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고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얼마 전에 회사의 한 중간관리자가 찾아와 답답함을 호소했다. 요지는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팀원들이 동조해주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어떤 면에서 중간관리자는 대표보다 더 어려운 역할이다. 대표는 최종 책임자로 막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어렵고 힘들겠지만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그러나 중간관리자는 그렇지 않다. 무능한 동료를 내보낼 수도, 상사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번복시킬 수도 없다. 직접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제약조건에 둘러싸여 쥐꼬리 만한 권한을 가지고 뭐라도 해보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중간관리자의 숙명이기에 답답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어차피 월급쟁이 인생 대충 시키는 거 하며 살자는 냉소주의가 싫다면, 이 글을 읽어봐도 좋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할 수 있고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답답함의 본질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실제로 돌아가는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내 생각대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욕구를 실현시키는 힘이 영향력이다. 중간 관리자는 명시적 권한은 없지만 그렇다고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건 밀도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설득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영향력은 다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참고: 대표의 매력)로 나뉘는데 권한이 없더라도 파토스와 로고스는 여전히 활용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조직 내에서 충분한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은 명시적 직책이 없더라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사람의 말에 힘이 있고, 왠지 신뢰가 가고 틀린 말도 따르고 싶게 만드는 힘, 그게 영향력이다. (참고: 선출직과 임명직)
조직의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답답함을 느끼지만, 모두가 원하는 대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할 수 있어?'라는 건 내가 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건 매우 복합적인 판단의 영역이다. 답답함의 본질, 해결방안의 어려움, 리더의 성향, 조직의 성향, 나와 기존 조직원 사이의 관계, 반대하는 사람의 유무와 그 강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표를 설득할지, 팀원을 설득할지, 어느 선에서 타협할지 등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냉철한 현실판단으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걸 구분하고, 포기할 건 빠르게 포기하는 게 좋다.
'하고 싶어?'는 어쩌면 '할 수 있어?'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이다. 조직에 변화를 주는 건 그 자체로 피곤한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말 한마디에 샥샥 바뀌는 일은 없다. 대체로 상당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때로는 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하거나 왜 문제를 키우냐는 질타에 부딪힐 수도 있고, 나의 직무와 본업에 상관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 커리어에 도움 안 되는 선택 이 되기도 한다. '할 수 있다'에 수반되는 노력과 에너지를 지불해서까지 하고 싶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면 해보자. 인생 죽기밖에 더할까.
사람은 대체로 이성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선택을 내릴 때도 많다. 불합리함을 보고 나랑 상관없으면 쉽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 답답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자칫 이런 목소리를 불협화음으로 여기거나, 효율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로 치부할 경우 조직이 순식간에 망가지기도 한다. 대체로 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에서 기대하는 본인의 역할을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면 된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하고 싶은 걸 설득하고 관철해 내는 역량이 '할 수 있다'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하면 된다'가 허락이나 승인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할 수 있고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누가 막을 수 없다. 누군가 막는다면 이미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나에게 주어진 작은 권한과 수많은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허락 없이 내 선택으로 조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실은 매우 짜릿한 경험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조직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게다가 그 조직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변화시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회사 내에서 나의 권한은 회사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내 권한 밖에서 일어난 문제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질책받을 필요도 없다. 답답해서 해결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은 빠르게 포기하고,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은 외면하는 게 상책이다. 그렇지만 만약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보는 것도 좋다. 어려운 일이기에 역설적으로 그걸 해낸 사람은 현재의 역할과 책임을 아득히 뛰어넘은 역량을 갖췄다는 증거이다. 좋은 조직이라면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두지 않을 거다. 아니라면 그때 조직을 떠나도 늦지 않다.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도 눈치 보는 세상의 모든 중간 관리자들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