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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주의자 Sep 25. 2024

팔월 정리

한국의 여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팔월의 한국은 더웠다.


뉴질랜드의 겨울이 지긋지긋하던 차에 어떠한 더위도 견뎌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엄청 덥지?”라는 가족들의 질문에 “별로 안 덥네"라고 강한 척을 해 놓았다. 하지만 내 몸은 진실됐다. 첫 며칠은 몸이 적응을 못했는지 모든 땀구멍에서 땀이 흘러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디 아픈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마셨던 서울집시의 ‘코 끝에 여름’ 라거는 한없이 청량했고, 산초의 알싸한 향이 아직도 기억난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보안검색대를 지나, 지정된 작은 공간에 앉아서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기 시작했다. 첫 장에는 여행자체보다 여행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더 설레고 좋다는 글이 있는데, 항상 2-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도 불안한 나에게 동감을 살 수 있는 글이었다. 물론 여행자체보다 그 과정이 좋다는 글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주는 묘한 감정, 경직된 분위기, 300여 명의 사람을 언어도, 문화도, 기후도 전혀 다른 공간으로 실어 나른다는 모든 게 생각해 볼수록 이상하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시드니를 경유해서 갔는데,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시간이 촉박해 진땀을 뺐다. 당시에는 허둥지둥 대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어쩌면 이런 낯섦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팔월동안 이것저것 적어놓았던 수첩을 들여다보니 어른다운 고민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한국이 낯설어지는 풍경, 내가 생각하던 여름의 모습, 이런 건 뉴질랜드에도 도입해야 해 생각이 들던 것들, 또 그러지 못한 것들까지 느끼는 점이 많았다. 잠시나마 내가 느꼈던 점을 누나에게 공유하였더니 외국인 코스프레한다고 한소리를 하였다. 내 생각에도 그렇다.


여러모로 팔월은 후딱 지나간 것 같다. 겨울에서 여름을 오가며, 또 일과 일상에 치여서 이렇게 또 한 계절이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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