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목격하며
날이 쌀쌀해지자 엄마는 자주 손마디를 아파했다. 손 마디마디에 테이핑을 하며 손이 아파 설거지나 과일 깎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을 했다. 그동안 설거지와 과일 깎기는 엄마의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녀의 마디가 삐걱거릴 때까지 그녀는 그릇을 씻고 과일을 깎았다. 나는 절기가 지나며 그녀의 마디가 조금씩 닳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여기저기 아픈 구석이 많았다. 점점 더 불편을 토로했다. 나는 그녀가 노화되고 있다고 느꼈다. 슬픈 일이었다. 저물어가는 과정을 피부로 체감한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지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의 젊음이 가끔은 미안했다. 내가 그녀의 온기를 좀먹고 자란 유해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날들에도 나는 계속 자라 십 대를 거치고 이십 대를 거쳐 서른을 목전에 두었다. 서른은 의미심장한 숫자였다. 삼십 대가 되면 나도 엄마의 지난 삶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딸들은 엄마를 닮는다던데 엄마를 닮은 삶은 어떤 걸까. 알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난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내가 엄마가 되어도 영영 모를 일이었다. 그게 늘 마음 아팠다.
오늘은 3년짜리 적금을 들었다. 적금이 만기 되면 나는 서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가도 완성된 3년의 적금은 가지고 싶어지는 모순의 감정이 들었다. 3년 뒤에는 결혼을 했을까. 당장 3개월 뒤의 내 모습도 그려지지 않는 나는 3년 뒤의 내 모습을 알 턱이 없다. 그저 꼬박꼬박 돈을 이체하며 3년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3년이 지나면 나는 서른이 되어있고 엄마는 그만큼 더 늙어있겠지. 돈 따윈 아무래도 좋으니 시간이 흐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내 결론과는 무관하게 지구는 멈추지 않고 공전하겠지. 삶이 너무나도 빠르게 흘렀다. 급류에 휩쓸린 것처럼 급하게 늙어갔다. 우리 이러지 말자. 늙지 않는 곳으로 가자. 세상과는 동떨어진 그런 곳. 우리만의 늙지 않는 섬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