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위의 사람들
요가 수업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지금보다 더 초보 강사이던 시절에는 수업을 해도 관심이 나 자신에게 쏠려 내가 잘하고 있나, 괜찮게 보일까를 걱정했는데 이제야 시선이 조금씩 밖으로 향한다. 비슷한 하루하루를 조금은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
요가원 입구에 있는 패드에 전화번호 뒷자리를 누르면 출석 체크가 되었다는 알람 소리와 함께 잠깐 회원 이름이 떴다 사라진다. 항상 저녁 6시 50분 수업에 오셔서 열심히 수련하고 가시는 어머니 회원님이 있는데 얼굴은 익숙하지만 성함을 몰라 출석 체크를 하실 때 슬쩍 패드를 들여다봤다.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이름이었다. 이 글에 본명을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허락을 구하지 않았으니 그와 가장 비슷한 이름인 '긍정' 회원님으로 불러야겠다.
긍정 회원님은 파란색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고 상체를 숙이는 동작을 할 때도 거슬림이 없게 티셔츠 아랫단을 레깅스에 꼼꼼히 넣어두신다. 팔을 머리 위로 뻗고 상체를 숙여 몸을 반으로 접고 플랭크에서 팔을 굽혀 바닥으로 내려가고 다시 바닥을 힘차게 밀며 가슴을 여는 일련의 동작들이 무척 단단하고 정확하다. 짧게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땀이 촉촉하게 젖도록 정성껏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을 거쳤을 그 몸에 존경심이 인다.
어느 날은 시간을 착각해 긍정 회원님이 플라잉 요가 수업에 오셨다. 천장에서 길게 매달린 커다란 천인 해먹을 도구 삼아 여러 가지 동작을 해보는 요가인데 경험이 많지 않다면 조금은 까다로운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하는 사람만 하는 마니아층이 있는 요가인데 그날은 긍정 회원님이 바뀐 시간표를 못 보시고 오셨던 거다. 그냥 집으로 갈까 몇 번이나 고민하시는 걸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면 돼요! 괜찮아요'라고 하며 같이 해보자고 했다.
수업 내내 맨 뒷자리에 앉은 긍정 회원님을 살폈다. 약간 힘든 기색은 있었지만 많이 해보지 않으신 것 치고 정말 잘하셨다. 그런데 마지막에 사건이 일어났다. 긍정 회원님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해먹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눕는 것이었다. 해먹에 의지해 허리를 뒤로 젖히는 동작에서 삐끗하셨던 모양이다. 수련을 참 좋아하시는 분인데 많이 다치셨을까 너무 걱정이 되었다. 탈의실로 가시면서 절뚝거리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수업 중에 회원님이 부상을 입는 건 드문 일이라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긍정 회원님은 괜찮다고 삐끗한 거 아니라고 하시며 가셨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수련실 밖 좌식 소파에 앉아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문 안으로 반가운 파란색 티셔츠의 긍정 회원님이 보였다. 아쉬탕가 요가의 후반부, 머리서기를 할 차례였다. 다행히 긍정 회원님은 하던 대로 머리서기를 거뜬하게 하시고 내려와 아기자세로 몸을 웅크렸다.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여 이마를 바닥에 댄 아기자세. 긍정 회원님은 자세를 고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에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일부러 상체를 일으켜 내게 꾸벅 인사를 해 주셨다. 이 장면 하나 때문에 이렇게 길게 글을 썼다. 거의 딸 뻘인 내게 그렇게 인사해 주시다니. 존중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리고 며칠 전의 사건이 겹쳐져서 더욱 감사했다.
요즘 긍정 회원님은 한 다리로 서서 균형 잡는 자세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사나'를 잘하고 싶어 하신다. 그걸 알고는 며칠 전 수업에서 신경 써 잡아 드렸다. 긍정 회원님은 내 작은 마음을 아셨을까.
요가 수업을 하면서 나는 자주 빚진 마음이 된다. 나누고자 시작했는데 배우는 게 참 많다. 더 많은 이야기가 쌓였으면 좋겠다. 나의 세상인 요가원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말, 표정, 움직임을 잘 담아내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