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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 Sep 26. 2022

함께였다가 사라진 모든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공동구역의 사람들

버스를 타면 습관처럼  앞자리에 앉는다. 어제는 나의 연인과 함께였다. 햇살이 들어오는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강남으로 나가는 버스에 탔다.  앞자리는 버스의 명당 같은 곳이다. 커다란  유리로 전경을  수도 있고 탑승하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있다. 나는  가지를  좋아한다. 설핏 잠에  연인을 옆에 두고 탑승하는 이들과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감상했다.   


거치는 정거장마다 사람들이 올라탔다. 나의 무지가 존재하는 수많은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저마다 각자 다른 목적지를 가지고 왔겠지. 그들은 어디로 가기 위해 나와 같은 버스에 올라탄 건지가 궁금했다. 누군가는 꽃다발을 품 안 가득 가지고 탔고 누군가는 케이크와 샴페인으로 보이는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탔다. 흩어지는 나의 생각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 듯 버스는 끊임없이 달렸다. 승차와 하차가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이런 곳에서는 왜 내리는 걸까 싶은 정거장에서도 사람들은 하차했다. 사방이 도로뿐인 곳에서 하차한 누군가는 점이 되어 멀어졌다. 어느덧 꽃다발을 안고 탔던 이도 하차하고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탔던 이도 하차했다. 정거장에서 또 다른 정거장으로 삶이 이동했다. 사람들은 그저 움직였고 비어있는 서사를 채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순간 내가 어떠한 연극의 관람객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언제나 상상력을 동반하는 일이었으니까.


버스는 정거장마다 사람들을 태우며 제 몫을 충실히 다하고 있었다. 삶들은 좌석마다 다닥다닥 모여 앉았지만 그 어떤 삶도 다른 삶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옆에 놓여있었을 뿐. 견고한 무관심의 기류가 버스 안을 지배했다. 나는 달려오는 버스를 서성이며 기다리는 정거장의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제각각의 모양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정거장을 안내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버스의 정적을 갈라놓았다. 나는 승차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정거장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러한 일들을  시간쯤 반복하고 나자 강남역에 도착했다. 이제 드디어 나도 하차를 하게  것이다. 강남역에서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하차한다. 그 틈에 끼여 정신없이 정거장에 발을 디뎠다. 함께 하차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이들의 틈에 섞여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나는 연인의 손을 부여잡았다. 찰나가 아닌, 지속되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버스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공동구역일 뿐이고 우리는 그곳을 통과해온 거라고 망상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했다. 공동구역의 사람들은 목적지까지 다들  도착했을까. 짧은 순간 함께였다가 사라진 모든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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