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내가 7살인 시절.
한 친구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일을 일기장에 적었다.
‘오늘 덕용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 아프다고 했다. 덕용이가 걱정됐다. 이게 좋아하는 건가보다.’
조숙했던 건지 뭔지, 7살의 나는 걱정하고 신경쓰이는 마음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해석했다. 나의 유구한 짝사랑 역사의 시작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이성을 좋아하는 애였다. 짝사랑은 내가 누리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중에 하나였다. 누군가를 몰래 좋아하고 그 감정을 들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분출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 재밌었다. 매 학년마다 늘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일기를 꾸준히 썼었는데 일기장에는 늘 좋아하는 남학생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초등학교 4학년, 태권도 학원에 다녔을 때는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 애가 발차기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그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5학년, 곰을 닮은 순한 같은 반 남자애를 좋아했다. 해리포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에 혼자 꽂혀 시작된 짝사랑이었다. 친한 친구들 한테만 그 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6학년이 되고 그 애랑 다른 반이 됐는데, 친구 중 그 애와 같은 반인 친구에게 스파이(?)짓을 시켰다. 걔가 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그 친구에게 묻곤 했다. 어느날 그 친구의 배경화면 문구가 ‘(내 이름)아 미안해’라는 걸 발견했다. 친구의 핸드폰에는 내가 짝사랑하는 애에게 전해달라고 했던 곰돌이 핸드폰 고리까지 달려잇었다! 너무 수상해서 왜 저런 배경화면을 했는지 물어봤는데, 자기도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을 했다. 정말 충격이었다. 돌이켜보면 굉장한 흑역사다. 해튼 이러쿵 저러쿵 다양한 짝사랑의 역사가 대학교 1학년때까지 있었다.
웃기게도 나는 한번도 나의 짝사랑을 상대에게 말해본 적 없다. 용기도 없고 고백했다가 쪽팔리는 것도 싫었다. 더 큰 이유는 짝사랑 상대와 사귀고 싶다는 욕망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그 친구를 혼자 몰래 좋아하는 것 자체가 내겐 행복이자 재미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그 친구들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고자 했던 나만의 놀이였던 걸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지금은 나에게 재미를 준 많은 짝사랑 상대에게 감사를 전한다. 뭐 내가 당신을 좋아했던 사실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지금까지 연애를 안 한 거냐고? 내가 호감이 있는 상대인데, 상대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경우가 내가 했던 연애의 양상이었다. (엥 너무 당연한 말인가?) 상대방의 호감이 확실하면 나도 조심스레 내 감정을 표현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썸을 타는 기간이 지나면) 상대방의 고백을 받아드리는 형태로 그동안의 연애가 진행됐다.
웃기게도 짝사랑 러버가 짝사랑을 한지 5년이 넘었다. 더이상 짝사랑이 재미없어진 건 아니다. 5년이 넘게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로 짝사랑을 즐기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연애를 했냐고? 그건 내 평생의 미스테리이자 내 소중한 글감 보따리다. 언젠간 글 소재가 떨어지면 내 연애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