, 부산에 거의 다 왔어요."

"... (침묵) 빨리도 출발했네. 김 차장에게 메일 하나 보내 놨어. 본부장님이 시킨 건데 급하니깐 부탁 좀 할게..."

".... 네,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갑자기 구겨진 인상을 보더니, 뒷자리에 앉은 아내가 한 마디 거든다. 

"왜 무슨 일인데? 회사에서 오라고 하나?"

"아니, 그건 아닌데... 아무래도 어머님 댁에서 일 좀 해야겠어? 처남 노트북 있나?"

"응. 아마 있을 거야... 회사에서 급하게 찾으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연찬 낸 것 알면서... 그것도 아침 7시부터...."

"인정받는다고 생각해..."

"아놔..."


장모님 댁에 도착해 아침밥을 허겁지겁 먹은 후, 종일 일만 했다. 빈약한 자료 탓에 수시로 팀장과 전화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최종 결재에 이르기까지, 재택근무의 끝판왕처럼 진땀을 뺐다. 최종본을 본부장과 팀장의 메일로 전송한 후,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아빠와 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6살 아들도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율아, 아빠랑 앞에 놀이터 갈까? 미끄럼틀 타러 가자. 시장 구경도 하고, 다이소에 갖고 싶은 것 아빠가 사줄게..."

"정말? 응, 알았어. 지금 나가자."


코로나 때문에 장모님 댁의 발길이 뜸했던 요즘, 가족 모두 설렘으로 출발했던 부산행이 팀장 전화 한 통에 짜증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무간지옥 속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찾아온 평화의 정적.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가 업 앤 다운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임기응변을 발휘해 주어진 일을 끝냈을 때의 쾌감은 분명 있었다. 마냥 불만과 짜증이란 일차원적인 감정으로만 일관했다면, 일은 일대로 아들과의 놀이는 놀이대로 엇박자가 났을 것이다. "수고했어"라는 팀장의 짧은 멘트가 썩 유쾌하지 않았어도, 이 정도면 매끄럽게 일처리를 매조지었다는 알량한(?) 자부심은 있었다.  


     



직장과 달리 아버지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인생의 또 다른 결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예전 결혼 상견례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장모님에게 건넨 말은 시간은 제법 흘렀어도 여전히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돈어른, 자랑 같아서 하는 말은 아닌데 제 아들이 그래도 한 직장에서 13년을 넘게 근무하고 있어요. 회사가 참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뎌내고 버티는 거 보니 대견스럽더군요. 이렇게 끈기가 있는 놈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사돈께서 아드님을 잘 두셨네요. 그런 사위를 보니 저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달달한 말풍선이 당혹스럽고 부끄러웠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그 시간을 반추해보니, 나는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은 셈이었다. 이런 사탕발림의 말들은 당신께서 일절 꺼내지도 않는데, 그날만은 아들을 적극 프로모션 했다. 며느리가 마음에 들어 기필코 장가를 보내겠다는 일념의 강단인지 모르나, 당신의 가슴속에 새겨진 아들을 향한 믿음은 그 조각조각 꿰어진 문장들로 이해되고도 남았다. 그 뒤로 두 번 다시는 허세가 깃든 일체의 언사는 오가지 않았으니. 그래서 유독 그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나 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 손사래부터 치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칠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 프레임이 달리 보인다. '인정 욕구'는 본능이며, 성찰과 성장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겉으로 '척'하는 것이 문제일 뿐, 내면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느끼면서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다면 이보다 훌륭한 성장 보조제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윤활유 같은 역할이 바로 '인정 욕구'다.   


'재수 없어'라는 타인의 빈말이 빈정으로 느끼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결국 뜯어보면 배가 아프고 질투심의 발로가 아닐까.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팀장의 업무 지시에 감정을 다독이며 끝까지 업무처리를 끝마쳤을 때 스스로 느낀 '인정 욕구'. 가뭄에 콩 나듯 무뚝뚝한 아버지의 칭찬에 일순간 웅크리고 있던 자존감이 불끈 솟았던 기억. 


사실 나는 스스로에게든, 타인이 부르든 '인정 욕구'에 무감한 줄 알았다. 하지만 굳이 피할 필요가 없는 것이 바로 '인정 욕구'가 아닌가. 그래서 즐기기로 했다. 그것 역시 나의 또 다른 모습 중 하나임을 자각하면서. 타인들 역시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인정 욕구'에 갇혀 산다. 티를 더 내고 덜 낼뿐이다.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즐기는 또 하나의 '인생 훈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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