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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Oct 01. 2022

믿을 수 없는 것도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달력을 넘기며

며칠째 검정치마의 음악을 듣고 있다. 슬프고 묘하게 신나는 선율에 마음을 위로받는 청춘이 되었다. ‘되었다 동사는 어딘가 슬프고 씁쓸했다. 아무것도  되어가고 있지 않은 하루였기 때문이다. 이런 날엔 정말이지  내려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심장의 판막 어딘가에 무언가 희뿌연 막이 하나 끼어있는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음이 답답했다. 아무것도 잘못되진 않았지만 나아가는 길에 온통 마찰이 가득했다.    


인내할 수 있는 근육이 가득 팽창해 있다고 느낀다. 더는 담을 수 없겠지.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며 나를 계속 잃고 있었다. 오늘은 쨍한 두통이 찾아왔다. 환절기의 감기쯤 되려나. 어쩌면 쉽게 발열하는 내 거친 성질에서 오는 부산물쯤일 수도 있었다. 별다른 수 없이 두통약을 먹었다. 아픔을 감당하는 것에 그 누구보다도 취약하다는 걸 실감했다.


며칠 전에는 근처의 공원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여름이 다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벤치에 앉아있다가 모기에 한쪽 다리를 서너 방 물렸다. 모기에 물린 자리는 며칠째 간질거리며 은은하게 그 위치를 드러냈다. 우습게도 모기에 물린 자리를 긁으며 다리의 존재를 감각했다. 너무 심하게 긁어서 다리의 살이 조금 까졌다. 말했다시피 감당하는 것에 취약한 편이다. 그날 밤엔 발목이 잘리는 꿈을 꾸었다.


여유가 없어져 취미로 받던 작곡 레슨을 그만둔 지도 몇 개월이 지났다. 코드가 가물가물하다. 도미넌트의 쓰임 따위를 잊어가고 있다. 더 이상 작곡을 취미라 부를 수 없는 나날들만이 남았다. 가끔씩은 몸이 무겁다고 느낀다. 가만히 중력을 가늠한다. 무엇도 할 수 없고 될 수 없는 날들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취미를 잃어가는 것일까. 나를 먹여 살리는 팔 할은 꿈과 희망의 나라에서 온 것들이었는데.


글을 쓰다 말고 달력을 한 장 넘겼다. 1일이 돌아왔다. 10월이 되면 엄마는 수술을 받는다. 한평생 품고 살았던 자궁 전체가 사라진다. 그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잃는 것만 생겼다. 월말이 되면 엄마는 자궁을 잃을 것이고 내년이 되면 아빠는 직장을 잃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서 생겨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되어가는 것이 없는 하루하루가 모이면 무엇이 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믿어야 했다.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대도 언젠가는 반드시 달라질 것이라고. 무릇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희망이었다. 어른이 되었으니 이젠 믿을 수 없는 것들도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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