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주지 않고, 받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섬세한 사람들 중 일부는 어떤 고민을 얘기하고, 무언가를 까거나 자신의 취약한 패를 보이기가 쉽지 않다.
이들의 고민을 듣고 나면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생각한다(속으로) 그리고 귀신 같이 얼굴에 드러난다.
난 너보다 더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만큼 견뎠어. 근데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거야. 결국 섬세한 이들은 그들의 비언어적인 마스크와 표현에서 그 고민을, 어려운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포기해 버린다.
얼마 전 친구의 고민을 듣고, '그걸 그렇게 힘들게 생각할 게 아닌데'라는 표정을 보내며 쉽게 흘려버린 적이 있었다. 용기 내서 어렵게 말한 고민을 무시하는 사람들, 질문을 하면 굳이 자존감을 꼭 깎아내려가며 스스로 찾아야 배우는 거야 라며 말도 안 되는 꼰대를 부리는 사람들. 절대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누군가의 고민을 '난 더 했어. 근데 이만큼 노력했어'라는 마인드로 대하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를 나도 모르게 죽이고 살았나 보다.
평생 상처를 주고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조금만 돌아본다면 상처를 덜 주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오늘 거의 멘토 같다는 말을 들었다. 드디어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선배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충분히 좋게 말할 수 있었는데 비언어적으로 상처 줬던 친구,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언젠가 이 못된 마음이 조금 회복되면 소중한 사람이 나약해졌을 때, 누군가에겐 얕은 고민이라도 크게 느껴지는 일련의 고민을 겪을 때. 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 그래. 그런 날이 있지. 그럼 잠깐 우회해서 아주 작은걸 성취해 볼까? 이거라도 해보면 어떨까? 아님 매일 하는 거 중에 좋은 게 있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름답고 순수한 것들을 더 많이 접해야 되겠다.
잠시 이 얄팍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