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는 지난 십여 년간 뜨겁고도 차가운 화두였다. 가물가물해지는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 미술계에서 아카이브 혹은 아카이빙이라는 용어가 그렇게까지 비중 있게 쓰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각각의 방식으로 물리적 기록물을 보관하고 디지털본을 남기려는 시도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복합적 함의를 지닌 미술적 실천 방식으로 이해된다거나 생산적 담론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아카이브에 대해 우려 섞인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2012년이다. 당시 비엔날레 전시팀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미술관의 상사로부터 받은 지령 중 하나는 일 년 동안 유관 기관 및 작가들과 주고받은 모든 이메일을 프린트하여 서류철로 남기라는 것이었다. 아마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장이 아니라 하루에 백여 통씩 꼬리에 꼬리를 물며 주고받는 이메일을 빠짐없이 프린트해 놓은 것이 어떤 기록적 가치가 있는지, 일 년간의 계약이 끝나고 나면 굳게 닫히고 말 이메일 주소를 바라보면서 여러 상념이 들었다. 당시 지하 창고에 가면 적어도 십 년 이상 무명의 코디네이터들이 남기고 간 수십 개의 이메일 상자가 종횡으로 적재되어 있었는데, 자료가 한곳에 모여 있다는 최소한의 알리바이를 제거한다면 기실 그것은 아무도 읽지 않을 순전한 종이 더미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문헌학이나 기록학을 전공한 이가 아니더라도 그들 중 아니 우리 중 누군가는 행사 성격의 주요한 변화 지점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핵심 정보의 틀을 짜고 기록을 기획했어야 했다. 조금은 찜찜한 마음으로 퇴사할 무렵에서야 다들 어떻게 자료를 선별하여 남기고 삭제하는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자료의 공백쯤은 그다지 시급한 문제가 아니던 무심한 시간을 지나 공공 기관을 중심으로 아카이브 구축은 이제 필수적인 의제가 되었다. 많은 곳에서 늦게나마 기관의 백서를 발간하고, 원로 작가의 연보를 재정리하며, 소실된 자료를 재건하고, 이를 기반으로 통계적 접근과 질적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단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개인 작가도 작업을 구상하고 전시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아카이브를 일종의 창작 방법론이자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전시 기획자도 리서치 기반 작업을 하는 창작자와 협업하며 아카이브 중심의 큐레이팅을 고민해왔고, 수집 조사 과정과 이후의 통계적 분석까지 전시의 본령이 되도록 다양한 방법론을 일구어 왔다.
늦깎이 기획자로 미술계에 들어와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도 조사 연구 기반의 예술적 연구 방법론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카이브’에 친연성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큐레이터로서 첫 선을 보였던 <2의 공화국>(2013, 아르코미술관)은 조사 연구 기반의 기획 전시로, 작가들의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다시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재맥락화한 사례였다. 이후에 기획한 일련의 전시 <리서치,리:리서치(research,re:research)>(2016, 탈영역 우정국)나 <베틀, 배틀>(2018, 토탈 미술관), <화이트랩소디>(2020, 우란문화재단)가 모두 아카이브 일부를 전시의 구성물에 포함하거나 작가들과의 협업 과정 및 조사 연구 내용을 아카이빙하여 출판으로 선보인 케이스다.
자연스럽게 외부 기관에서 의뢰받은 전시의 유형 또한 과학적 데이터를 다룬다거나 민속지학적 유물과 자료를 원본에 가깝게 가공 연출하는 박물관식 연출을 참고하게 되었다. 10년 전을 돌이켜보면 다학제적 조사 연구 방식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리서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작가와 기획자의 입지가 크게 확장된 시기였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아키비스트가 되어 기록과 분류를 위한 인덱스를 개발하고 유사 인류학자가 되어 현장 연구의 과정을 성실히 기록하며 때로는 고고학자가 되어 문헌을 해독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카이빙 열병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 것 같다. 기관 차원의 아카이브 구축은 정책과 제도 안으로 편입되어 예전과 비교한다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한 수준 높은 작품 프로덕션과 전시 기획은 어느새 그 열풍이 식은 느낌이다. 읽어야 할 것이 많은 전시에 대한 관객의 피로도와 아카이브형 작업이 엇비슷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소모된 것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상을 잠식하는 동안 예쁘고 힙한 것에 대한 열망이나 허구적 세계관의 건설은 새로운 기획의 원천이 되었고, 뚜렷한 지성보다는 모호한 감각에 맞닿은 것들이 오히려 환대받는 것 같기도 했다. 전시의 인터페이스가 시각 이미지와 활자 중심에서 신체적 장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비물질적인 정보가 확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전시의 스펙터클이 연기처럼 나타났다 허물어지고, 평평한 활자와 이미지는 큐알코드로 흡수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정점에서 선보였던 큐레이토리얼(curatorial) 페스티벌 <기획전>(2020, 문화비축기지)의 경우 134명의 기획자가 상상한 각각의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낱장의 포스터와 매니페스토로만 중계할 뿐, 물리적으로 실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전시 제목과 개요와 같은 기획적 자산을 영구적으로 디지털 아카이빙하기에 훨씬 용이한, 기묘한 역설을 보여준다.
