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Sep 09. 2020

[탈모일지] 1. 27살, 머리에 땜방이 생겼다

내가 탈모라니...! 탈모라니..!!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기로 마음을 먹은 아침이었다. 강제 일찍 기상을 위해 조조영화를 예매해뒀다. 빠듯하게 일어난 탓에 머리까지는 못감았다. 머리를 모아 하나로 묶는데, 이상하게 오른쪽 머리 부분이 훤하게 비어보였다. 빗 말고 손으로 빗어서 그런가? 다시 머리를 풀었다. 그리고 오른쪽 머리카락을 들쳐내봤다. 세상에? 살이 생각 이상으로 드러났다. 왼쪽 머리를 비교해봤다. 아... 달랐다. 왼쪽은 빽빽했다. 평소 머리숱 많기로 소문난 나인데. 내가 헛것을 보는 건가 싶어서 당장 거실로 달려갔다. 아빠-남동생-여동생 순서대로 내 머리를 들이댔다. 답은 똑같았다. "어.. 머리 비었는데?"


탈모라니... 내가 탈모라니!!!



꿈인가 생신가 실감나지 않은채로 일단 영화를 보러갔다왔다. 다시 집에 돌아와 빈 머리 부분을 사진 찍었다. 엄마와 친구들에게도 전송했다. 다들 빈 것 같다는 답을 했다. 엄마는 카톡으로 '할머니인 줄 알았어!'라고 답을 했다(외할머니는 노화로 인한 탈모가 조금 있으시다). 아니 도대체 언제 이렇게 머리가 빈거지? 이 상황이 심각하기보다는 너무 웃겼다. 나에게 탈모가 오다니? 상상해본적도 없었다. 집안 대대로 탈모 유전자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외삼촌 등등 아무도 대머리가 없었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나는 나의 땜빵(아직 정확히 탈몬지 아닌지는 모르므로)을 유머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양파쿵야의 인성>이라는 제목으로 본 사진인데, 주먹밥쿵야의 뜯겨버린 머리가 내 땜빵 부분과 일치했다. 그래서 프사를 머리를 뜯긴 주먹밥쿵야로 바꿨다. 저 장면은 양파쿵야가 김치가 짜다는 이유로 주먹밥쿵야의 머리를 뜯어먹는 장면이다. 아주 양파쿵야의 인성이 고약하다. 하여튼, 땜빵을 발견한 하루는 저 사진들을 친구들에게 전송하며 깔깔깔 웃어 넘겼다. (나.. 생각보다 긍정적인 편인가바..)


우리 주먹밥쿵야의 눈망울 좀 보세요ㅜㅜ

이튿날인 일요일. 땜빵 부분을 한번 더 보니 범위가 생각보다 컸다. 갑자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탈모를 겪었던 지인에게 카톡을 했다. 땜빵이 난 부위도 찍어서 보냈다. 지인은 '10분뒤에 전화할테니 바로 받아라'라는 답을 남겼다. 어... 이거... 심각한건가? 갑자기 현실 파악이 됐다. 맛집으로 소문난 햄버거를 먹고 있었는데 햄버거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윽고 전화통화를 했다. 생각보다 부위가 크다는 것, 바로 병원에 갈 것, 유제품, 밀가루, 술을 섭취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제때 일어나서 제때 자는 것도.. 반드시 11시에서 12시에 잘 것을 당부받았다. 마지막 쐐기 멘트도 있었다. "지금 먹고 있는 햄버거가 땜빵이 꽉 채워질때까지 마지막 햄버거일 거예요. 맛있게 먹어요^^" 후덜덜... 그니까, 땜빵이 채워지기 위해선 바른생활 어른이의 삶을 살아야했다. 바르게 사는 건 좋은데... 밀가루... 유제품은 어떻게 끊지? 라떼가 얼마나 고소한데! 면이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바로 홈플러스에서 납작당면, 도로시당면, 중국당면 3개를 12000원치 구입했다^^ 사람이 먹고는 살아야죠~


