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bez Feb 20. 2019

넷플릭스는 왜  시청 기록 삭제를 숨겨놨을까

최근 유행에 발맞춰 나도 넷플릭스에 중독됐다. 킹덤 때문에 한 달 무료보기로 가입한 지 20일쯤 지났는데, 그새 영화 2편, 미드 4개, 한드 1개를 빈지워칭했다. 지금은 하트 시그널의 원조격인 일본 '테라스 하우스'를 보고 있는데 초반부터 꿀잼각이다.


넷플릭스에는 콘텐츠가 많다. 처음 가입한 사용자는 뭘 봐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정도다. 방대한 콘텐츠 풀을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메인 화면에 다양한 슬롯들을 배치해 사용자들의 선택을 돕는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슬롯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추천 슬롯, 키워드 슬롯, 개인화 슬롯이다.


1. <인기 콘텐츠>나 <지금 뜨는 콘텐츠>, <신규 콘텐츠> 슬롯은 모든 사용자에게 같은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인기 로직이 적용돼 있어 두루 인기가 많다.


2. <해외 성적소수자 TV쇼>, <미국 제외 외국・여성 주도・TV 드라마> 처럼 특정 키워드들을 그룹핑한 슬롯도 있다.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보유한 넷플릭스만이 가능한 방식이다.


3. 각 사용자마다 콘텐츠가 달라지는 개인화 슬롯도 있다. 넷플릭스에 설정한 프로필별로 어떤 콘텐츠를 즐겨봤는지 분석해 제공하는 맞춤형 슬롯이다. (님께서 보신) <작품 ㅇㅇㅇ과 비슷한 콘텐츠> 또는 (님께서 찜하신) <작품 ㅇㅇㅇ과 비슷한 콘텐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넷플릭스 메인 화면. 이쯤 되면 아무리 추천을 잘 해줘도 엄두가 안 난다.


아직 개인화 로직이 반영될 만큼의 콘텐츠를 시청하지 않은 넷린이들은 외부에서 넷플릭스 콘텐츠를 추천받는다. 유튜브나 블로그에 가면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미드 추천작', '넷플릭스 갓띵작 엄선' 등 리스티클 콘텐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신작 예고편을 보고 시청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이 방식들은 실패 확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유튜버가 추천해주는 콘텐츠가 내 취향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또 예고편에 속아 보기 시작했는데 결국 예고편이 전부였던 망작도 많다. 미드라고 다 재밌는 건 아니다.


이때 거슬리는 점은 보다 포기한 작품까지 내 시청 중 콘텐츠에 계속 남는다는 것이다.


아까 말하지 않은 개인화 슬롯이 두 개 더 있는데 <내가 찜한 콘텐츠>와 <내가 시청 중인 콘텐츠>다. 찜한 콘텐츠는 찜을 취소하면 되지만 시청 중 콘텐츠는 삭제 버튼을 꽁꽁 숨겨놔서 찾기 어렵다. 망작이 내 영혼에 낸 스크래치도 모자라서 넷플릭스에도 흔적을 남긴다. 까짓꺼 그냥 두면 되지 않냐고? 그린랜턴 잘못 눌렀다고!!


나중에야 간신히 알았지만 넷플릭스 시청 기록도 삭제는 가능하다. 다만 앱에서는 할 수 없고 넷플릭스 웹 페이지에서만 할 수 있다. 로그인 한 뒤 우측 상단에 있는 프로필 > 계정 > 시청 기록으로 가서 시청 기록 숨기기 픽토그램을 클릭하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삭제가 아니라 시청 기록 숨기기다.) 앱에서 해당 웹 페이지로 랜딩 동선은 제공하지 않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앱에서 꾹 눌러 바로 지우면 될 걸 왜 이렇게 꽁꽁 숨겨놨을까?


넷플릭스의 핵심 전략은 빈지워칭(또는 빈지뷰잉)이다. 폭식을 뜻하는 binge와 본다는 뜻의 watching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하면 몰아보기, 정주행쯤 된다.


본방사수는 이제 없다. 시청자들은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드라마 한 시즌 전체가 한꺼번에 공개된다. 보는 도중 디바이스를 옮겨도 마지막에 보던 위치부터 끊김 없이 이어 볼 수 있다. 영상 종료 후 5초만 머뭇거려도 다음 화가 바로 자동 재생된다.


시청 중 콘텐츠 삭제 기능을 숨겨놓은 이유도 빈지워칭을 위해서다. 보던 콘텐츠를 목록에서 지워버리는 대신 남겨두면 다시 볼 여지가 생기니까. 조금 불편한 사용성을 감수하더라도 영상을 계속해서 마저 보게 만들려는 것이다.


사용자의 빈지워칭은 넷플릭스의 사용자 체류시간(Duration Time)을 늘리고 콘텐츠를 끝까지 보는 완독률을 상승시킨다. 더불어, 삭제 버튼을 숨김으로써 콘텐츠를 클릭했을 때 해당 영상이 바로 재생되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에만 집중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플랫폼 기획자 입장에서는 계속 의문이 든다. 빈지워칭으로 인한 효과는 넷플릭스에게 이득이지 사용자의 이득은 아니다. 사용자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삭제 기능을 숨겨놔야 했을까? 사용자의 마음이 이미 떠난 콘텐츠를 계속해서 슬롯에 남겨두는 게 실제 빈지워칭 효과가 있을까? 차라리 지울 건 지우고 볼만한 영상으로 다시 채우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현지화 잘 된 동남아 우버, 그랩(Grab)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