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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라 Nov 13. 2019

마그네슘이 부족해서 라고 믿어볼까

유리멘탈의 기분



 얼마 전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보았다. 불안, 초조, 불면, 신경과민 등의 증상이 마그네슘을 복용하면 진정되는 효과가 있다는 글. 그때부터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칠 때마다 '마그네슘'이 네 글자가 떠올랐다. 우스운 말이지만 갑자기 조금 든든한 기분이었다. 



 타인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매사 똑똑하게 표현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서 행동하고, 싫은 것도 참을 줄 알며, 불안을 꾹꾹 눌러 삼켜버리고 이겨내는 사람들. 겉으론 무덤덤해 보이지만 그 속의 폭풍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정 반대의 인간이다. 감정에 쉽게 동요되고, 오락가락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은 이미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생각을 멈추고 능글맞은 사람처럼 행동하며 편하게 살고 싶지만, 그런 필요에 의한 과장된 거짓 행동을 원하는 세상이 나를 너무 괴롭게 한다. 나는 그냥 내 모습으로, 내 성격으로 살고 싶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예쁨 받는 가짜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융통성 없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책하다가, 오기가 생겨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며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 것이라며 위안하고 다짐하다가, 결국 지쳐서 스위치를 끄고 싶은 생각에 이른다. 착하려면 아주 바보 같이 착하고, 약아빠지려면 제대로 야무지게 약아빠지고, 못되려면 아무도 함부로 못하게 못됐어야 하는데 아주 이도 저도 아닌 멍청한 삶을 사는 게 바로 나다.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고집은 있어서 타인의 말에 쉽게 동요하진 않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내 감정에 잠식당하는 유리멘탈이라 내 감정에 빠져 죽기 전에 늘 어떤 것이든 붙잡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들이었다. 



 어릴 땐 무언가를 해서 무언가가 되고 싶어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잠시 감정의 폭풍이 잠잠했다. 너무 바쁘고 힘들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는 결국 어떤 것도 되지 못했고, 그냥 내가 되었다. 자존감과 자존심이 한없이 무너지는 20대를 지나면서 나는 이제는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고 귀여운 것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생각 없이 밤새 볼 수 있는 외국 드라마, 혼자 카페에서 쓰는 잡글들.. 이룰 수 없는 것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주고, 일상 속 공간을 귀여운 것들로 채웠다. 지금 혼자 지키고 있는 이 넓은 공간에도 여기저기 귀여운 것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버티게 해 준 것들은 무엇도 아닌 쓰잘데 없이 귀여운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이 점점 늙듯이, 마음도 점점 늙어서 깨끗하게 뚫려 공허하기만 했던 마음속 구멍이 점점 헐어가고, 귀여운 것들은 여전히 한 번씩 미소 짓게 만들지만 그 마저도 애처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이 그런 감정의 최고조여서 이제 더는 나를 지탱해줄 것들이 없는 건가 라고 생각했을 때 본 글이 바로 '마그네슘을 드세요'라는 글이었다. 정말 웃기게도 글의 힘이 뭔지, 희망이 뭔지, 심리가 뭔지 나는 덥석 그 글을 물었고 삼켰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어젯밤도 이도 저도 아니게 잔 듯 안 잔 듯 보냈지만, 일어나자마자 가장 처음 느낀 게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초조한 기분이었지만, 어쩐지 마그네슘을 먹으면 모든 게 진정되고 개운해질 것만 같다. 매일 나를 괴롭히는 오만 가지 감정과 쓸데없는 걱정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마그네슘이 부족해서일 거라고, 너무 별거 아니라고 믿고 싶어 졌다. 그렇게 나는 오늘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마그네슘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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