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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서 Dec 10. 2020

창작에 대한 짧은 생각

낱장 일기24

눈을 감고 공간을 떠올려본다. 예를 들어 카페라고 해보자.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기존에 자주 갔던 카페들이 먼저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이번엔 카페의 주인이 되어 당신만의 상상 속 카페를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그 공간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겠는가?

공간을 떠올리고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어렵지 않게 이 일을 해냈다고 말한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카페는 1층인가? 2층인가? 입구는 어떻게 생겼는가? 미닫이 문인가? 아니면, 유리문? 혹은 그냥 나무인가? 그리고 입구 바로 앞에는 무엇을 놓을 생각인가? 테이블? 원목인가? 쇠인가? 그렇다면 의자는? 어떤 색깔로?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무엇이 놓아져 있을 것인가? 벽에 액자가 걸려 있다면 어떤 크기, 형태, 색, 내용을 가진 액자인가? 이 모든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가?

글을 쓰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실외일 수도 있고, 실내일 수도 있다.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익숙한 공간이라 하더라도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과 그 공간을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난이도의 이야기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이미지만을 기억할 뿐, 구석구석의 자세한 부분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익숙한 공간이 그럴진대 하물며 상상 속 공간을 묘사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실제로 가상의 공간을 창작하여 나타내는 것은 단순히 창의력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경험과 관련된 문제라고 보는 게 옳다.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창작물 속에서의 카페도 단 몇 줄에 끝나버리는 아주 빈약한 공간이 되어버린다. 이 경우 카페라는 단어 외에는 어떤 이미지도 제공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형태로 남아버릴 공산이 크다. 제 아무리 상상을 해본다 하여도 쉽지 않다. 카페에 대한 축적된 경험이 없다면, 입구에 붙은 독립영화 포스터, 벽에 걸린 네모난 액자와 그 밑 네모난 짙은 갈색 테이블에 세워져 있는 책과 잡지, 카페 창가에 늘어선 다육 식물이 담긴 작은 검은색 화분들, 턴테이블 위의 호리병 모양의 유리병과 거기에 꽂힌 마른 꽃 세 송이는 결코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런 화상은 하나가 아닌 다양한 기억에서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창작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많은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문체 및 표현들을 따라 하다 독창성을 잃고 표절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지극히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하다. 타인의 저작에 빠져 자신만의 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아직 책을 덜 읽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창작에서의 묘사는 수많은 경험의 축적을 필요로 한다. 보고 읽은 것이 적다면, 그만큼 적은 데이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머릿속 이미지가 충분하다면, 그 다양한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하여 나름의 유일한 배열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렇게 짜여진 이미지는 다른 누구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독창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창작에 있어서 엉덩이를 붙이고 일어나지 않는 인내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말이 골방에 박혀 글만 쓰고, 바깥세상을 바라보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써야 할 순간에는 지독할 정도로 그 세계에 빠져들어야겠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해봐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창작은 꽃피우지 못하고 썩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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