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몸을 먼저 움직이는 하루
베트남에서 돌아온 뒤, 가장 큰 목표는 체력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자마자 부딪힌 건 몸의 한계보다 마음의 의심이었다.
이번엔 며칠이나 갈까?
또 흐지부지 끝나는 거 아닐까?
나는 예전에도 몇 번이나 결심했다가 스스로에게 실망했으니까. 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이번엔 조금 다르게 해 보자고 마음먹고, 머리보다 몸을 먼저 믿어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다가도 계단으로 향하고,
습관처럼 침대에 눕다 ‘아차’ 하는 순간 바로 일어났다.
아닌데 하는 순간 몸을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생각이 없으니.
한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며칠을 고민하거나 검색창만 들여다봤을 거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게 주저하지 않았다. 당근마켓에서 매물을 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시승 약속을 잡았다. 결국 두 번째로 본 자전거가 타기 적당해서 바로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공원과 아파트 단지를 한 시간 가까이 돌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따지고, 건널목 개수를 세며 망설였을 텐데, 결심을 머리로 굴리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니 편했다. 무거워지지 않았고, 가볍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생각을 하면 결국 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리기 쉽다는 것을.
오늘로 자전거 산지 4일 차가 됐다.
매일 집 앞 공원과 아파트 단지를 달린다.
가고 서고, 좌우로 도는 것까지 제법 익숙해졌다.
근데 왜 어쩔 땐 잘 되고 어쩔 땐 또 안 될까?
생각하지 말자, 될 때까지 하고 보는 걸로 정리.
오늘은 오른쪽 유턴 연습이 되게 만들었으니,
내일은 왼쪽 유턴 연습을 마저 하면 된다.
요즘 매일 나를 믿지 못하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 왜냐하면 싸움이 되질 않으니까. 불안한 마음이 올라올 때, 이에 집중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넘어간다. 아침 7시 16분에 눈을 떠 7시 30분에 공원으로 나섰다. 1시간 걷고 돌아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일을 했다. 잠시 쉬며 요가 영상을 틀어 굳은 몸을 풀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니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일을 하다 창밖 햇살을 보고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물론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오늘도 자전거를 탈까 말까 망설였다. 주말엔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내 사람도 많고, 괜히 부딪힐까 싶어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이때 생각을 멈추고, 이렇게 마음먹었다.
그래, 오늘은 10분만 타자.
못 타겠으면 들어오지 뭐.
거창한 결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10분이 아니라 1시간을 타고 왔다. 잠깐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움직였고, 그것보다 많은 시간을 즐기고 돌아왔다. 나는 내가 언제쯤 체력이 좋아지고, 자전거를 잘 타게 되고 하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몸을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쌓이는 시간이 언젠가 나를 바꿀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잠깐 나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