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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라 Nov 11. 2019

큰일 났다. 며느리가 되었다.  2

사막여우 같은 며느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고슴도치로 자라 새끼 캥거루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나는 사실 결혼 전 거대한 상상을 했었다. 평생 내향적인 성격을 외향적인 성격으로 둔갑시키길 강요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인지 그 상상 또한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한 번도 애교 있는 아이였던 적이 없다. 늘 겁이 나 있었고, 걱정이 많았고, 눈치를 보았고, 그런 것들이 나를 비관적이고 극단적인 성격의 어른으로 키워냈다. 그러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그 모든 것을 깨고 나 스스로 행복과 심적 평화를 찾고, 만들고,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할 자격이 있다는 고집스러운 확신이 서른에 가까워서야 생겼던 것이다. 




 새끼 캥거루와 결혼하기 전 나는 습관적으로 또 걱정 주머니를 여러 개 만들고 있었다. 주변에 먼저 결혼을 해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몇 년에 걸쳐 들은 이야기들도 많았고, 티브이와 인터넷 책에서 보고 들은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1. 집안과 나의 경제적 능력 2. 애교가 있거나 발랄하지 못한 성격 3. 거짓말을 하거나, 부당한 것을 참고 속으로 삼키는 인내심과 융통성의 결여 4. 평생 집착하며 품에 끼고 산 새끼 캥거루와 똑같은 행동을 하기를 바라진 않을까- 이런 것들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사랑받으며 복작복작 가족들과 부대끼며 살지 못해서 캥거루 가족에게 어떻게 스며들어야 할지 상상이 안 됐었고, 티브이의 며느리처럼 밝고 명랑하고 애교 있게 하면 평화롭고 따뜻한 가족이 될 거라는 결론이 지어졌지만, 머리로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평생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았다. 연기는 결국엔 끝나기 마련이니까. 




 걱정은 머릿속에서 수 천 바퀴 맴돌다 결혼식을 맞아버렸고, 나의 걱정과 예상은 결혼식과 동시에 하나씩 현실화되었다. 새끼 캥거루는 그간의 대화로 인해 독립적인 캥거루가 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엄마 캥거루는 아니었다. 결혼식 날에도 아빠 캥거루가 아닌 아들 캥거루에 딱 붙어 있었고, 며느리를 맞이하는 자리라는 느낌보다 예쁜 내 새끼의 날이라는 생각에 감동하는 모습이었고, 새끼 캥거루의 액세서리 정도로 나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느낀 이유 중 하나는 결혼식이 끝나고 신부 단독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진작가님 앞에서 내 팔목을 낚아채 끌고 가셨다. "며늘아 사진 그만 찍고 가서 인사해라."라고 하시며. 나는 끌리는 드레스와 높은 구두에 넘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으로 끌려다니다가 너무 힘들어 인사할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오겠다고 했는데, 그 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빨리 다녀오라며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까지 구겨진 표정으로 지켜보셨다. 나중에 사진작가님이 스냅사진 셀렉을 위해 2000장에 원본을 보내주셨는데 그 안에 엄마와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또 내 팔목을 낚아채 끌고 가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나와 내 부모를 당연한 듯 무시하는 것 같아서 괴로워졌다. 

 

 나는 그날 결혼식 전에 했던 수많은 걱정과 시댁에 잘하고 싶어 오버해서 머리를 굴렸던 시뮬레이션들을 다 부수어버렸다. 캥거루 가족에게 며느리란 예뻐 죽겠는 아들이 늦게 성취한 업적 중 하나로 느끼는 것 같았다. 본인의 딸이라면 산중에 있는 결혼식장에서 드레스와 구두를 신고 힘들게 서있는 신부를, 그것도 부모님과 얘기 중일 때 예식장 밖 저 내리막 아래 있는 시내버스주차장 매점까지 끌고 가서 본인의 지인들에게 인사시키진 못했을 것이다. 나의 자기 방어는 이때부터 슬슬 깨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누군가의 누구로서의 삶이 1순위가 아니고, 나는 평생 함께 할 배우자가 생긴 한 사람일 뿐이다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새겼다. 많은 내 친구들이 힘들게 겪고 얘기했었던 결혼 초기에 누구에게나 생기는, 참거나 희생하거나 포기하는 일밖에 없는 착한며느리병에 나는 빠지지 않기로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길었던 여행이 끝났다. 우리는 휴양지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 일정이 국토대장정을 방불케 했다. 가는 시간만 이틀이 걸렸고, 오는 데도 26시간이 걸렸다. 매일 일정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까지 걸어 다녔기 때문에 돌아와서는 둘 다 뻗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친정에 가까운 공항에 내려 밤에 친정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을 마시듯 먹고 출발해 시댁에 저녁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우리의 신혼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그 날이 결혼식 이후 14일 차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둘 다 드디어 끝났다며 해방을 외쳤다. 결혼식도 신혼여행의 여정도 아주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내가 해방감을 느낀 마지막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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