다음날인 월요일. 엄마손을 꼭 잡고 지인이 추천해준 병원으로 향했다. 추천받은 병원은 탈모치료로 굉장히 유명한데, 그만큼 치료비가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다른 곳을 찾아볼까도 했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그렇다할 탈모 병원이 없었다.. 이게 수도권과 서울의 차이일까? 흡... 1시간을 달려 강남 어느 도처에 있는 탈모 전문 병원. 점심시간 30분전에 세이브해서 도착했는데, 예약을 안했으면 진료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아니 저기.. 저 차타고 한시간 달려왔는데요ㅠㅠ 역시 탈모의 명가인가? 그렇게 인기가 많나? 병원의 한 쪽 병원에는 명성을 자랑하듯 수많은 연예인과 스포츠스타의 싸인과 사진이 붙어있었다. 다행이 진료가 된다는 간호사님 말에 머리 사진을 찍었다. 괜히 엄청 긴장됨 ㅠㅠ,ㅜ,


그리고 바로 원장님을 알현했다.. 원장님은 머리가 많이 빠졌냐, 머리가 간지럽냐, 몇시에 자냐, 아토피 있냐 뭐 그런 자질 구레한 기초 질문들을 던지셨다. 그런다음 내 머리를 샅샅이 뒤지셨다. 혹여 땜빵이 한개가 아니라 더 있으면 어떡하지 싶어 너무 긴장했다. 그리고 자를 이용해 내 땜빵의 크기를 쟀다. 크기는 무려 4cm. 작지 않은 크기라고 했다. 심장이 철렁했다. 그 다음 머리 이곳 저곳을 당기기 시작했다. 머리가 얼마나 빠지는 지를 보는 것 같았다. 제발 내 모공들아 힘죠!!!!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머리 잡기를 마치신 원장님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고민을 하셨다. 어휴 그 순간 너무 긴장했다. 뭐때문에 고민을 하는건지를 나로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원장님은 아직 판단이 안 선다며 2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다행이 땜빵 부위에 머리카락들이 별로 안빠진 모양이었다. (기특한 내 모공들 ㅠ) 2주 뒤 다시 땜빵크기를 판단한 다음 검사나 치료를 할지 결정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로 끝냈다. 아마 점심시간이 곧 찾아와서 별 당부나 안내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멋쟁이 원장님네 병원은 진료비도 받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병원을 나서자마자 그래도 다행이다!를 외쳤다. 2주동안 특별 관리를 통해 땜빵을 울창한 브라질의 밀림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했다.


지금 내 생활에 변화를 준 건 일단 식습관이다. 밀가루, 유제품, 술을 끊었다. 면이 너무 먹고 싶을 땐 당면을 먹고 커피는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밀가루도 밀가루지만 유제품을 먹지 못하는 게 너무 괴롭다. 달달한 간식들을 좋아하는 탓에 밀가루가 들지 않는 디저트를 검색도 해봤는데 가격이 너무 비쌌다. 알러지를 이유로 밀가루나 유제품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식단에 얼마나 큰 제한을 받았을까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운동도 시작했다. 아니 시작은 어제 하루 그리고 오늘 아침에 한번,,했으니 아직 한지 얼마 안됐다. 그래도 오전에 동네 조깅과 저녁에 홈트를 하기로 했다. 잠도 최대한 12시 이전에 자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제는 새벽 3시에 잔 건 안 비밀;) 일단 몰라서 샴푸를 탈모방지 샴푸로 하나 사왔다. 쌀과자도 한아름 샀다.


왜 내게 땜빵이 생겼는지는 잘 모른다. 뭐... 이유야... 스트레스가 가장 유력할 거 같긴 하다. 일단 유전은 없으니까. 요즘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땜빵이 생긴 거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보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 스트레스에 대한 합리화를 하고 있었나보다. 이번 땜빵을 계기로 전화위복해서 더 건강한 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괜찮다'라는 주문을 걸기 보다, 정말 괜찮은 몸과 정신을 가진 나를 만들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