<기획전> 전시 전경 ⓒ조주리
기획자의 후일담이지만, 긴 시간의 통로를 빠져 나온 자리에서 생각해 보니 ‘아카이브’는 언제나 혼란한 용어이자 차라리 속 편하게 오인하고 싶었던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싶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아카이빙은 유관 정보의 수집과 시계열적 기록, 사후적 분류를 넘어 하나의 사건을 기획하는 가장 첫 단계에서부터 무엇을 자료로 규정할지에 대해서 재정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남길지에 대한 적확한 방법론을 기획하며, 아카이브의 과정과 결과물을 전시의 일부분으로 개입시키는 것이 유효한지에 대한 혹독한 자기 점검을 요구한다. 자료와 자료가 서로를 지시하고 연결하며 통합되는 알고리즘과 하이퍼링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영 단순한 자료의 나열이나 전시를 장식하는 연출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연구의 정합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기관의 요구에 따라 지식 창출형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급하게 수집한 자료를 활용하여 ‘디자인’을 잔뜩 얹은 아카이브 제작 열풍에 나 또한 가담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것이 차선이었음을 변명하고 싶지만 현대미술의 한가운데서도, 실험적인 전시회에서도 출몰하는 유사 아카이빙 혹은 무늬만 아카이빙을 대면할 때면 어딘지 민망해진다. 그렇기에, 정말로 잘 기획되고 실행된 아카이브를 보게 되거나, 아카이브를 최적의 방법론으로 삼아 도출된 예술 작업과 아카이브 전시를 만나게 되면 절로 추앙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아카이브의 과정과 결과물이 마지막 과정에서 밀려나고 지워진다 해도 그 토대 위해서 잘 피어난 전시와 작업은 태가 난다.
아카이빙은 무명의 개인이 공공에 바라는 몫이기도 하지만 결국 각자가 해내야 할 몫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아카이빙은 전시기획의 출발과 제작의 기록 그리고 사후적 해석과 또 다른 기획으로 이어지는 일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물리적 기록은 애면글면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모든 전시의 도록을 처음엔 오십 권씩 남겨 책장에 전시하듯 도열했다. 그러다 다시 스무 권, 열 권으로 줄였다. 주거 환경이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개선되지 않은 한 도록 더미를 모시고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전시와 관련된 모든 문서, 곧 계약서, 제작의뢰서, 세금계산서, 보도자료가 난 신문 원본과 브로슈어 등을 철하여 간직했다. 이 역시 무한정 지속가능한 일은 아니기에 그 이후부터는 구글 드라이브상에 가능한 한 전시별 문건을 세분화하여 저장해 두고, 별도로 외장 하드도 두 벌을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방대한 저장고는 메일함이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총 12년에 걸쳐 주고받은 전시 관련 업무 이메일을 보관하고 있다. 방만하게 흩어져 있던 이메일 주소를 하나로 통합하여 필요할 때마다 검색하여 당시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장치다. 개인용 컴퓨터 안에는 기관 측과 작가들이 제공한 작품 포트폴리오와 스스로 수집한 자료를 축적해 오고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파기하기도 하지만 3천 개 이상의 포트폴리오를 모아 두고 초기작이나 작가 노트 등을 꺼내 보기도 한다. 지난 몇 해 동안은 여러 매체와 기관에 기고한 글 중 백여 편을 추려 웹상에 업로드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와 함께 가능하면 전시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전시 도록을 갖지 못한 다수의 관람객이 언제든 접근할 수 있도록 작품에 대한 상세 정보와 기획의도를 남겨 두려고 하는 편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전시기획을 하나의 창작 자산으로 여기는 다수의 기획자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이기에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꾸준함이 필요한 일일 뿐. 작가들이 중견 이상의 이력을 넘어서면 그간의 작업을 모아 모노그래프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3를 제작하는 것처럼 기획자도 가끔은 자신의 궤적을 차분히 정리 정돈하고, 메타적인 시각으로 하나의 전시에서 다음 전시로 이어지는 흐름을 조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획자의 연구 과정과 큐레이토리얼의 실체를 장기적으로 조사 연구하는 아카이빙 분야도 세분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유의미한 실무 교본이자 불필요한 과오를 줄이는 길잡이이자 공동의 지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아카이빙을 대하는 기획자의 관심사는 오롯이 자신의 예술적 연구와 전시기획, 작품 프로덕션을 구현하기 위한 연구 과정의 기록이거나 그것이 전시의 요소로서 내재화될 것이지 드러날 것인지에 대한 기획적 판단의 문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투적으로 반복되거나 최악의 경우 후퇴하지 않을 큐레이토리얼을 위한 풍부한 라이브러리 구축에 방점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아카이빙은 무엇인가. 이메일함 정리는 가장 간단한 시작점일 것이다. 12년째 쉼없이 자료를 송신하고, 무엇인가를 수신하는 편지함 내부에 다음 정거장으로 가기 위한 결정적 팩트와 매서운 진실이 우글대고 있을지 모른다.
아르코웹진 A SQUARE 2024년 9월호 게재
- 미술 전시 기획자의 아카이브 지속가능한 아카이브의 실현을 위해
* 원문 출처:
https://www.arko.or.kr/asquare/webzine.cs?webzineId=vol12&webzineNm=flow_128&wwrId=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