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대환장 기안장
“기안스럽다”는 건, 조금은 어설프고, 때로는 불편할 만큼 솔직하며, 남의 시선을 크게 개의치 않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대환장 기안장〉은 바로 이 ‘기안스러움’이 낳은 집 한 채이자, 작은 세상 같았다. 울릉도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지선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투박함 속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진솔함과 고집, 그리고 삶을 대하는 방식과 마주할 수 있었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았다. 숙소에 들어가려면 2층 높이의 암벽을 기어올라야 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부엌은 봉을 타고 내려가야만 사용할 수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다시 봉을 붙잡아야 했다. 누구나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이상하게도 해방감을 주었다. “오늘은 손으로 먹자.”라는 기안84의 말에 당황하던 동료들은, 어느새 손으로 콩국수를 떠먹으며 “콩국수엔 소금? 설탕?“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숙소 규칙들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깨뜨리며 우리를 새로운 감각으로 이끌었다.
민박집의 풍경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피트니스트’라 이름 붙인 운동 공간, ‘다라이’에 물을 받아 즐기는 목욕탕, 얼굴을 가까이 대고 차를 마셔야 하는 티타임 존까지. 밥도 수상했다. 조식은 저녁을 든든히 먹는 것으로 대체했고, 장보기 대신 3분 카레로 한 끼를 해결했다. 사장인 기안84는 식용유조차 “두 개, 아니 하나만” 사 와 달라고 손님에게 부탁했다. 손님들은 처음에는 “민박집, 망할 것 같아요.”라고 웃었지만, 점차 이 낯선 공간에 매료되어 갔다.
대환장의 중심을 잡아준 건 함께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진은 장보기부터 손님 응대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든든한 해결사가 되었고, 아이의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따뜻한 삼촌의 면모를 드러냈다. 특유의 아재 개그는 힘든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게 했다. 지예은은 봉을 오르내리다 자꾸 실패하며 허당미를 뽐냈지만, 선박 면허까지 취득해 손님들을 직접 바다로 안내하는 선장으로 제 몫을 단단히 했다. 처음엔 불안해하던 손님들도 곧 그녀가 모는 보트에 달린 바나나보트 위에서 스릴을 즐기며 환호성을 질렀다. 두 사람은 기안84의 기묘한 세계에 당황하면서도, 결국 그 안에서 균형을 맞추는 동료가 되었다.
이 불편한 민박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는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빨래를 다라이에 담아 손으로 헹구고, 비좁은 공간에서 밥을 나누며, 서로의 땀 냄새와 웃음을 공유하는 동안 손님과 직원, 사장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처음에는 민박 규칙을 의심하고 불평하던 이들이, 어느새 다른 손님에게 “미끄럼틀은 사용 금지예요, 야외 취침은 원칙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 변화를 잘 보여준다. 불편함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심이 오가고, 관계가 단단해졌다.
밤이 되면, 벽에 매단 매트 위에 누워 별빛을 바라보며 잠들었다. 누구나 상상은 하지만 정작 선택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떠올리면 그 고생이 곧 낭만이 되었다. 진 역시 바다 앞에서 조용히 마음을 풀어놓았다. “콘서트의 환호 속에 있다가 집에 가면 환호 소리는 사라지는데, 귀에서는 이명이 계속 들린다.” 늘 야무지고 완벽해 보이던 그도, 바다 앞에서는 하나의 청춘으로 돌아가 있었다.
기안84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주고, 떠날 때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곤충 채집에 진심인 대학생도, 목수로 살아가는 청년도, 취업을 준비하는 네 명의 청년도, 아이들과 아버지도, 모두 이 바지선 위에서 잠시 머물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언제든 쉼이 필요하다면 기안장은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다.
〈대환장 기안장〉은 우리에게 말한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불편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지금, 함께,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단순한 진실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지내던 낭만이었고, 그 낭만이 다시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