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와 보상과 효용함수의 관계
창업은 대표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선택이다. 잘되면 수백억, 수천억 대 부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은 대체로 고단하다.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수년을 보내야 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커리어 측면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당첨 확률이 낮은 복권에 수백~수억 원을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그런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내릴까? 그들 모두 본인이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강한 자기 확신으로, 창업에 뛰어드는 걸까?
사람은 대체로 확실한 선택지를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삶 대부분의 선택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확실하지만 낮은 보상, 불확실하지만 매우 높은 보상, 대체로 좋지만 최악의 경우 매우 안 좋은 보상이 오는 선택지 등 어느 것 하나 명료한 일이 없다. 창업은 그중에서도 아주 높은 불확실성과 아주 높은 보상이 공존하는 선택이다. 창업자 모두를 리스크 선호 선향을 가진 도파민 중독자 취급할게 아니라면, 뭔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 핵심이 무차별성(indifference)에서 온다고 본다. 무차별성은 어떻게 되던 내 삶에 크게 상관없는 변화를 뜻한다. 가령, 창업을 고민 중인 사회 초년생을 생각해 보자. 창업을 안 하고 대기업에 입사할 경우 월급 500만 원이 보장된다. 창업을 할 경우 낮은 확률로 100억 원대 자산가가 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월급 300만 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선택이 합리적일까? 많은 사람들이 낮은 성공 확률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아야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이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창업에 도전하는 건 월급 500만 원의 삶이나 300만 원의 삶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느낄 때이다.
일런 머스크가 하루 1달러 소시지로 한 달을 살아보고 창업을 결심한 거나, 내가 대학생 때 개발 외주로 월 400만 원을 벌고 인생이 아무리 꼬여도 이만큼은 벌 수 있고 그걸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창업에 뛰어든 것도 동일한 이치이다. 만약 리스크를 통해 감내해야 하는 결과들이 누군가에게 완전히 무차별하다면, 역설적으로 리스크는 0에 수렴하고 오직 보상만 있는 선택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월 500만 원 대기업 직장인의 삶은 자랑스럽고 행복하지만, 월 300만 원 중소기업 직장인의 삶은 너무 불행한 사람이라면 평생의 불행을 걸고 창업이란 선택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창업자들 사이에서도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 '기업가치 1조 이상 회사를 만들지 못할 바에는 내 인생은 의미가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어중간한 사업 아이템으로는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는 합리성의 영역도 아니며, 심지어 위험 기피/선호 성향의 영역도 아니다. 그저 효용함수의 모양에 따라 리스크와 보상이 요동치는 지극히 당연한 원리이다.
무차별성은 경제학의 효용함수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효용함수의 결괏값이 동일하여 어느 선택이든 개인이 느끼는 효용감이 완전히 같다는 의미이다. 무차별 곡선(indifference curve)은 무차별한 선택지를 선으로 연결한 걸 의미한다. 선택과 효용함수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도 좋다. (참고: 당신의 선택은 항상 옳다)
얼마 전 20대부터 줄곧 창업을 준비해 온 친한 형이랑 밥을 먹었다. 나와 비슷하게 소비욕이 크지 않은 성격으로, 창업하다 아무리 망해도 월 300만 원은 벌테고 그걸로도 충분히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형에게 창업은 아주 매력적인 (리스크가 거의 없으면서 보상은 큰) 선택지였다. 다만 어느새 30대가 되고 오래 만난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계획하며 생각이 복잡해진 모양이었다.
재밌게도 무차별한 영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뀐다. 20대 때는 월 300만 원이든 500만 원이든 내 삶에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올 수 없었지만, 30대에 결혼을 생각하고 아이를 계획하는 시기에는 더 이상 300만 원과 500만 원은 무차별하지 않다. 차이를 느끼게 되면 기존에는 느끼지 못했던 리스크가 생기고, 이는 그 사람의 합리적인 선택에 영향을 준다. 종종 나이가 들면 리스크 회피 성향이 생기면서 겁이 많아진다고 표현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리스크 성향이 바뀌는 것보다 그저 무차별한 영역이 바뀌었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가 바뀌는 것뿐이다.
앞에서 본 예에서 창업의 리스크와 보상은 하나도 바뀐 게 없는데 나의 무차별한 영역이 달라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선택이 되기도 한다. 리스크와 보상은 모두에게 동일하지만, 보상이 나의 실질적인 효용감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마법이 일어난다. 즉 나의 효용함수에 따라 나에게 좋은 선택지가 모두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모두에게 좋은 선택지가 나에게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단적인 예로 동일한 예산으로 좋은 집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동산 시장은 충분히 안정되어 있으며 집의 모든 좋은 조건은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고 해보자. 가장 쉬운 방법은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나에게만 유난히 무차별한 영역을 찾는 것이다. 가령 집에서 나와 걷는 걸 일반적인 사람들은 싫어하기 때문에 집과 지하철까지의 거리가 멀수록 집 값은 내려간다. 그런데 나는 걷는 걸 좋아해서 아침에 20분 정도 지하철까지 걸어가는 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저 지하철과 멀리 있는 집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가성비 좋은 매물을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나는 30대지만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딱히 차에 로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소유하는 걸 귀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뚜벅이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연봉을 받는 친구들이 일반적으로 끌고 다니는 차의 유지비를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차에 큰 로망이 없다는 것만으로 월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아끼는 셈이다. 대신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와인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완전경쟁시장에서 가격은 대체로 그 재화의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만 무차별한 영역은 내 선택지를 크게 늘려주고, 추가적인 행복을 가져다준다.
반대로 무차별한 영역이 줄어들수록 나의 선택지는 좁아진다. 소개팅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조건의 이성을 만나고 싶을까. 얼굴, 성격, 집안, 종교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텐데, 욕심내지 말고 딱 평균만 넘으면 된다고 가정해 보자. 평균 이상을 요하는 게 결코 높은 기준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조건이 5개만 되어도 3%, 8개라면 0.4%, 10개라면 0.1% 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가 기대하는 조건을 모두 갖추는 삶이 어렵고 불행한 이유이다. 모든 걸 챙기려는 마음은 삶을 매력 없는 선택지로 가득 채우고 만다. 모든 걸 갖춘 선택지는 너무 비싸고,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원하는 조건에 미치지 못한다.
무차별한 영역을 찾는 일은 역설적으로 행복을 찾는 일이고, 이는 사회의 가치와 내 가치의 차이를 조명하는 일이다. 창업을 선택하는 사람들 모두가 대단히 자신감이 넘치거나 야수의 심장을 가진 도박가일 필요는 없다. 그저 무차별한 영역이 넓은 것 만으로도 가능한 선택이다. 사실 선택의 끝이 창업인지, 직장인지, 결혼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 넓게 경험하고, 더 깊게 고민하여 모두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