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야심 차게 요가 클래스를 기획했었다.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 하는 소그룹 요가로, 아파트 게시판과 블로그를 통해 홍보를 했다. 몇몇 사람들이 아파트 게시판을 보고 연락을 주기는 했지만 신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 방법이 뭔가 잘못 됐나 생각하고 있을 때쯤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다.
'안녕하세요 호옥시 오프라인 아직 모집하시나요? 궁금합니다!'
놀랍고 설레는 마음으로 몇 개의 댓글을 더 주고받았고 그렇게 지구 언니*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지구 : 요가수업에 찾아와 준 이웃언니의 닉네임 (ㅎㅎ)
집에서 하는 요가 수업이기에 오시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열심히 쓸고 닦고 수업 후 나눠 먹을 간식도 준비했다. 지구 언니와 또 다른 한분이 수업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집을 오픈해 수업을 하는 건 처음이라 얼마나 마음이 분주했는지 그날의 대화와 분위기가 벌써 기억에서 흐릿해져 버렸다. 호스트이자 요가 선생으로서의 자아를 유지하고자 생글생글 웃고 있던, 그러느라 끝나고는 진이 쏙 빠져버린 내 모습만 남아있다. 그 와중에도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지구 언니와 내가 요가 매트에 앉아 몇 마디를 나누는 순간, 우리가 꽤 잘 맞을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단 거다.
지구 언니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어쩌다 보니 초면에 나이까지 서로 공개를 하게 되었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언니의 첫인상은 편안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웃긴 구석이 있었다. 몇 마디 대화로 코드가 통하는 걸 느꼈다. 첫 만남 이후 지구 언니는 종종 수업을 신청해 우리 집에 오곤 했다. 그중에는 언니 혼자 오는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약간 땀이 나는 강도의 요가를 하고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요가를 한 것보다 더 긴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취향과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우리의 비슷함에 놀라고 즐거워했다. 성큼성큼 걸어가면 1분도 채 안 걸려 닿는 우리의 집 거리만큼이나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렇게 반년 정도가 지나 작년 연말에는 언니의 집에 처음 가보게 되었다. 무려 문어솥밥을 해주겠다고 나를 부른 것이다. 지구 언니의 집은 주인을 쏙 닮아 깔끔하고 감각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완벽하게 하나의 분위기로 맞추지 않은 것이, 그래서 오래된 소파와 귀여운 그림 액자에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것이 좋았다. 그날 언니의 야심작 문어솥밥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탱글한 문어를 넉넉하게 넣고 촉촉하게 지은 솥밥은 그 정성을 배제하고 봐도 객관적으로 훌륭하게 맛있었다. 세 그릇을 덜어 먹었나 언니가 나의 먹성을 놀라워할 때쯤 숟가락을 놓았다. 우리 집과 대칭으로 생겨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 집 거실에서, 그날도 우리는 좋아하는 것과 요즘의 관심사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풍족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것도 지구 언니처럼 좋은 친구 같은 이웃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종종 만나 요가를 하고 함께 글을 쓰고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다닌다.
언제부터였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언니는 나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시간이 맞지 않을 때 우리 집 우편함에다 물건을 놓고 갔다. 계획 없이 우리 동으로 찾아와 공동현관이 열릴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놓고 가며 나에게 문자를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 우편함에는 캔맥주가 들어오기도 하고 주전부리와 편지 등이 놓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직접 만든 진미채볶음까지 우편함으로 배송을 해 주었다. 마트에서 파는 반찬과는 달리 붉은기가 덜하던 지구표 진미채볶음은 매콤한 바탕에 고소함과 달짝지근함이 더해진 맛이었다. 맛있다고 하니 한번 더 가져다줘서 이제는 확실하게 언니의 진미채볶음 맛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나만 아는 언니의 손맛이 두 개나 생겼다.
오래된 벚꽃나무가 있고 느릿느릿한 걸음의 어르신들이 많은 이 조용한 동네에서 지구 언니를 만난 덕분에 특별한 일상을 살고 있다.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이 글은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을 차분히 쓸어내리며 적었다. 나의 소중한 이웃을 떠올리며 흐뭇한 얼굴로 글을 맺는다. 우리가 함께 할 앞으로의 더 많은 계절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