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사연으로 상상하고 반성하고 사랑한다.
친한 동생과 수다를 떨다 우연히 시 얘기가 나왔다. 덕분에 일 년 동안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시집을 다시 들었다. 전엔 깊이 감탄했던 시의 한 구절이 이젠 와 닿지 않는 걸 보니 요새 참 마음이 메말랐구나 싶다.
그러고 보면 독서에도 타이밍이 존재하긴 하나보다.
내게도 시가 기똥차게 잘 읽히는 시점이 있었는데 마음 깊이 상처를 받았거나 속세에 찌들어 지극히 순수해지고 싶을 때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슬퍼진다. 와 닿던 구절이 무의미 해졌다는 건 순수하게 무언가를 응시하지 않는 최근 내 마음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해서.
그럼에도 한 편으론 여전히 시를 존중해주고 싶다. 어떤 이들은 시를 오글거린다는 말로 외면하며 약해지는 감정을 두려워하지만 시의 순수함은 우리가 미처 잊었던 감정의 어느 약한 부분을 일깨워준다.
시는 분명 단 몇 마디의 구절로 우리를 그 문단 곁에 놓아주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를 통해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사연으로 상상하고 반성하고 사랑한다. 특히 윤동주의 자화상 같은 시는 빼곡하게 쉽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머릿속에 이미지화시켜준다. 마치 시에 나온 사나이가 나인 것처럼 보고 나면 어딘가 짠하게 아픈 구석이 생기는 걸 보니 시는 틀림없이 공감력 향상에도 좋은 도구일 것이다.
시가 좀 더 와 닿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럼 내 인생도 조금 더 풍요로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