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ONE>(2024)
국내에 트랜스포머를 다룰 수 있는 평자가 몇 명이나 될까? 아마 찾기 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한데, IP의 인기가 일부 매니아층에만 국한되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혹은 엑스맨이나 마블코믹스에 관해 말해줄 사람은 찾아보면 꽤 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그 시작에서 아동용 완구를 판매할 목적으로 제작됐으며 이로 인해 주류가 되진 못했다. 2007년에 마이클 베이가 실사 영화 시리즈를 찍기 전까진 말이다. 그나마도 포켓몬 종류(혹은 공룡)를 외우는 아동은 있어도, 트랜스포머 이름을 외우는 아동은 없다. 한국에서 트랜스포머가 아동용으로 방영됐던 건 <트랜스포머 프라임>이 유일하다. 2010년에 하스브로의 요청으로 EBS 방영된 이 작품은, 실사영화 붐에 힘입었지만 그다지 재미를 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시즌3에서 갑작스레 더빙 성우진이 바뀌기도 하는 등의 소란이 있기도 했다(아마도 비용 문제다. 메가트론의 담당 성우는 당시로도 베테랑 진에 속했던 구자형이었으니까). 작품은 훌륭했지만, 보는 사람이 없다면 더는 무대에 오를 수 없기 마련이다. 국내에서 트랜스포머는 실사영화로 반짝인기를 얻었지만, 딱 그뿐이었다. 이런 가정도 가능하다. 한국은 이미 아동용 애니메이션 시장이 크기 때문에 이 시도가 실패했으리라는 것. <변신자동차 또봇>이 <트랜스포머 프라임>과 동시기에 런칭했다는 점은 이 추론을 뒷받침한다. <또봇>을 제작한 레트로봇의 전신이 씨네픽스라는 점을 떠올려보자. 씨네픽스는 2001년에 <큐빅스>를 제작했었고 이미 변신 로봇에 관해서는 지론이 있었다. 하스브로의 <트랜스포머>도 사실은 고전 <또봇> 같은 위치였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진술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트랜스포머를 두고서 팬층이 분할되었다고 보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다. 애초에 아동용으로는 확장된 적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트랜스포머 IP는 실사영화의 명성에만 머물렀다. 트랜스포머는 멋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였고, 여러 탈것을 작중에 등장시키면서 성인층에 어필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트랜스포머는 아동용이기보다 성인완구에 더 가까웠다. 아동들이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키덜트 문화로 소비되었다는 뜻이다. 아동 만화를 성인이 소비했다기보다는 작품이 지닌 한 맥락이 문화적으로 재해석될 여지가 있었다고 보면 좋다. 이를테면 둘리에 대한 적절한 재해석 같은 일. 아니면 단순히 오타쿠 문화로서 실제 타겟층과 실제 수요층이 양분할된 경우로 보아도 좋다(프리즘스톤 시리즈는 삼촌이나 이모가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게임을 즐겼기도 했더랬다). 한국에서 <ONE>에 대한 서술은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를 상대화한다. 가장 성공했던 시리즈가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세계관이었다는 점에서 <ONE>은 어느 정도 수혜를 입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점은 <ONE>을 두고서 실사영화와 함께 다루는 일이 도리어 양측간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이다. <ONE>이 독자적인 작품으로 다뤄졌더라면 정말로 아동만화로만 소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세계관의 리부트 작품으로 둘 때 영화는 그 제목처럼 구세주가 된다. <ONE>은 트랜스포머 만화를 실사영화로 만든 게 아니라, 트랜스포머 세계 중 하나가 영화였을 뿐이라는 걸 대중에 각인시킨다. 둘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겠지만, 이는 몹시 중요하다. 트랜스포머는 다중우주 설정을 채용하면서도 모든 세계가 정사로 취급되기 때문에 작품적인 면에서의 리부트는 ‘없다’.
리부트는 이전 세계를 지우고 새 세계를 정립한다. 그래서 교통정리를 하기에 편하지만, 구세계를 선호했던 팬들에겐 이만큼이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없다. 자기네 세계관이 망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세계를 떠나보내야 해서다. 리부트라는 용어는 과감하지만 그만큼 배려 없는 선택이다. <ONE>은 세상 어딘가에 벌어지는 트랜스포머의 다른 세계이므로 실사영화의 비교는 지양되어야 한다. 기원이나 설정이 제각각인 것을 두고서 이에 해석을 덧붙이는 일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을 두고서 본가를 운운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한 세계가 이어지려면 이야기를 해야 하지 과거를 없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ONE>은 가장 오래된 과거를 보여주는 시점으로서 의미가 있다. 프렌차이즈를 이어가는 일에서 중요한 건 자신이 떠나왔던 길을 잊지 않는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조커>를 언급해보고 싶다. 그나마 부모의 사망이라는 캐넌 이벤트가 정립된 배트맨과는 달리, 캐릭터로서 조커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서사 기법으로는 그냥 배트맨 코믹스를 위해 새로 만들었을 뿐이어서겠지만, 그에 준하는 인기를 얻게 된 현재에 와서는 “기원을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캐릭터의 배경 서사가 됐다. 조커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기에 반대로 미래로 나아갈 구석이 없는 캐릭터다. 바꾸어 말하면 배트맨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헌신하기에 불쌍한 구석이 있기도 하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트랜스포머는 착한 오토봇과 나쁜 디셉티콘이 싸운다는 선 대 악의 구도로만 시작됐고, 여기서 배경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승리의 이유와 목적이 그저 상대방에 반하는 것일 뿐인 이 세계는 이들의 기원을 요구하지 않았다. <ONE>은 오히려 시작점에 있기에 더욱 자유로운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